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드퓨처 Nov 30. 2021

칠리 새우가 가져다준 소소한 행복


고3이던 딸이 중간고사 보느라 정신없던 작년 여름 어느 날의 이야기..


고3인 딸이 중간고사 첫날 시험을 봤다. 시험 전 날 늦게까지 공부하느라 정작 당일에 늦잠을 잤고, 그 바람에 아침도 못 먹고 학교에 갔다. 늘 아침에 깨우고 아침도 차려주는데, 어제 아침에는 너무 곤하게 자고 있어서 차마 깨우지 못했다. 아침을 조금 덜먹더라도 더 자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평소보다 한참 늦게 일어난 딸은 왜 안 깨웠냐면서 화를 냈고 나는 차마 속뜻을 얘기하지 못했다. 시간 없다는 아이를 붙잡아 우유 한 잔을 겨우 먹이고 보낼 수밖에 없었다. 한참 날카로울 나이에 그것도 코로나 시기를 겪고 있는 고3이라 늘 딸의 눈치를 본다.

시험 끝나고 바로 독서실로 갔던 아이가 저녁 먹으러 집에 왔다. 딸아이는 어려서부터 해산물 요리를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칠리새우와 연어 회를 좋아한다. 여름이니 회보다는 새우가 좋겠다 싶어 딸아이에게 가까운 중식당에 가자고 했다. 눈치챈 딸아이는 표정부터 달라졌다.


"아빠 칠리새우 사주려고 그러는구나."


아침에 왜 안 깨웠냐며 화내던 모습은 눈 녹듯 사라져 흔적도 없는 표정이었다. 딸아이의 최애 메뉴 칠리새우 덕분이었다.

집 근처 중식당에 갔다. 가끔 가는 집인데 친절하고 맛도 있고 푸짐하다.



딸아이는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허겁지겁 젓가락을 연신 줬다 폈다 했다.


 "너 혹시 아무것도 못 먹었니?"


아니나 다를까 아침에 반쯤 남기고 간 우유 한 컵이 오늘 먹은 끼니의 전부였단다. 나는  갑자기 울컥했다. 입시가 뭐라고 끼니도 제대로 못 챙겨 먹고 다녀야 한단 말인가.


시험 잘 봤냐고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침에 왜 안 깨웠는지도 더더욱 얘기하지 않았다. 그냥 한마디만 했다. "오늘은 일찍 자라"

맛있게 먹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모든 시름, 걱정이 눈 녹듯 녹아내렸다. 그래 이 행복한 모습이 언젠가는 우리 가족의 값진 추억이 되겠지.

칠리새우가 가져다준 소소한 행복이었다.


어느덧 1년이 흘러 대학생이 된 딸과 가끔 작년 입시 때 얘기를 많이 한다.


"아빠 그땐 정말 고맙고 미안했어. 가끔 화낸 건  진심이 아닌 거 알지?"


"아빠 사랑해!"


현실은 추억이 된다는 믿음에, 오늘도 추억으로 회자될 그 어느날을 기약하며...

매거진의 이전글 셋째 누님이 차려준 생일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