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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드퓨처 Nov 28. 2021

셋째 누님이 차려준 생일상


나는 누님이 세분 있다. 바로 위인 셋째 누님과는 나이도 세 살 터울밖에 안 나서 어렸을 때부터 친했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는, 연세가 많으셨던 어머니를 대신해서 누님이 도시락을 챙겨주기도 했다. 누님은 손이 귀한 집에 셋째 딸로 태어나 설움을 많이 당했다. 돌 사진은커녕 그 흔한 아기 때 사진 한 장이 없다. 그러다가 내가 태어나고 나서야 남동생을 봤다고 할아버지, 할머니의 뒤늦은 사랑을 받았다.


누님은 내 덕분에 본인이 귀여움을 받을 수 있었다고 고마워했고, 나는 내가 태어나기 전 설움을 당했을 누님이 못내 안쓰러웠다. 이런 사연으로 누님과 나는 5남매 중에서도 가장 가깝게 지낸 것 같다. 그런 누님이 며칠 전부터 이번 생일은 내가 챙겨줄 테니 집으로 오라고 했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바쁘다는 이유로 누님과 생일을 함께 해본 기억이 거의 없었다. 새로운  일을 준비하는 동생에게 힘이 되고 싶었나 보다. 덕분에 어머니와 누님들도 모두 한자리에 모일 수 있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니 더 이상의 행복이 있을 수 없었다. 둘째 누님의 딸인 큰 질녀는 외삼촌을 위해 예쁜 꽃까지 준비했다.



너무나도 고마웠다. 사실 생일날 꽃을 받아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없다.

그동안 앞만 보고 달리느라 제대로 생일을 챙긴 기억이 거의 없다. SNS나 신용 카드, 은행 등에서 축하 메시지를 받고는 '아 오늘이 내 생일이구나'라고 알곤 했었다. 참 사는 게 뭔지. 뭐가 그리 바쁘다고 생일 알람을 상업용 메시지에 의지했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밤늦게 집에 온 큰딸은 가방에서 뭘 주섬주섬 꺼내더니 아빠 생일 선물이라고 내놓았다. 머랭이란다. 단 걸 좋아하는 아빠를 위해 샀다고, 한 번에 많이 먹지는 말라고 한다.


누님이 차려준 생일상에 예쁜 꽃과 머랭이가 어우러진 올해 생일은 왠지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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