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에 한강으로 산책을 다녀왔다. 올해 유난히 자주 다닌 한강이다. 특히 봄, 가을에 주로 가서 허전한 마음을 달래곤 했다. 춥다고 외면하면 내년 봄에 안 받아줄 것 같아 꼭 한번 다녀오려고 했었다. 마침 날씨도 그렇게 춥지 않아서 집사람과 아들을 데리고 다녀왔다. 한강변은 전날 내린 눈으로 하얗게 덮여 있었고 따뜻할 때 나들이족으로 붐비던 잔디밭엔 아무도 없었다. 마치 공연이 끝나 불 꺼진 무대 같았다.
늘 물멍하던 아지트에 선채 흐르는 강물에 시선을 맡겼다. 저 멀리 청둥오리가 무리를 지어 움직이고 있었다. 따뜻한 계절엔 볼 수 없던 광경이었다. 몇몇은 먹이를 찾아 물속에 몸을 들이밀기도 했다. 청둥오리는 대표적인 겨울 철새다. 러시아나 일본 북해도 같이 우리보다 북쪽에 위치한 곳에 살다가 추워지면 따뜻한 남쪽으로 내려와 겨울을 난다. 그러니까 청둥오리에게는 우리 한강이 따뜻한 남쪽나라인 것이다. 우리는 춥다고 외면하다가 겨우 날 잡아 찾아온 곳인데, 청둥오리에겐 일부러 겨울을 나려고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 찾아온 곳이라니, 참 신기한 자연의 신비가 아닐 수 없다.
산책로엔 반려견과 함께 나온 사람들이 간간히 보였다. 대형견 한 마리가 지나가길래 유심히 보니 래브라도 리트리버였다. 그런데 걸음걸이가 살짝 이상해 보였다. 다리를 저는 듯 뒤뚱뒤뚱 걷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신발을 신고 있었다. 맨발로 걷는 게 본능인 동물에게 신발을 신겼으니 걸음걸이가 어색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차디찬 길바닥에 대비한 견주의 배려라고 보기엔 걸음걸이가 너무 불편해 보였다. 그래도 묵묵히 주인을 따라 걷는 걸 보니 싫지만은 않았나 보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왔다. 옷을 얇게 입어서 그런지 오는 길에 갑자기 추위가 느껴졌다. 나와는 달리 중무장을 한 집사람이 덜덜 떨고 있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털 목도리를 풀어 건넸다. 나이를 먹을수록 자존심 따위는 필요 없었다. 한 번의 사양도 없이 덥석 받아 목에 둘렀다. 따뜻했다. 아들 녀석이 놀리듯 쳐다봤다. 한기가 사라지니 한결 몸도 가벼워졌다. 지금 청둥오리도 이런 느낌일 것이리라.
이제 겨울 한강 산책도 다녀왔으니 올해는 한강의 사계를 걸어서 모두 경험한 것이 되었다. 흔치 않은 것일수록 값진 것이라고 이번 겨울 한강 산책이 제일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따뜻한 봄이 오기 전에 청둥오리 보러 또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