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맥락화 (decontextualization)를 지식 검색에 찾아보면 '특정한 상황, 분야, 환경에서 벗어나 한 개념, 단어, 사건 등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되어있다. 글을 읽을 때는 개개의 단어가 갖는 뜻보다는 그들이 한 맥락에서 어떻게 어우러지느냐를 알아야 문장의 정확한 뜻을 이해할 수 있다. 탈맥락화는 이것의 반대 개념으로, 맥락에 녹아드는 뜻이 아닌 홀로 있을 때나 다른 맥락에 속했을 때의 뜻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 개념은 그대로 우리의 삶 속에도 적용이 된다. 우리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반복되는 일상을 보낸다. 항상 같은 맥락에서 상황을 파악하고 사람을 만나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거의 모든 사람들의 사고 및 행동 방식이 매뉴얼화되어 있다. 내가 하는 생각을 지구 반대편에 사는 사람도 똑같이 하고 있다. 이것이 틀렸다는 얘기가 아니다. 오히려 반복되며 예측 가능한 일에 대해서는 훌륭한 프로세스적 접근이다.
그런데 세상은 갈수록 예측 불가능한 일들로 가득하고, 매뉴얼이 존재하지 않는 프로세스를 가동해야 하는 상황이 수도 없이 벌어지고 있다. 또한 남들과 똑같이 사고하고 행동해서는 창의적 아이디어를 내기는 힘든 게 사실이다. 이런 경우에는 탈맥락화가 필요하다. 맥락화로 예측할 수 없는 일은 탈맥락화로 생각해봐야 한다. 어쩌면 당연한 얘기다. 안에 없으면 밖에서 찾아봐야 하듯이.
프리야 파커는 그가 쓴 책 '모임을 예술로 만드는 법'에서 모임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모임의 장소를 탈맥락화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1940년대 어느 날 영국 여행 작가 패트릭 리 퍼르모는 친구들과 그리스 해안 마을 한 식당을 찾았다. 음식을 주문하고는 식탁을 들고 물이 허리까지 차는 바닷가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의 식사 자리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활기 넘치는 곳으로 유명해졌다. 식사 자리의 탈맥락화다.
2018년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두 정상이 답답한 회의실을 벗어나 도보 다리까지 친교 산책을 했다. 당시에 이것을 벤치마킹해서 1 대 1로 사내 산책 면담을 하는 게 회사에 유행하기도 했다. 서로 마주 볼 때 보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얘기할 때 부담은 덜고 마음은 활짝 열릴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림에서 전경과 배경이 상황에 따라 서로 뒤바뀌는 '게슈탈트 전환'도 삶에 적용될 수 있는 탈맥락화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김정운 작가는 교수직까지 내려놓고 그 먼 여수까지 가서 글을 쓰는 것이다.
정리해 보면 우리가 무엇을 할 때 그것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되는 곳에서 하는 것, 이것이 바로 탈맥락화가 될 가능성이 높다. 색다른 심리적 상황이 생각지도 못했던 아이디어나 삶의 영감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항상 바닷가에 나가서 밥을 먹고 회의할 때마다 산책을 나갈 수는 없다. 그래서 생활 속에서의 탈맥락화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에서 유명한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주던 플래톤 안토니우라는 작가가 있다. 그는 오랫동안 타임지의 표지 사진을 찍었으며, 지미 카터부터 오바마까지 미국 대통령들의 사진을 모두 찍었다. 그는 하얀 페인트가 칠해진 나무 궤짝을 들고 다니면서 거기에 유명 인사를 앉히고 사진을 찍었다. 바빠서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유명 인사들을 간단히 탈맥락화 시킨 것이다. 그 꿰짝은 지도자를 왕좌에서 잠시나마 내려오게 하는 투지 넘치는 상징이 되었다.
잠시라도 차 한 잔을 들고 자주 가지 않는 곳에서 단 5분이라도 앉아보자. 꽉 막혔던 가슴이 뚫리면서 전혀 다른 생각이 용솟음칠 수 있다. 스님들은 해우소에서 근심을 푼다. 화장실은 가장 가까이 있는 탈맥락화의 장소이다. 거기다가 25분 이내로 나 혼자 집중할 수 있으니 뽀모도로 시간 관리법에도 적합하다.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있거나 참신한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지 않을 때일수록 탈맥락화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