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이오를 전공하고 IT 회사에 10년간 근무한 경험이 있다. 사회생활의 절반 정도를 IT 기업에서 보낸 샘이다. 업의 개념이 다른 회사를 다니다 보니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서 오는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IT 분야는 거의 100% 정량적인 언어가 사용되는 데 비해 바이오 분야는 정량적 언어 못지않게 정성적 언어도 꽤 많이 쓰인다. 가령 반도체 공정은 수율이라는 숫자로 표현되고, 디스플레이도 반사각, 투과율 등 모두 숫자로 관리된다.
이에 비해 바이오는 "포지티브 콜로니가 뜬 것으로 보아 유전자 클로닝이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와 같이 때론 정량화할 수 없는 형태로 표현된다. 문제는 전자 계열 출신의 경영진들이 이런 바이오의 업의 개념을 이해하기 힘들어한다는 점이었다.
미생물에서 A라는 물질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의 일이다. 사업부장께서 수율 100%를 달성하라는 목표를 주셨다. 문제는 A의 이론 최대 수율이 50%가 채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미생물은 자신의 몸집을 불리면서 동시에 물질도 생산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이론 수율이 100%가 될 수 없다.
그건 불가능하다고 하자 엄살 부리는 것처럼 들리셨는지 다소 역정까지 내는 상황에 이르렀다. 나는 미생물의 속성에 업의 개념 차이를 더해 차분히 설명을 드렸다. 그제야 이해했다면서 이론 최대 수율까지만 해보라고 하는 거다. 회사 최초로 목표 100%가 아닌 프로젝트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또한 나는 사업부장께 "No"를 한 첫 프로젝트 리더가 되었다.
그 후로는 훨씬 일하기가 편해졌다. 다른 언어로 소통에 힘쓸 시간에 열심히 일만 하면 되었으니까 말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마음 놓고 일하기 위해선 내 얘기를 가장 잘 이해해야 할 사람에게 그들의 언어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나는 한참 윗분과의 벽을 허물 땐 초등학교 3학년이던 큰아이한테 리허설을 한 적도 있다. 결코 윗분을 무시한 게 아니었다. 그만큼 쉬운 언어로 표현하고자 했던 치열한 노력이었을 뿐.
'내가 하고 싶은 말 대신 고객이 듣고 싶은 얘기를 하자' 지금도 변치 않는 나의 소통 철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