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끓이며 드는 생각 하나
난 드립커피를 좋아한다.
더 정확히,
직접 내려마시는 걸 좋아한다.
물론,
이게 여느 카페의 바리스타님들의 것 보다
더 맛있다고 할 순 없겠지.
그저 커피를 내리면 느껴지는 그 햇살들을
나 대신 바리스타님들에게 양보하고 싶지 않은 것뿐이다.
1. 처음에 다이소에서 작은 티 주전자를 샀다.
그러다 어느 날 물 끓이는 게 그렇게 귀찮아져서
전기포트를 사버렸으니 이거야 말로 신세계였다.
그 사이 난 다른 것을 하면 조만간 뽁뽁하고 물이 끓는다.
허나, 이상하지.
빈 주전자를 헹구고 물을 부어 렌지 위에 올려
탁탁 불을 켜면 끓는 데까지 그 앞에서 기다리게 된다.
다른 것을 생각하지 못하게 된다.
왜일까.
귀찮은데 주전자를 바라보며 기다리는 그 시간이 너무 좋다.
포트를 사용하다가 다시 주전자로 돌아왔을 때
별 것 아닌 것에서 괜스레 감성을 느끼며
혼자 오오 레트로 갬성갬성 운운하며 자빠져 있다.
그래서?
너무나 편리하고 편리한 포트는 당근으로 슝.
2. 아침에 그날 마실 커피를 미리 내려둔다.
대략 15g 안팎의 커피가루로 200~250ml를 추출한다.
여기에 물을 좀 타면 두 잔 가득 양이 나온다.
어떤 날은 한 잔으로 끝내고
지는 해에 괜히 멜랑꼴리해지는 날이면
남은 한 잔마저 마신다.
3. 한 여름에 냉장고에 넣어두고 시원하게 마시면
마음의 때를 밀어낸 것처럼 몸이 가벼워진다.
한 번씩 1리터 양을 추출해 시원하게 만들고
그동안 오다가다 다이소에서 사둔 이쁜 병에 담아
가까운 이들에게 선물로 주기도 한다.
나만의 콜드브루이다.
4. 일상에서 커피를 즐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공간과 베이킹에도 관심이 가게 된다.
때론 오롯이 나 혼자만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곳,
때론 좋은 사람들과 도란도란 나눌 수 있는 곳으로.
덕분에 난 과한 오븐을 들여 베이킹까지 취미로 두게 됐다.
앞서 적은 4가지.
이것이 내가 커피를 내리면서 느끼기 시작한 햇살들이다.
아침에 커피를 내리면 이것을 마실 나를 생각하고
때때로 이것으로 삶의 시간을 나눌 좋은 사람들을 생각한다.
나도 한 사람.
내 주변에도 한 사람.
모두 같은 '한 사람'으로서.
커피의 맛을 떠나서,
커피를 내리는 행위는 그렇게 마음을 '사람'으로 향하게 만든다.
그 순간만큼은 어떠한 질 나쁜 것들도 끼어들 수가 없는 것이다.
찰나 같은 순간이지만 느끼는 햇살들로 하루를 채운다.
그래.
작은 빵 한 개,
쿠기 한 조각,
커피 한 잔을 직접 만들고 내려보면
이타심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느껴볼 수 있을 것 같다.
먹을 것을 직접 만든다는 행위는
음식 그 자체보다 과정 속에서 느껴지는
인간적임,
너무나도 인간적인 그 마음에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일상에 요리를 즐기는 사람을 가까이 두면
그렇게나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것일까.
내가
나 자신과 더불어
누군가의 마음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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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가 마음이 힘들 때면
아주 간단한 먹을거리라도
직접 만들어 보자.
별 것 아닌 품을 들인 노력이
이미 힘듦에 균열을 내고
자신에게 먹여주면서
균열 사이로 작은 빛이 새어 들어온다.
행여 누군가와 나누기까지 한다면?
너무 거대하고 따뜻한 빛이 새어 들어와
감당이 안될지 모르니 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