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프와 이데올로기>,양영희, 2021 영화리뷰
10대 때는 다큐보다는 허구성과 판타지가 있는 영화와 드라마를 더 많이 봤다. 나에게 현실은 지루한 것. 재미없는 것이었다. 아빠는 하루에도 뉴스를 3번씩 본다. 7시 mbn 뉴스를 시작으로, 스포츠뉴스가 나올 때쯤 채널을 돌려 8시부터는 JTBC 그리고 SBS에서 하는 9시 뉴스까지. 도대체 재미도 없는 비슷비슷한 기사들을 굳이 하루에 세 번씩이나 보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당시 뉴스 속의 사건·사고들은 나의 삶과 별로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정치도 그렇고 먼 나라의 내전이나 공습도…. 그도 그럴 것이, 입시에 찌든 10대 학생에게는 세상보다는 당장 코앞의 시험이 더 문제였고 현안들은 안다고 해서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있으리라고 생각지도 않았다. 정치개혁이라던가 선 거 같은 것은(입시제도라면 모를까) 어른들의 문제로 생각되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실제의 이야기들이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고 투표가 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몸소 느끼면서, 나도 거실 귀퉁이에서 뉴스를 같이 챙겨보게 되었다. (그렇지만 연달아 세 번씩 보지는 않는다).
자연히 취향 또한 다큐멘터리 장르로 확장되었다. 이건 유튜브의 영향도 적지 않게 있다. 별별 세상 이야기들을 방구석에서 보게 되면서 생각보다 세상에는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고 미스테리하고 기이한 일들이 많다는 것을 보았다. 운명처럼 보이는 우연들의 연속,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마치 sf에서나 나올법한 사건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실제 이야기'라고 인식한 상태에서 오는 진한 핍진성. (이렇게 어른이 되는건가...?) 그렇게 자주는 아니지만 다큐도 이따금 찾아보게 되었다. 넷플릭스에는 나의 취향을 반영해 놓은 자극적인 썸네일과 제목의 작품들이 나열돼 있다. 훌륭한 화면연출과 세련된 도입부, 스피드한 진행은 나의 클릭을 유도하기에 충분했다. 어느 날은 지상파 채널에서 방영하는 <수프와 이데올로기>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화에 대한 사전지식은 전무했고, 어젠가 제목이 특이하기에 기억하고 있었다. 사실 제목이 아니었다면 채널을 돌렸을지도 모른다. 수프와 이데올로기라니! 그 쇄말함과 거대함의 배치라니! 두 단어에서 오는 간극은 정말이지 묘하다. 지금 생각해도 참 괜찮은 작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역사의 비극적 사건들에 속절없이 휩쓸린 한 가족사를 잘 표현한 제목이다.
*(필자는 3부작이라고 불리는 <디어 평양>,<굿바이 평양>은 관람하지 않은 상태로 영화 리뷰를 쓴다.) 감독은 자기 가족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녀가 가족을 찍기로 한 이유는 부모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과 그래서 어머니를 알아가야겠다는 생각에서 시작된다. 영화는 어머니의 구술로 전해지는 역사적 증언과 점차 알츠하이머로 인해 기억을 잃어가는 현재의 어머니 그리고 과거 영상들과 함께한 내레이션들로 진행된다.
감독인 양영희는 재일 한국인이다. 그녀의 어머니(강정희)는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공습으로 자기 어머니의 고향인 제주도로 돌아갔지만, 제주 4.3으로 인해 다시 오사카로 넘어가서 쭉 일본에서 살게 된다. 그녀의 어머니는 당시 처참했던 제주도에서 살육의 참상을 두 눈으로 목격한다. 큰외삼촌은 세 아들들을 잃고 개머리판에 맞아 사망하고 당시 의사였던 약혼자는 무장대 활동을 하다 죽게 된다. 그렇게 남한의 독재정권에 대한 깊은 불신으로 조선총련의 열성 활동가로 활동하게 된다. 이러한 이념으로 딸 하나만을 남기고 어린 아들들은 북송 사업으로 평양으로 보내진다. 물론 어머니는 후에 북한 주민들이 독재와 참담한 가난 그리고 숨 쉴 수 없는 억압 속에서 살게 될 것은 알지 못한 채. 지상낙원 평양을 생각하며 찬양의 노래를 부른다. 어머니의 집에는 북에서 받은 훈장, 아들들의 사진이 가득하다. 어머니는 이후로 북한에 있는 자식들을 다신 만나지 못한다. 큰아들 건오는 원래 음악에 관심을 가졌던 아이였지만, 북에서 자유와 함께 음악을 빼앗기고 깊은 우울에 빠져 죽음에 이르게 된다. 이 죄책감으로 비롯하여 어머니는 빚까지 내어서 아들 가족들에게 생활비와 생필품을 40년 넘게 보낸다. 딸 말로는 집을 샀어도 몇 채는 샀을 돈이란다. 말년의 어머니는 알츠하이머병을 앓으며 기억을 점점 잃어가지만 북의 노래만은 잊지 않는다. 영화는 역사에 대한 애니메이션 장면과 감독의 내레이션, 그리고 가족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진들과 숏들을 배치한다.
양민 학살 속에서 피로 물든 개천, 쌓인 시체들을 보며 목숨 걸고 동생 둘을 데리고 몇십 킬로를 걸어 밀항을 한 어머니이다. 그때 나이 겨우 18살이었다. 지금의 부드럽고 힘없는 늙은이에게서 나왔다고는 믿기 힘든, 어머니의 대담함과 용기 그리고 헤아릴 수조차 없는 고통을 어머니는 담담히 증언한다. 영화 후반부, 기억을 거의 잃어 딸조차도 잘 알아보지 못하는 어머니를 데리고 양영희 감독과 그녀의 약혼자(일본인)는 제주도 위령비를 찾아간다. 그러나 동생들을 데리고 목숨 걸고 갔던 피란 길, 위령비에 쓰여 있을 큰외삼촌의 이름을 끝내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게 어머니의 두 눈동자는 망각으로 인해 그 생생한 고통의 뒤안길에서 혼란스러워한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계속해서 딸에게 아버지, 외삼촌, 큰아들의 행방을 묻는다. 그때마다 양영희 감독은 어머니에게 산책하러 나갔다는 둥 거짓말을 둘러대지만 어쩔 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난감해지기도 한다. 영화에서는 세 번 삼계탕을 만든다. 딸의 일본인 약혼자를 환대하기 위해, 셋이서 함께 만들고 사위가 어머니를 위해. 일본인과는 결혼하지 말라고 한 부모이지만, 국가간의 대립도 인간과 인간의 정다운 만남 앞에 친밀한 그들의 관계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게된다. 수프라는 따뜻한 이름과 함께 그들에게 수프는 이처럼 어머니의 완대와 화합, 연대를 의미한다. 그들은 어머니가 없어도 계속 수프를 만들것이다.
거대한 이념 간의 전쟁으로 비자발적 이주를 하게 된 어머니. 정부에 대한 불신, 어쩔 수 없었던 선택 앞에서 마주하게 되는 그리움과 화한. 이 이야기가 영화가 아닌 실화라는 것에서 오는 충격과 안타까움은 영화와 드라마를 볼 때 느끼는 그것과는 달랐다. 양영희는 어린 날 자신의 오빠들을 빼앗아 간 북한 정권을 지지하는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카메라를 들어서 알츠하이머 이전과 죽음에 가까워져 자식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어머니를 닮는다. 그리고 어머니 인생의 굴곡들을 오랜 시간 묵혀뒀던 기억과 함께 짚어나간다.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어머니를 이해해 나간다. 영화는 감독의 일본인 남편 카오루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삼계탕(수프)을 먹는 현재와 어머니의 증언을 보여준다. 막연히 역사서의 한 단락으로만 느껴졌던 사건들이 개인의 미시 사로 나타날 때, 씻을 수 없는 상흔을 평화로워 보이는 현재에 발견하게 될 때, 영화에서 ‘기록한다’라는 것의 의의를 체감하게 된다.
이 영화는 감독의 이전의 3부작과 결을 이어 나간다. <디어 평양>, <굿바이 평양> 아직 이 두 개는 보지 못했지만 기꺼이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사진 출처: 네이버 > 수프와 이데올로기 > 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