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와 지혜

환자의 이익으로

by 박재석

2020년 6월 11일,

최근 미국에서 코로나 19 누적 확진자 수가 200만 명을 넘었습니다. 더 우려스러운 일은 경제적인 이유로 각 주마다 조금씩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하기 시작하면서 다시 확진자 수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벌써 2차 대유행이 우려된다는 소식까지 들립니다. 제가 사는 미주리주도 6월 첫날 소규모 점포를 중심으로 문을 연 뒤, 지난 주말 확진자 수가 전주에 비해 두배 가량 폭증했습니다.


미주리대학병원 코로나 중환자실에도 평소 서너 명이던 환자가 지난 주말부터 6-7명 수준으로 늘었습니다. 아직 2차 대유행을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고 하지만, 지역 언론에서는 그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2차 대유행에 대비해야 할까요? 끈질기게 우리를 괴롭히는 이 바이러스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바이러스 자체를 악이라고 규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왜냐면 그 자체는 생존을 위해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미물에 불가하기 때문이죠) 이 바이러스가 불러일으키는 병증과 그로 인한 공포를 어떻게 지혜롭게 다룰 수 있을까요?




"삐삐삐"

나른한 오후 시간 사무실을 울리는 삐삐 소리. 낯익은 번호에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전화를 걸었습니다. 중환자실 데스크 사무원 코트니가 코로나 환자 가족들이 임종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번 경험도 있고 해서 이번에도 병실 밖에서 환자들을 위로할 준비를 하고 5층 중환자실로 향했습니다.


붉은 경고 표지판이 붙든 출입문을 열고 들어 선 코로나 중환자실,


간호사들과 의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최근 늘어난 중환자들 때문에 9개 병상 중 7곳에서 중증 코로나 환자 치료와 돌봄이 24시간 이어지고 있습니다. 담당 간호사로부터 환자의 신상과 상태를 전해 듣고 환자 가족들을 찾았습니다. 병실 앞 어딘 가에 있거나 병동 밖 회의실에 대기하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입니다.


아뿔싸!


환자 가족으로 보이는 한 나이 든 여성과 중년의 남성이 병실 안에 마스크만 쓰고 들어가 있는 겁니다. 특히, 아내로 보이는 여성은 침대 곁에 앉아 환자의 손을 꼭 붙들고 있었습니다. 가운과 장갑, N-95 마스크 위에 격리 실용 병원 마스크까지 이중으로 채비를 하고 병실로 들어 간 저와는 사뭇 대비되는 모습입니다. 환자의 아내인 제인(가명)이 반갑게 저를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담담하게 상황을 이야기했습니다.


"남편이 이제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라네요." 제인이 천 마스크를 고쳐 쓰며 말했습니다.


"이 상황이 참 안타깝습니다. 어떻게 위로를 해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차분히 말을 건넸습니다. 하지만, 장갑도 끼지 않은 채 환자의 손을 부여잡고 눈물짓는 제인을 보면서, 의학적으로 안전하니까 이렇게 배려한 것이겠지 믿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어떻게 이런 상황이 가능한지 호기심이 생겨 애도에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상황에서 직접 물어보기도 어색해서 가급적 환자에게서 멀리 떨어져서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환자의 인생에 대해 조금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제인은 저의 질문에 흐르는 눈물을 닦은 뒤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그는 성실한 설교자였습니다. 지난해 은퇴한 뒤에도 지역 교도소에서 복음을 전했죠. 고등학교 때 만나 19살에 결혼 한 뒤 신학교에서 함께 공부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거의 반세기를 함께 사역했습니다. 오늘 하나님이 부르시니 어쩔 수가 없네요. 그래도, 이렇게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해요."


"그러게 말입니다. 보통 가족들이 병실 밖에서 이별을 하는데, 오늘은 좀 특별한 것 같습니다."


저는 한편으로 의료진의 판단을 믿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여전히 아내의 감염이 걱정됐습니다. 그러나, 환자 가족들이 병실 밖이 아니라 안에서 그것도 환자의 손을 잡고 여느 때처럼 마지막을 지켜볼 수 있게 된 것이 너무나 감격스러웠습니다. 기도를 하기 위해 저도 환자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인공호흡기가 돌아가고, 환자의 눈은 초점을 잃어 가고 있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이 세상을 떠가는 환자와 이를 곁에서 지켜보는 가족들에게 하늘의 평안과 위로가 함께 하기를 기도했습니다.


이윽고, 환자의 아들이 도착해서 가족들과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저는 병실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곧장 담당 의사에게 달려가 자초지종을 물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의학적으로 안전하다는 판단 아래 가족들을 최대한 배려한 조치였습니다.



의학적으로 이 환자의 상태는 다른 중증 환자 치료 과정과 조금 달랐고, 특히, 2주 이상 인공호흡기에만 의존해 생존해 있었던 데다, 강력한 마취성 약물로 마치 냉동인간처럼 모든 의식적 반응을 중단시킨 상태에서 치료를 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거의 모든 바이러스는 인공호흡기 안에서만 존재하고, 설사 침대나 환자의 몸에 바이러스가 묻어 있다고 해도 그것은 환자 가족들이 병실 밖에서 깨끗하게 씻어내면 감염 위험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환자의 요구대로 임종을 병실에서 맞이 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철저하게 환자 치료 상황과 모든 감염 상황 등을 고려해 환자에게 가장 좋은 방안을 제공한 것입니다.


이런 특수한 의학전 상황과 그것을 적절하게 판단해 환자의 임종을 가족들이 곁에서 지킬 수 있도록 배려한 의료진들이 참 감사했습니다. 막연한 두려움은 무지에서 비롯됩니다. 이런 구체적인 이야기를 미리 듣지 못했던 저는 막연한 믿음에 의지해 애도를 함께 했지만, 충분하지는 못했습니다.


설사 이런 사실을 알았더라도 제가 이 사실을 제공한 우리 의료팀을 믿지 못했다면 제 안의 공포심은 여전히 존재했을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장담은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사례가 모든 상황에서 적용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최대한 지식을 모으고, 그 지식을 통해 통제 가능한 상황을 조성하고, 그 범위 안에서 환자의 가족들에게 임종의 고통을 덜어 줄 수 있는 지혜를 모은 의료팀의 판단과 결정이 참 고마웠습니다.


이런 지혜는 단지 병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닐 것입니다. 무엇보다 미국을 이끌고 있는 미국 정부가 이런 지혜를 발휘해 주길 기대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나 동떨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정치권에서는 의료 전문가들의 조언을 무시한 채 마스크 착용도 정치적인 목적에 따라 사용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정치 지도자들의 행태는 바이러스 유행 초기 사람들의 방심을 조장한 측면이 있습니다. 정말 지혜롭지 못한 행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백번 양보해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당신의 뜻에 따라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지만, 그 과정에서 악은 치열하게 이 선의 성취를 지연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 지연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 그 가운데도 가난한 사람의 고통이 상대적으로 현저히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유력 일간지인 워싱턴 포스터는 2020년 4월 7일 자 신문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거주하는 지역은 다른 백인 거주지에 비해 감염률이 3배나 높고 사망률은 거의 6배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라고 보도했습니다. 이유는 가난해서 비싼 의료보험을 살 여력이 없는 사람들은 당뇨병, 심혈계 질환 등 기저질환이 많아서 이들이 코로나 19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코로나 19 같은 자연의 악을 대처하는 일에 위정자들이 정파를 뛰어넘어 함께 지혜를 발휘해야 할 이윱니다.


코로나 19의 2차 대유행이 현실화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나, 현재까지 축적된 지식과 경험들을 공유하며 철저하게 의료사각지대에 놓인 가난한 이웃들이 더 이상 희생당하지 않도록 지혜를 모으지 않는다며 뉴욕주와 캘리포니아주의 재앙이 이 곳 중부에서도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또 상대적으로 큰 희생을 당하는 쪽은 가난하거나 자신을 지키기 어려운 노약자들이 될 것입니다. 더 이상 가난한 사람들이 이 자연악에 더 많이 희생되지 않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