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를 멈추지 마소서

by 박재석

2020년 7월 20일,

지난 몇 주간 제가 사는 미주리주를 비롯한 많은 주에서 코로나 19 확진자가 다시 폭증했습니다. 미주리대학병원 코로나 중환자실에서도 제가 확인한 분만 세분이 돌아가셨습니다. 가장 슬픈 것은 일련의 우울한 일들에 내 힘으로는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무력감, 병원 채플린으로서 항상 겪는 일이지만, 겪을 때마다 새로운 이 무기력감이 저를 더욱 우울하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저는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용기를 내어 실천하는 것이 이런 깊은 무기력감에서 벗어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사실을 이미 배워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힘든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무엇보다 믿음을 갖고 온전하게 기도에 집중하지 못해 더 힘들었던 같습니다.


그리고, 새롭게 시작한 월요일 아침,

천둥번개를 동반한 큰 비가 내릴 것으로 예보된 터라 먹구름으로 찌푸린 하늘이 꼭 제 마음 같았습니다.


출근하자마자 지난주에 만난 에크모 환자를 검색했습니다. 그런데, 환자가 심장 중환자실 CIUC 차트에서 빠져있었습니다. 자동적으로 사망을 직감했습니다. 그리고, 오후 채플린 회의시간에 혹시 주말에 환자 가족들로부터 콜이 없었는지 물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콜을 받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그럼 살아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회의를 마친 뒤 곧장 환자 이름으로 다시 종합 검색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환자가 제 담당인 일반 중환자실 MICU로 옮겨진 사실을 그제야 확인했습니다. 순간, 저의 미숙한 확인으로 오전 내내 스스로 우울함을 자초한 제 자신이 약간 창피했습니다. '프로페셔널 채플린 맞아?'




부끄러운 생각도 잠시, 곧장 일반 중환실로 달려갔습니다.


3주 전 처음 이 에크모 환자와 아내를 봤을 때와 확연히 달라진 병실 풍경이 제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심장과 폐기능이 상실된 환자에게 피를 완전히 밖으로 빼내 산소를 공급해 다시 환자의 몸으로 넣어주는 에크모 장치가 사라졌습니다. 신장 기능을 대신하는 투석기도 일단 사용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호흡을 대신하는 기계만이 침대 옆에 설치돼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곁에 처음 만난 그때처럼 환자의 아내가 앉아 있습니다.


환자의 아내 제인(가명)이 저를 반갑게 맞이합니다.


"의사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아기 아빠가 큰 고비를 넘기고 회복하고 있다고 합니다. 인공호흡기가 호흡을 돕고 있지만 거의 정상적으로 환자가 혼자 호흡을 하고 있어요."


지난 3주간 죽음을 넘나드는 사투로 피곤한 탓인지 여전히 환자는 깊은 잠에 들어 있었습니다. 저는 정말 기쁜 소식을 들었지만, 한참을 멍하니 환자의 자는 모습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절망 속에서 그 환자의 회복을 위해 하늘의 자비를 간구했지만, 저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전까지도 그런 부정적인 생각에 휘둘려 환자를 제대로 검색해 보지도 않고 지레짐작으로 제 자신을 더 큰 우울함 속으로 몰아갔었는데...'


"주님 감사합니다."

잠시 뒤, 제가 감사를 연발하자 제인이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심장 중환자실 의사들과 간호사들, 제가 만난 모든 의료진들이 저와 애들 아빠를 위해 기도해 주었습니다. 얼마나 고마운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어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이제 용기를 얻었어요. 결코 포기하지 않고 완쾌될 때까지 기도할 겁니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지난 3주를 병원 앞 호텔에서 머물며 급성 췌장염에 의한 합병증으로 인해 사경을 헤매던 남편을 간병한 제인, 저는 그녀가 심장 중환자실에서 울부짖으며 환자에게 했던 말이 기억났습니다.


'당신은 결코 이렇게 절 떠날 수 없어요'


마치 환자와 주님이 이 울부짖음에 반응한 것처럼 제인의 남편은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심할 수 있는 상태는 아직 아닌 것 같습니다. 제인도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제인은 더 이상 슬프거나 두렵지 않다고 했습니다. 힘들지만 의료진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의 기도가 있어서 외롭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한번 제인과 함께 환자에게 안수하며 기도했습니다. 주님의 자비가 멈추지 않기를 간구했습니다. 또, 우리 의료진들을 축복하고 저의 저의 믿음 없음을 도와주셔서 다시 한번 전심으로 제인과 제인의 남편을 위해 온전한 믿음으로 기도와 간구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늘을 봤습니다. 하루 종일 먹구름과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우로 사납게 보였던 하늘이 어느새 파란 속살을 군데군데 드러내며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하얀 구름 사이로 찬란한 햇빛이 따갑게 내리쬡니다.


칠흑같이 어두웠던 먹구름 위에 있었던 그 태양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렇게 겪고 또 겪었지만 먹구름만 보면 두렵고, 쏟아지는 장대비와 천둥소리에 그만 길을 잃고 맙니다. 그 어둠 위에 태양이 여전히 비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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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리대학병원 정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