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이별

이 땅의 수많은 링닝의 오빠를 위해 울고 싶습니다

by 박재석

유럽 최대의 난민촌 보호소가 있는 그리스의 한 섬에서 큰 불이 났습니다. 때문에 난민들이 많이 치고, 섬을 탈출한 난민들은 그리스 시내의 한 주유소에서 노숙을 하는 모습이 외신을 통해 보도됐습니다.


저는 자발적으로 한국을 떠나 이 곳 미국에서 정착해 살고 있어서 난민들의 어려움을 잘 모르지만,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습이 결코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특히, 이방 땅에서 몸이 아프기라도 하면 정말 끔찍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2020년 9월 16일 새벽,

병원에서 미얀마에서 이주해 온 난민 가족을 만났습니다. 2016년 아들과 함께 미주리로 이주해 온 링닝(가명)씨는 하나뿐인 오빠와 작별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오빠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괜찮아 보였어요.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떠날 줄은 몰랐어요."


링닝씨는 참았던 눈물을 쏟았습니다. 영어를 잘 못한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은 거의 대부분 표현했습니다.


이 곳에 와서 새로운 말도 배우고 일도 하며 아들과 잘 지내고 있었는데, 텍사스에서 혼자 살던 오빠가 갑자기 쓰러져 응급실에 누워 있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자신이 있는 미주리로 이송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간에 이어 신장 등 내부 장기들이 기능을 하지 못하고 갑자기 오늘 새벽 가족들과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떠난 것입니다.


링닝씨는 간이 좋지 않았던 오빠에게 자신의 간을 이식시키려고 애를 썼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렇게 허망하게 오빠를 떠나보낸 것이 아쉽다며 자리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가족들의 요구에 따라 자원봉사를 하시는 천주교 신부님과 함께 간단한 예식으로 고인과 가족들을 위로했습니다.


어두웠던 병원 밖이 어느새 아침 햇살로 눈부시게 바뀌었습니다. 교대를 위해 출근하는 간호사와 의사, 직원들과 조우하며 주차장으로 향했습니다. 이윽고 차 안에 앉아 잠시 눈을 감았습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고향에 살아 계시다는 링닝씨의 어머니는 지금 어떠실까 '고단한 삶, 이주민의 삶과 죽음, 그리고 이별'


특히 생존을 위해 고향을 등지고 떠나온 이주민들이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로 허무하게 최후를 맞이한 사례도 차례로 떠올랐습니다.


지난달 코로나 중환자실 상담실에는 멕시코에서 이주해온 노동자 두 분이 앉아 있었습니다. 자신의 막내 동생이 코로나에 걸려 사경을 헤매는데 이제 더 이상 손쓸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더욱 딱한 사정은 막냇동생 가족들이 있는 멕시코에서 동생 가족들이 들어오지도 못하고, 동생의 시신을 멕시코로 보낼 수도 없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두 형제들은 자신들도 이 곳에서 고생하며 가족들을 먹이고 이제는 함께 살게 됐는데 막내 동생만 이렇게 먼저 주님 곁으로 보내게 돼 아쉽지만, 머지않아 다시 만날 것이라며 스스로는 위로했습니다. 위로를 전하러 갔던 제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말았습니다.





비대면이 새로운 삶의 방식이 되어 가고 있는 요즘,


함께 있고 싶어도 함께 할 수 없는 가족들이 있어 슬픕니다. 또, 함께 있지만 기본적인 생존권조차 누리지 못하며 이곳저곳,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아야 하는 가족들도 있습니다. 제일 슬픈 건 그렇게 고단한 삶을 살다가 가족들과 작별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떠나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에게는 언젠가 맞이 할 '눈물이 없고 이별이 없는 영생'에 대한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그 소망을 잠시 접어 두고 이 땅의 수많은 '링닝의 오빠들'을 위해 함께 울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