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듭짓기

쉽지 않지만 꼭 해야 할 일

by 박재석

2020년 10월 17일 토요일 아침,

보통은 늦잠을 자지만 이날은 이른 아침에 잠이 깼습니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 방안 온도가 많이 낮아졌기 때문입니다. 어린이 여성 병원 당직 근무 대기라 일어나야 하긴 했지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침대 속에서 뭉그적 거릴 때였습니다.


삐삐삐!

어린이 여성 병원에서 콜이 왔습니다. 전화를 해 보니, 30대 쌍둥이 가진 임산부가 유산을 했는데 채플린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한몇 개월 다행히 영아 사망 콜이 없었어 퍽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올 것이 왔구나 싶어서 별로 크게 긴장이 되진 않았지만 산모가 어떤 상태일지가 걱정이 됐습니다.


병실 앞에서 담당 간호사를 만나 현재 상태를 물으니, 가족들을 기달고 있는 환자는 비교적 안정적이라고 했습니다. 직접 확인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아서 가족들이 도착하기 전에 먼저 산모를 만났습니다.


불 꺼진 병실에 옅은 햇살이 블라인드 사이로 비치고, 침대에 누운 산모가 마스크를 하며 저를 맞이 했습니다.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이 상황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산모는 비교적 차분한 목소리로 저의 방문에 고마워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지지해 주면 좋을 지도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산모는 정말 여느 분들과 달리 차분하게 자신이 겪고 있는 감정 가운데 자신을 가장 괴롭히는 것이 죄책감, 정죄감이라고 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자신이 선택한 불임시술 방법 때문에 감염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조산이 일어나 18주 된 쌍둥이 모두 죽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소한 이유 등으로 자신은 물론이고 남편까지 탓하며 슬픔과 분노의 시간을 보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두 조산아들을 볼 엄두가 나지 않으니, 저로 하여금 세례를 베풀어 주고 함께 기도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래야, 산모 자신은 물론이고 남편과 가족들이 마음을 추스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 산모를 이야기를 듣고 저는 참 감사했습니다. 정말로 마음을 추스리기가 쉽지 않을 텐데, 자신이 가진 신앙을 믿고 매듭지고 앞으로 나가려는 삶에 대한 희망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처한 현실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을 누르기보다는 잘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권면했습니다. 제가 하는 종교적인 의식조차도 모두 그런 슬픈 감정과 죽음이라는 현실을 온전하게 받아들이게 하는 일종의 '매듭짓기'라는 점을 다시 확인시켜 드렸습니다.




이윽고, 가족들이 도착했습니다. 산모와 남편, 산모의 어머니가 병실에 기다리는 동안 저는 담당 간호사의 안내를 받아 냉장고에 보관 중인 태아의 시신을 마주했습니다. 간단한 세례 의식을 마치고 다시 병실로 돌아와 성경 구절을 잃고 함께 기도했습니다.


산모의 흐느낌이 들렸습니다. 잠시 침묵했습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각자 마음속의 슬픔을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애도의 과정에 대해 이 시간 꼭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나눴습니다. 그러자, 산모가 말했습니다.


"목사님이 직접 내 아이들에게 세례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의 짐이 조금 놓이는 듯합니다. 쉽지는 않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고,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영적인 가이드를 받고 싶습니다."


저는 영적인 가이드가 될지는 모르지만, 속으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기도하며 성경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나 해 드렸습니다.


다윗왕이 신하의 아내 밧세바를 취해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하나님의 징계로 병을 얻어 죽게 됐습니다. 그때 다윗을 7일간 금식하며 아기를 살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 아기는 죽었습니다. 그러자, 이 소식을 알게 된 다윗은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예배를 드리고, 왕궁으로 돌아와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렇게 슬프게 금식하며 울고 불고 기도하던 다윗이었기에 아기의 죽음을 알리기 조차 힘들어했던 신하들이 아이가 죽자, 다윗 왕의 달라진 모습을 보고 의아해하며 물었습니다. 그러자, 다윗왕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이가 살아 있을 때는 내가 하나님께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울고 빌었지만, 아이가 죽었으니 어떻게 하겠나, 죽은 자를 살리는 일은 내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니, 내가 그에게 가면 갔지, 죽은 그 아이는 내게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고 말입니다.


한 참을 듣고 있는 산모의 어머니가 저는 솔직히 하나님께 화가 납니다. 어렵게 임신을 했는데 그래도 둘 중에 하나는 살려주시지, 둘 다 데려가셔서라며 말꼬리를 흩트렸습니다. 산모의 아빠도 아이를 위해 그렇게 기도했는데 말이죠.


저는 먼저 그분의 솔직함에 감사를 나타냈습니다. 그리고, 속에 있는 불편한 마음들을 말로 잘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애도 과정에 도움이 되고 또 성격적인지에 대해서 함께 나눴습니다. 그리고, 말씀 끝에 산모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목사님, 저는 어떤 일이 있어도 꼭 아이를 다시 갖고 싶어요. 몸이 회복되면 시험관 시술에 다시 도전하려고 합니다. 정말로 오늘 방문해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함께 감사했습니다.


"정말 힘든 일을 당하셨는데 이렇게 빨리 힘을 내시려고 하시니 참 대단하십니다. 하지만, 너무 빨리 회복하려고 애쓰지는 마세요. 아마 시간이 좀 필요하실 겁니다. 그러고 나면 반드시 산모님이 희망하시는 일이 일어날 것으로 봅니다. 다윗 왕도 그렇게 주님 앞에서 매듭을 짓고 앞으로 나아가서 결국 솔로몬을 얻게 됐으니까요."


산모의 눈가에 미소가 보였습니다. 반드시 이 어려운 애도의 시간을 잘 보내시고 건강한 아이를 다시 갖고 무사히 출산하게 되시길 기원합니다.


18 주된 쌍둥이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이 땅에서 독립적인 삶을 살지는 못했고, 이름도 없었지만, 너의 엄마의 사랑과 눈물, 아빠의 눈물과 기도를 꼭 기억해 주렴... 그곳에선 더 평안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