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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석 May 15. 2021

고통이 우리를 부를 때

전직 기자 미국 병원 채플린 생존기

병원 채플린은 관계 속에서 성장한다 


이렇게 병원 채플린은 종교와 인종, 성별, 성적 지향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소통해야 하기 때문에 대인 관계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하고, 또 상대방이 드러내지 않은 부분을 감지할 수 있는 대인관계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이번 장과 다음 장에 걸쳐 병원 채플린이 되기까지 제가 겪은 소그룹 관계 훈련에 관해 함께 나눠 보려고 합니다. 

    이 소모임은 대인관계집단 Interpersonal Relations Group, IPR이라고 불립니다. 미국 병원에서 진행되는 채플린 레지던트 1년 과정은 보통 5명에서 8명이 한 그룹이 되어 함께 수련을 합니다. 주된 목적은 대인 관계를 통해 서로 성장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 방법론으로는 일명 ‘행동-성찰 action-reflection” 학습 모델입니다. 특히, 대인 관계에 있어서는 서로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고 직접적이면서 관계적인 말과 행동으로 서로의 성장 목표에 초점을 맞춰 관계를 발전시켜 나갑니다. 병원이라는 조직생활에서는 환자와 가족, 스태프들 간의 복잡한 대인 관계가 존재합니다. 이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소통입니다. 원활한 소통의 핵심은 바로 지지 support와 직언 confrontation입니다. 다양한 주제를 참여자 스스로 제기하고 그 말과 행동에 대해 피드백을 나누는 것이 이 시간의 뼈대입니다. 자신이 경험한 환자, 스태프, 혹은 소그룹 안에서 경험한 일들, 그리고 병원 사역과 관련한 자신의 개인적 일들까지 다양한 주제를 자유롭게 이야기합니다. 

    개인적으로 환자를 방문하고 의미 있는 만남에 대해 대화록을 작성해서 서로 나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는데요, 매주 한 번씩 두 시간씩 다른 사람의 행동과 말에 반응하며 대응하는 그야말로 각본 없이 진행되는 대인관계 IPR 시간은 제게 그야말로 지옥과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하면서 영어를 곧잘 한다고 여겼는데 감정이 개입되고 서로 상대의 행동과 말에 대해 직언을 해야 하는 순간에는 정말이지 입이 잘 열리지 않더라고요. 처음 3개월은 정말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동료 채플린들로부터 ‘그렇게 지혜 있는 척 말을 듣고 만 있으면 우리가 당신으로부터 배울 것이 뭐가 있는가? 왜 우리를 무시하는가? 영적으로 당신만 좀 더 깊고 특별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직언을 듣고 나서야 더 이상은 안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이윽고 말문이 터지는 상황이 일어났습니다.   

    저희 그룹에 두 여자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한 분은 남편이 암으로 투병하고 있고, 한 분은 혼자 사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야근을 정할 때 서로 좋은 시간에 그리고 더 많은 시간을 할당받으려고 근무를 정하는 날이면 목소리를 경쟁적으로 높이는 것을 여러번 봤습니다. 사실, 저도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고 가족들과도 떨어져 동료 채플린 집에 의탁하고 있던 터라 근무시간이 많이 필요했지만, 말도 제대로 못 하고 화가 났습니다. 이 사람들 정말 목사들 만나 할 정도로 근무를 정할 때면 정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그러다가 그룹 시간에 그들이 근무 이야기로 서로 티격태격하는 위기의 순간이 왔습니다. 분위가 가 정말 안 좋았습니다. 더 듣고 있기가 힘들어서 제가 폭발해 버렸습니다. 순간 다른 목사님들은 물론이고 임상목회 감독선생님까지 놀라서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저는 순간 얼굴이 빨개지고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들 제가 입이 터졌다며 박장대소를 하는 것입니다. 저는 화를 냈는데 사람들은 말을 하지 않던 제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는데 기쁨을 감추지 못한 것입니다. 

    근무를 정할 때 사람들은 저에게 호혜를 베푼 답시고 한 달에 한 번은 꼭 집에 갔다 와야 한다며 주말을 근무를 빼 주었습니다.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근무시간이 더 필요했고 그래야 조금이라도 경제적인 부담을 덜 수 있었기 때문이죠. 문제는 제가 제 때 제 의사를 밝히지 않아서 사람들이 나의 마음을 몰랐던 것입니다. 제가 홧김에 부족한 영어로 죄다 털어놓고 나서야 그들도 저를 동료로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신뢰를 갖게 되면 될수록 우리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더욱 깊어 갔습니다. 신기했습니다.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그 그룹에서는 나눌 수 있었습니다. 더 자신의 속마음을 표현하면 할수록 다른 사람들도 그 신뢰를 바탕으로 더 깊은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습니다. 서서히 그룹 시간이 기다려졌습니다. 나의 속마음을 나누면 나눌수록 서로의 나눔은 깊어졌고, 저도 동료 목사님들도 그 속에서 자신의 감춰진 인격을 발견하고 조금씩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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