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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석 May 11. 2021

고통이 우리를 부를 때

전직 기자 미국 병원 채플린 생존기

하나님은 종교보다 크다


앞서 소개한 이야기는 헨리 나우웬 신부가 70년대 초반 젊음 이들이 교회를 등지고 떠나는 세태를 보면서 기성세대가 어떻게 그 젊은이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서 위기의 젊은이들을 구할 수 있을까 그 답을 구하는 하나의 경험적 대안을 이야기하기 위해 머리글로 제시한 동화입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질문 같습니다. 저는 병원에서 이런 경험을 통해 학교에서 배운 교리나 성경의 진리를 어떻게 고통과 씨름하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으로 적용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에 많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은 세대에 따라 새롭게 해석돼야 하고 그 진리는 그래서 영원히 진리로 남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종교보다 크시기 때문이죠. 채플린이 되지 않았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이 광대하신 하나님의 경험을 좀 더 나눠 볼까 합니다. 종교를 넘어 고통 속에 신음하며 씨름하는 사람들의 눈 속으로 좀 더 들어가 보시죠. 

    2017년 3월, 인디애나 주 라일리 어린이 병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오하이오 주립대학 병원에서 채플린 레지던트 1년 과정을 모두 마쳤지만, 정규직 자리를 얻지 못해 다시 이 어린이 병원에서 인턴 채플린으로 일을 해야 했습니다. 어느 날, 일반 병동에서 한 청소년을 만났습니다. 말레이시아에서 이민을 온 여학생이었는데요, 병원 채플린을 처음 만나서 그런지 말을 잘하지 않더라고요. 처음에는 다들 그렇습니다. 그래서, 병원 목사라고 쉽게 이야기했는데 못 알아 들어서 곁에 있는 부모님께 종교를 물어봤더니 이슬람교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병원 이맘 (이슬람교 성직자) 같은 사람이라고 했더니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제가 그다음에 하는 말 기억나시나요? “근데 난 너에게 설교하러 온 게 아니냐!”라고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다들 까르르 웃어서 분위기가 좋아졌습니다. 맹장이 터져서 수술을 하고 회복 중이라고 했습니다. 이야기를 하다가 음식 이야기가 나와서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물었더니 어떤 국수 이름을 이야기했는데 정확히 알아듣지 못했어요. 그리고, 잠시 곁에 있던 아빠가 나가고 나서 이 아이가 자신의 속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곁에 있던 사람이 친아빠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리고, 친아빠가 돌아가시던 날 그 국수를 먹었다는 이야기를 해주는 겁니다. 순간 코 끝이 찡해지면서 주변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그 아이의 눈을 바라보는데 어찌나 순수하고 아름답던지요. 정말 고맙더라고요. 처음 본 이방인 병원 채플린에게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신의 가장 깊은 곳의 문을 열고 가장 은밀한 곳으로 이방인을 초대한다는 것, 마치 주변이 숙연해지는 느낌이랄까요. 대화를 마칠 무렵 제가 용기를 내서 나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데 기도를 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의외로 흔쾌히 받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께 아이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시고 이민 온 가족의 평안과 번영을 빌어 주었습니다.  

    때때로 종교가 다른 분들을 만날 때 불편함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한 번은 무슬림 남자 환자를 방문했는데, ‘이슬람교 101’ 강의 시간 같았습니다. 평화를 이야기하고 한 분이신 하나님을 이야기할 때까지는 참 좋았는데, 은근히 예수님의 신성을 깎아내리는 이야기를 할 때는 저도 조금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아, 내가 일방적으로 예수님 이야기만 하고 상대의 종교를 깎아내릴 때에도 상대는 이런 마음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지요. 이럴 때는 어떻게 하냐고요? 같이 논쟁을 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아서, 가족 이민 이야기, 혹은 병실에 있는 사진이나 선물 들을 가리키며 관심을 돌리는 방법을 주로 씁니다.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할까 합니다. 오하이오 주립대 병원에서 만난 힌두교 환자 이야기인데요. 인도에서 이민 온 지 40년이 넘은 할아버지가 당료 때문에 다리 한쪽을 절단하셨어요. 참 힘든 상황이지요, 신체의 한 부분을 잃은 분들도 정신적으로 많은 충격과 슬픔에 빠지는 애도 grief의 과정을 겪습니다. 그래서, 병원 채플린이 방문하도록 의뢰서가 내려오죠. 그런데, 이분은 정말 도를 통한 분 같이 시종일관 담담하게 모든 것을 신의 뜻으로 받아들이시는 겁니다. 한 시간 가량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감정의 어느 한 부분도 흐트러짐이 없었습니다. 채플린의 중요한 임무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애도의 과정에서 환자들이 힘들어하는 감정들을 잘 추스를 수 있도록 도와 드리는 애도상담이거든요. 가부장적인 분위기에서 자란 남성들의 경우 감정을 말로 잘 표현하지 못할뿐더러 실제로 눈물을 보이는 것을 아주 부끄럽게 여기죠. 그런 것들을 최대한 배려하면서 눌려지거나 숨겨진 감정들을 찾아내고 환자로 하여금 표현하게 하는 일을 합니다. 

    근데, 이 분은 정말 시종일관 ‘모든 것이 신의 뜻이다’라며 순종하면 그뿐이라는 겁니다. 이 분의 눈을 한 참 바라보고 있는데 정말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고요. 그리고 조용히 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고 병실을 나왔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는 교리적 생각에 사로 잡혀 있었던 저에게 병원 채플린 수련과정에서 겪은 비종교인이나 타종교인과의 대화, 특히 병마와 싸우며 고통 속에서 씨름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과 인간들에 대한 사랑은 교리 속에서 배운 것보다는 훨씬 더 광대하고 신비롭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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