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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석 May 22. 2021

고통이 우리를 부를 때

전직 기자 미국 병원 채플린 생존기

인연이 준 선물 


여러분들은 인연을 믿으십니까? 만나게 될 사람은 반드시 만나게 돼 있다는 말을 받아들이시는지요?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 되고, 인연 또한 시간이 다하면 스스로 풀어진다는 말은 어떤가요? 인연의 관점에서는 만남에는 반드시 헤어짐이 있고, 헤어진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고 하더군요. 회자정리, 거자필반!  지난여름 만난 한 환자 가족으로부터 들은 기묘한 만남과 이별, 그리고 재회의 이야기를 들려 드릴까 합니다. 


2020년 6월 30일, 

코로나 19 환자를 돌보느라 여느 때보다 힘든 하루를 보냈습니다. 퇴근하면서 '오늘 밤에는 콜이 없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집에 와서 쉬고 있을 때였습니다. 초저녁부터 삐삐가 울렸습니다. 전화를 해서 확인을 해보니, 야간 당직 때 주로 오는 콜은 아니었습니다. 


이튿날 방문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더니 간호사가 환자가족이 지금 채플린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는 겁니다. 속으로 '참 특이한 일이다' 생각했습니다. 왜냐면, 코로나 19 때문에 죽음에 직면한 환자 가족들이 아니면 저녁에 병원에 머물 수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피곤한 몸을 이끌고 병원으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병실에는 민머리에 하얀 턱수염을 한 할아버지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 곁에는 긴 생머리를 한 할머니가 서 있었습니다. 제 소개를 드리자, 아내로 보이는 할머니가 어찌나 반갑게 맞이 해 주시던지 마음속 불평이 순간 물거품처럼 사라졌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쉐런(가명)이라고 밝힌 할머니는 제게 채플린을 부른 이유를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환자인 샘(가명) 할아버지는 트럭을 몰다가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리고, 뇌출혈이 발견되어 응급 수술을 받은 뒤 치료를 다 받고 다음 날 오전 재활병원으로 전원을 하게 됐다는 겁니다. 그런데, 환자가 좀 불안해해서 꼭 채플린과 함께 기도를 하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팔십이 넘은 샘 할아버지는 귀가 잘 들리지 않는지 제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곁에서 쉐런 할머니가 다시 이야기해 주면 그제야 반응을 보였습니다. 


평생을 예수님을 믿고 살아왔다고 하면서 제 손을 꼭 잡는 샘 할아버지는 자신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증을 받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쉐런 할머니에게 할아버지랑 얼마나 함께 사셨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두 분이 부부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답은 제 기대를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쉐런 할머니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제가 들은 이야기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쉐런은 12살에 18살인 동네 오빠 샘을 만났습니다. 둘은 친한 오빠 동생 사이로 지내다가 정이 들었습니다. 쉐런이 16살, 샘이 22살이던 1944년에 둘은 결혼을 했습니다. 곧, 아이들을 내리 넷을 낳았습니다. 


그렇게 15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자상하던 동네 오빠 샘은 일중독에 빠진 듯 바깥일에만 몰두했고, 아이들을 기르고 집안일을 하느라 쉐런은 꽃다운 청춘을 다 바쳐야 했습니다. 1950년대, 60년대 다른 미국 가정들이 그랬던 것처럼 남자는 바깥일을 하고 여자가 양육과 집안일을 도맡아 했던 것입니다. 


배움의 기회를 잃고 삶의 무기력 속에서 살아가던 쉐런은 당시로서는 참으로 힘든 결정을 했습니다. 자신의 잃어버린 인생을 찾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 샘과 이혼을 결심하고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그녀는 대학에서 조각 등 예술을 전공하고 석사까지 받아 새로운 커리어 우먼으로서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남성을 만나 재혼을 했습니다. 샘도 이혼을 한 뒤 다른 여성과 결혼을 했습니다. 그렇게, 둘은 첫사랑의 만남을 뒤로한 채 각자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무려 4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각자의 배우자가 모두 세상을 떠난 7년 전 어느 날, 샘은 쉐런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금요일 마을 댄스파티에 함께 가자는 제안을 한 것입니다. 그렇게 둘은 다시 만났습니다. 


쉐런 할머니는 이야기를 끝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헤어졌어면서도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샘을 향한 사랑은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아요. 특히, 샘이 댄스파티에 함께 춤을 추자고 했을 때는 마치 10대의 그 시절로 되돌아 간 것처럼 가슴이 뛰었답니다." 그녀의 눈 주변이 어느새 붉게 상기되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녀는 신앙고백에 가까운 간증을 들려주었습니다. 샘을 다시 만났을 때 기도 중에 들은 음성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샘을 사랑한단다. 이제는 네가 샘을 돌봐 줄 수 있겠니?" 쉐런은 이 음성에 답이라도 하듯이 사고를 당한 샘 곁에서 항상 함께 했습니다. 개인 SNS에 기도 체인을 만들어 수많은 사람들과 그가 회복될 수 있도록 기도해왔습니다. 마침내, 그가 회복돼 재활병원으로 옮겨 가게 돼서 하나님께 감사한다며 다시 한번 제 손을 잡고 고마움을 나타냈습니다.  


쉐런은 샘을 다시 만난 이듬해인 2014년 캔자스 시티에서 예술가, 작가들이 모여 예술 창작 문화를 공동체 발전에 접목시키는 시민단체인 Jump Start Art의 리더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몸은 고단했지만, 마음은 참 따뜻했습니다. 여느 때 같으면 응하지 않았을 콜에 피곤한 몸이 반응한 것도 신기했지만, 그 만남을 통해 전해 들은 첫사랑과 인생의 마지막을 함께 하는 이야기는 기막힌 인연의 선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만물에는 그 정한 때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묘한 것은 창조주가 그 일의 시작과 끝은 알지 못하게 하셨다고 하네요. 그래서일까요? 어떤 일의 시작과 끝을 한눈에 꿰뚫어 볼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눈 앞에 보이는 것에 마음이 미혹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쉐런처럼 시대를 앞질러 자신에게 씌워진 여성다움이라는 굴레를 과감하게 벗어던지는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인연을 믿든지 아니든지 우리는 여기, 지금을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아프지만 참기도 하고, 도저히 참지 못해서 새로운 삶을 찾아 현재의 만남을 끝내기도 합니다. 어떤 것이든 자신의 선택이니 그 선택으로 떠안게 되는 결과 또한 자신의 몫이겠지요. 


수많은 만남과 이별 속에서 하루를 또 살아냈습니다. 무엇보다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 내가 하는 선택이 나를 좀 아프게 하더라도, 부디 다른 이웃을 아프게 하는 일은 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언젠가 이 고된 여행이 끝나고 나면 인연의 끝 저 바다에서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모를 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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