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바웃 타임>을 보고
팀이 자유자재로 시간여행을 하고 다닐 때, 어두운 곳을 찾아 들어가서 진지하게 눈 감고 주먹 쥐는 모습이 웃긴 것과 동시에 나는 어쩐지 씁쓸했다. 내게도 들어갈 만한 장롱이 있고(몸을 조금 구겨야겠지만), 꽉 쥘 수 있는 주먹이 있지만 정작 돌아가고 싶은 지점이 없기 때문이다.
영화를 끝까지 다 본 후에 골똘히 생각해봤다. 음, 정말로 없군. 불행하게도, 내가 지금 말하는 ‘정말로 없다’는 것의 의미는 딱히 돌아갈 필요가 없을 만큼 지금 너무 만족스럽기 때문이 아니다. 조금 더 나은 현재를 맞이하기 위해 과거로 가곤 했던 팀과는 달리, 나는 아무튼 그 언젠가로 돌아가봤자 새로 짜여질 현재가 완벽해질 자신도 확신도 없고 또 그렇게 되고 싶은 의욕도 없다는 것이다. 태어난 직후가 아니라면 몰라도.
그러나 더 깊이 생각해보면,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게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 몇 년 전에, 그러니까 이미 엄마 뱃속을 떠난 지 한참이 지나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물론 엄마는 내게 그러라고 알려준 이야기가 아니었지만, 나는 그 사실 때문에 한동안 좀 괴로웠었다. 그게 뭐냐면... 엄마 아빠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나라는 존재가 생겼다는 것이다. 매우 절망적인 이야기였다. 일단 나는 극 J형 인간이기 때문이다. 계획적이지 않은 건 죄다 사고로 보는 내가, 알고 보니 스스로가 그 사고라는 생각이 들자 곧바로 나라는 존재를 지워버리고 싶었다.
나는 뱃속에서부터 엄마를 힘들게 한 전적이 있다. 일단 몸을 거꾸로 한 상태에서 제대로 돌릴 생각을 안 했기 때문에 엄마의 배를 가르게 만들었다. 하필 또 첫째여서 다음 타자였던 동생도 어쩔 수 없이 다시 배를 가르고 꺼내야 했다. 그렇게 태어나서는 또 잠을 끔찍이도 안 잤다고 한다. 자는 것 같아서 내려놓으면 울어재끼고 다시 안아서 어르고 달래고... 정말 고문도 그런 고문이 없었을 듯. 거기에 지금까지도 홀로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아빠도 있다. 내가 수정되었음을 알게 된 순간, 이전보다 더 무거운 무게의 삶이 아빠를 짓눌렀을 것이다.
물론 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 고통을 말끔히 씻어낼 이쁜 짓들을 했을 거라고 해도, 지금 당장의 내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결국 미안해진다. 그래서 나는 내게 시간을 돌릴 능력이 생긴다면, 엄마나 아빠에게 양도할 생각이다. 나는 내 삶이 행복해지는 것보다도, 어쩌면 지금보다 더 행복할지 모르는 엄마아빠의 또 다른 우주가 절실하다. 일단 느낌상 엄마랑 아빠는 그래도 결국 서로를 선택할 것 같으니까, 시간을 돌려서 그 어느 날 밤에, 아 근데 밤인지 낮인지는 모르는데... 아무튼 그 순간에 모든 것이 안전하게 진행되면... 아마 인주와 중규의 세상은 조금 다른 모양을 하고 있지 않을까?
어쩐지 영화가 주는 메시지와는 정반대의 마음으로 여운이 남았다. 그래... 매일이 소중하고 어쩌고... 팀아 그건 그냥 니 생각이야... 그래도 단 한 곳, 내가 이 영화가 말하는 대로 고분고분 들었던 지점이 있긴 있다. 팀의 아빠가 팀과 이별할 수 없기에 자신의 죽음을 선택한 지점 말이다. 아무리 그런 마법 같은 능력이 있어도, 부모에게 자식은 그런 것이라는 걸 이 영화도 알고 나도 안다. 문득 어쩌면, 인주나 중규나 사실 이미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 그건 여러모로 꽤 안타까운 것일 것 같다고, 나는 가만히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