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 라이프>(2006)

사라져가는 것과 이미 사라진 것을 되새기다

by 유월

<스틸 라이프>가 상실에 관해 얘기할 때, 인물의 슬픈 감정과 상실의 복구를 위한 처절한 사투를 말하지는 않는다. 감독 지아장커는 그들을 둘러싼 공간, 즉 산샤와 산샤의 댐을 통해 그 상실을 되새긴다. 남자 주인공 산밍은 오래전 자신을 떠난 아내와 딸을 찾기 위해 산샤로 왔으며 여자 주인공 션홍은 연락이 끊긴 남편을 찾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 그러나 그곳은 정부가 벌인 댐 사업 때문에 통째로 침몰된 상태였으며 수많은 이주민들을 낳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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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도, 아니 어쩌면 당연하게도 산밍이 입고 있는 흰색 러닝셔츠에서 시종일관 눈을 뗄 수 없었다. 다부진 몸을 예의상 가리기라도 한 듯, ‘옷’이 가지는 본연의 목적인 어떠한 치장이나 보호의 기능도 상실한 채 다만 그 성실한 육체 위에 얹어져 있을 뿐이다. 그토록 성실하고 검소한 사람은 결국 가족조차 가질 수 없는 현실 속에 살고 있다. 끝내 찾은 가족들과 함께 살기 위해선 3만 위엔이 필요하다. 부서진 건물들의 잔해 속에서 아내가 건넨 사탕과 그걸 깨물어 반쪽을 건네는 산밍, 이윽고 먼 곳에서 무너지는 건물의 쇼트는 이러한 중국의 현실을 압축하여 보여준다. 그것은 성실한 노동자를 가족과 떨어뜨리게 만드는 자본구조와 그 속에서의 작은 연대, 그리고 다시 그 연대마저 불안하게 만드는 사회의 모습이다.


션홍은 산샤에서 결국 남편을 찾았다. 그러나 그는 다른 여자와 만남을 가지고 있음이 암시된다. 산밍의 얘기가 노동자의 시각이었다면 션홍의 경우는 자본이 지배하는 산샤를 바라보는 여인의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그곳은 냉철하며 세속적이다. 철거라는 행위를 통해 노동자를 착취하며 폭력이 만연하다. 경찰이나 다른 국가 권력이 침범하지 못하는 자본이라는 절대 권력은 산샤를 그렇게 비극적인 장소로 만들고 있다. 베란다에서 사색에 잠긴 션홍의 뒤로, 철거되다만 구조물이 하늘로 쏘아진다. 전위적으로 보여 지는 이 쇼트마저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그곳은 상식이 지배하지 않는 곳이다. 중국 지도부의 숙원이었던 댐 건설과 그로 인해 살 곳을 잃어버린 사람들, 그리고 그곳을 지배하는 자본은 포스트모던적으로 뒤섞여 기이한 공간을 창조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이 영화는 중국의 현실로 시작해 현실로 귀결된다. ‘경제발전의 이면’이라고 표현되는 처절한 현실은 개인의 상실을 낳았다. 그리고 그들은 그 속에서 끊임없이 노동하며 상처받고 연대한다. 산밍과 비슷한 노동자들은 함께 밥과 술을 먹고, 담배를 나눠 피우며 더 나은 일자리를 얘기한다. 그마저도 광부라는 위험한 일만 남아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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