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몰리션>(2015)

진동에 관하여

by 유월

언제부터인가 “피도 눈물도 없는 놈”이라 든지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놈”과 같은 말들은 냉정하고 인간미 없는 사람을 흉보는 욕이 되었다. 통상적으로 우리는 공감과 슬픔의 표현을 소위 ‘인간적인’ 모습과 대응하여 생각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데몰리션>의 주인공 데이비스(제이크 질렌할)는 아내와 같은 차를 타고 가던 중 들이받은 트럭에 그녀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병원에서나 회사에서나 집에서나 슬픈 표정을 짓지 않으니, 다분히 비(非) 인간적 모습을 하고 있다고 여겨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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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영화를 경험한 관객들은 슬픔의 감정이 밖으로 표출되는 표현의 방식이 아니라 내부를 울리는 진동의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이해한다. 밖으로 표출되는 감정은 다른 사람에게 쉽게 전이되며 일시적인 공감을 이끌어 내기에 용이하다. 반면에 내부를 울리는 진동은 다른 사람에게 쉽게 관찰되지는 않지만 바로 가까이에서 그 진동을 느낀 사람에게 좀 더 깊은 마음의 공감을 이끌어내며, 자신의 슬픔마저 꺼내게 만드는 정동의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다, 데이비스의 내부 진동은 아내가 죽은 후 그와 친구가 된 캐런과 그녀의 아들을 진동하게 만든다. 데이비스가 무표정하게 겪고 있는 내부의 진동, 즉 내부로의 슬픈 감정을 그들은 공감한다. 이윽고 캐런은 자신이 마약 없이 살 수 없음을, 그녀의 아들은 자신이 다른 또래와 어딘가 다름을, 그러니까 자신이 게이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밝히며 공동체적인 성격으로 서로 연대한다.


우리는 지진이 진동의 형태로 땅을 울림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진동은 파괴(demolition)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내부로의 진동이 감정적인 파괴를 이끌어 내기도 하지만, 밖으로 표출되는 물리적 파괴를 이끌어내기도 하는 것은 이러한 지진의 파괴성이 기인한 결과일 것이다. 자신의 집을 망치와 트랙터로 철거하는 데이비스는 마치 지진이 휩쓸고 간 듯한 감정 상태와 물리적 상태를 가시적으로 표출한다.


우리는 뉴스로 쉽게 접할 수 있듯이, 현실에서 지진 이후 복구 작업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연대가 있어야 가능한지를 알 수 있다. 이 영화의 결말이 다소 환상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감정적 지진을 겪은 후의 복구 작업. 그것이 얼마나 치열하게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하는지는 가려지고, 쉽게 그 지진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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