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용기의 문제였다

수필

by 박진우

[그건 용기의 문제였다]

내가 처음 마주한 세상은 흑백이었다.

각각의 아름다움 같은 건 없었다. 흑과 백, 딱 둘뿐이었고, 그 둘로 모든 것의 가치가 매겨졌다. 나는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다른 걸 본 적이 없으니 의심할 수가 없었다. 눈앞에 보이는 게 전부인 사람한테, 보이지 않는 건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세상이 컬러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한테는 저마다의 팔레트가 있고, 여러 색깔을 갖고 있고, 섞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절대적인 가치 같은 건 없는 거라고. 어떤 색이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나는 못 믿었다. 세상이 컬러라니. 말이 안 됐다. 내 주변에 세상을 컬러로 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니까 당연히 부정했다.

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 생각했다. 정말 부정한 건지, 아니면 무서웠던 건지. 흑백뿐인 세상에서 나 혼자 컬러가 된다는 게. 그게 자유가 아니라 외로움일 것 같아서 도망친 건 아닌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흑백의 세상에서 사는 건 행복하지 않았다.

남이 세워놓은 기준에 나를 끼워 맞추느라 평생을 써야 했다. 그것만으로도 벅찬데, 내 아이한테도 그 기준을 씌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건 정말이지 악몽 같았다.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을 쳤다. 근데 꿈에서 깨도 세상은 흑백이었다. 꿈속에서 아무리 몸부림쳐봤자 소용없었다. 현실의 내가 직접 움직여야 했다. 꿈이 아니라 진짜 내가, 용기를 내야 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세상은 컬러다.

사람들이 각자 팔레트를 들고 있는 게 보인다. 저마다의 색으로, 저마다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남이 보는 시선에 나를 우겨넣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고 나니, 풍경 자체가 달라졌다. 같은 길을 걷고 있는데 보이는 것들이 다르다.

내가 마주한 세상은 흑백이었다.
용기를 내고 마주한 세상은, 컬러였다.

돌이켜 보면 별것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냥 눈을 좀 더 크게 뜬 것뿐인데. 근데 그 눈을 뜨는 게, 그때는 목숨 걸 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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