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쉼표)

by 므므무

브런치에 매주 한 편씩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지 꽤 되었습니다. 일단 글을 올려야 한다는 어떠한 의무감에 손을 움직이다 보니 점차 제 글에 제가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수많은 엔터들 사이, 짤막한 단어들 사이에 공들인 문장이 얼마나 되는지 헤아려보면 저는 또 끝없이 부끄러웠습니다. 점차 일기처럼 변해가는 글을 보면서 ‘아예 일기처럼 써보자!’라는 저의 결심은 사실 도전이 아니라 나태였습니다. 이번 주는 저의 나태를 반성하고 어떤 다음 주를 만들어야 할지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제 필력이 떨어진 이유 중 가장 큰 하나는 요즘 책을 읽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저는 분위기에 잘 휩쓸리는 사람이라 좋은 책을 읽은 후 첫 번째로 쓰는 글을 가장 멋스럽게 씁니다. 문장 하나하나에서 책을 읽으면서 받았던 감동이 피어납니다. 좋은 경기를 보면 운동선수들이 자극받아 더 훈련을 열심히 하는 것처럼 저 역시 좋은 글에서 강한 자극을 받습니다. 제가 브런치에 발을 들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격한 우울과 좌절이 있을 때 저는 글을 더 수월하게 씁니다. 비판하고 사색하고 분노하는 감정은 단어가 되고 문장이 되고 글이 되어 흰 화면에 검은 선들을 새기게 돕습니다. 다 쏟아낸 후 날카로운 글귀들을 부드럽게 다듬고 나면 저는 신랄한 비판자가 되어있고 민감한 철학자가 되어있습니다. 사실 저는 그저 감정이 풍부한 학생이 불과하지만 말입니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저는 딱히 격한 우울이나 좌절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글이 어색하고 글 쓰는 게 밉습니다. 제가 쓴 글을 다시 검토해보는 일도 귀찮게 느껴집니다. 굶주린 소크라테스를 원했던 저는 배부른 돼지도 아닌 굶주린 돼지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적어도 인간이 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저는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려봅니다.


꿈을 꾼 적 있습니다. 글을 쓰다 보면 누군가 알아주리라는 꿈. 내가 가만히 있어도 누군가 다가와 나의 재능을 칭찬하리라는 꿈. 꿈을 꾸면 다 이루어지리라는 꿈. 저는 꿈만 꾸기 위해 현실에서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제가 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저는 꿈에 취해 아직도 잠을 자는 중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글이 꿈처럼 까마득히 느껴지고 저의 글들이 추상화가 되어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MBTI에 한창 빠진 한 친구가 제게 그런 말을 했습니다. INFP는 나중에 결국 INFJ가 된다고, 결국 이상에서 현실에 타협한다고. 저는 그 말에 솔직히 어서 현실에 타협한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이상을 꿈꾸는 스스로가 너무 어리숙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남들이 말하는 ‘철든 어른’이 되고 싶었나 봅니다.


이제 무슨 글을 써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일기처럼 조각글을 쓰는 것과 그림을 그리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이것이 쌓이고 쌓여서 무엇이 될지 스스로도 잘 모르겠습니다. 글이 아니라 스스로를 다듬을 때가 온 것 같습니다. 글쓰기를 멈추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아무리 거친 물살이 흘러오더라도 어떻게든 노를 저어 최소한 제자리에라도 있어야 합니다. 일단 조각글들을 이렇게 저렇게 되는대로 올려볼까 합니다. 그러면서 차분히 무슨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게 무엇이고 담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아마 저는 이상으로 가득한 꿈을 잃고 방황하고 있는 듯합니다. 잃어버린 꿈 대신 새로운 현실과 조금은 타협한 꿈이 갖고 싶습니다. 어떤 형식에 정착하든, 어떤 꿈을 꾸게 되든 부디 제가 꿈을 잃는 순간이 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침 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