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온 미소

by 므므무

경외하는 City에게


오늘은 그저 당신이 보고 싶었어요.

매일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우리는 함께하지만, 생각해보면 당신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볼 시간은 없었던 것 같아요.


수많은 매력을 가지고 태어난 당신은 쉴 틈 없이 우리 사이를 뜨겁게 했어요. 나는 정신없이 당신에게로 뛰어들었고 당신은 끊임없이 새로운 면모로 나를 유혹해왔죠. 어떤 모습도 당신은 세련되고 화려했고,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당신 자체가 나의 이상형이자 이상향이 되었어요. 한때는 당신과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면 신이 나서 높은 구두를 신고 당신 주위를 뛰어다녔죠.


당신과 평생을 함께하고 싶었어요. 죽는 날까지 당신의 품 안에 편안히 안겨있고 싶었어요. 당신은 나를 욕심이 많다며 나무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꾸짖음조차 사랑스러웠어요. 이상하게 당신과 관련된 일에는 욕심을 내는 것이 부끄럽지 않았거든요. 그 덕에 나는 밤낮으로 바빠졌지만, 당신을 위해 흘리는 땀방울이라 생각하면 오히려 더 흘리지 못한 것이 미안했어요. 이게 바로 사랑인가 싶었죠.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이를 응원했어요. 내가 당신과 닮아갈수록 나에게 가까운 사람부터 먼 사람까지 축하해줬죠. 당신과 나의 관계를 질투하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그들의 질투를 느낄 때면 새삼 당신이 얼마나 매혹적인 사람인가를 다시 한번 느꼈어요. 하긴 당신과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 걸 보면 당연한 일이겠죠. 도대체 나의 사랑에는 언제쯤 대답해줄 건가요? 아니, 나는 당신의 몇 번째 사랑인가요?


수많은 사람들이 당신 안에서 헤엄치고 있지만 아무도 '어장'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더군요. 모두가 당신에게 빠져버린 탓인가요, 아니면 당신 곁이라면 어장이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하기 때문인가요? 나만을 사랑해주기를 바라면서도 결국 내가 1순위가 아닌 당신에게로 돌아가는 내 모습을 보면, 둘 다 정답일지도 모르겠어요. 당신 앞에 서면 나는 물고기보다는 당신에게 모든 걸 맡기고 마는 해파리에 가깝지만 말이죠.


맞아요, 오늘은 사실 해파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글을 쓰게 되었어요. 원래 연애는 당사자가 아닌 멀리서 지켜보는 타인이 더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하잖아요? 나는 당신과 타인이 될 용기는 없지만 당신을 멀리서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 당신의 눈빛, 어디에서든 내 귀를 꿰뚫어버리는 목소리, 반대로 내 목소리는 들리는 듯 안 들리는 듯 애타게 밀당하는 당신의 귀. 당신 곁에 있을 때는 수줍은 마음에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지만, 당신의 일부들이 모인 그 전체를 한 번쯤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장면도 당신의 수많은 모습 중 하나일 뿐일지도 모르겠지만, 멀리서 바라본 당신은 생각보다 더 거대하네요. 해파리였던 나의 모습이 부끄러웠는데, 당신 안에서는 그 어떤 물고기도 결국 당신에게 몸을 맡기고 말겠어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당신의 눈짓 한 번이라도 받으려면 이별이라도 고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안타깝게도 아직 나는 당신의 전 애인들만큼 독립적이지 못하네요. 당신과의 이별 후, 쏟아질 주위 사람들의 지탄들도 두려워요.


대신 나는 당신에게 먼 미래의 이별을 고하기로 했어요. 당신과 했던 백년가약은 미안하지만 지키지 못할 것 같아요. 당신은 아마 나의 말을 듣고 비웃겠죠. 당신에게 아무리 헤어지자고 선언한들, 결국 죽음 앞에서는 당신의 품을 찾게 되니까요. 그럼에도 나는 이별을 고해야만 해요. 모두가 아는 당신의 몇 안 되는 단점이 나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거든요. 당신은 모른 척하고 있지만, 아무리 크고 좋은 어장도 이렇게까지 물고기가 많으면 산소가 부족해진답니다.


나는 지금 당신이 알려준 색들로 이루어진 미소를 짓고 있어요. 이제야 나에게도 아가미가 생긴 기분이 들어요. 당신이 물속에 숨겨둔 공기방울들의 질감이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호흡에 익숙해진 어느 날, 지금과는 조금 다른 색의 미소를 지으며 당신에게 이별을 고할게요. 부디 그때는 밀당 없이 나의 이야기에 가만히 고개만 끄덕여주세요.


그럼 그때까지 딱 지금처럼만 부탁해요.


커피로 치아가 퇴색되어버린 X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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