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라 아래

by 므므무

오로라를 보기 위해 이곳에 자리 잡은 지 5일째 되어가는 날이었다. 함께 온 친구 H가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고, 나는 설거지하던 고무장갑을 벗어던지고 밖으로 나갔다. 고개를 위로 올린 H의 뒷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의 검지 손가락을 따라 하늘로 시선을 옮겼고, 그곳엔 오로라가 있었다.


오로라는 연둣빛과 분홍빛을 연달아 띄며 화려하게 펼쳐져 있었다. 물결이라기에는 광활했고, 그림이라기에는 입체적이었다. 눈부신 그라데이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나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를 새삼 느꼈다. 해와 달의 존재를 처음 발견한 사람들의 감정이 이랬을까. 오로라를 신으로 받들고 매일같이 기도를 드려야 한다는 말을 들어도, 이 경외심이라면 그러려니 했을 것만 같았다.


나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이 감정을 나누고 싶어 H를 돌아보았다. 그도 분명 나와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을 터였다. 그러나 H의 얼굴은 창백하게 굳어있었다. 언뜻 보면 그늘이 한가득 담겨있는 표정 같기도 했다. 나는 H가 이 기분에 공감하고 있지 못한다는 답답함에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그래?”


H는 답을 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였지만 그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는 대답 대신 하늘을 향해 뻗었던 손가락을 뒤로 뺐다가 다시 뻗었다. 나는 그제야 그가 가리키는 대상이 하늘이나 오로라가 아닌 어느 한 지점이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손가락이 가리키는 그 부근을 눈으로 열심히 훑었다. 검은 하늘, 오로라, 별, 별… 별?


H가 가리키는 방향에는 아주 밝은 별이 지평선 가까이에 자리 잡고 있었다. 별의 강한 빛은 오직 오로라를 향해만 쏘아 올려지고 있었고, 그 방향은 순리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별빛이 오로라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나. 별빛이 오로라를 사랑했나. 별도 오로라가 보고 싶었나. 의미 없는 추론을 이어가던 와중 나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여기가 어디지?


나는 H의 얼굴처럼 하얗게 식어가는 피부를 느끼며 머릿속 기억을 하나씩 되짚어갔다. 나는 설거지를 하고 있었어. H와 저녁을 먹었거든. 그 전에는 같이 저녁을 할 재료를 사러 갔었고. 우리는 5일 동안 그렇게 생활했어. 5일 전에는? 정말 5일밖에 안됐나? 우리는 뭐를 타고 여기에 왔지? 여기가 어디지? 우리는 오로라를 보러 왔어. 오로라를 왜 보고 싶어 했지? H와… 언제부터 친구였지? 그는 누구지?


나는 5일 전부터의 기억이 아무것도 없었다. 뻔한 디스토피아 소설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오로라를 보겠다고 꾸역꾸역 버텨오던 시간은 내 의지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오로라를 한 번쯤은 보고 싶었지만, 오로라를 보는 꿈을 꿔본 적은 없었다. 함께 온 친구라던 H도 모르는 이였으며, 꿈을 함께 할 만큼 가까운 친구도 없었다.


머리가 터질 듯한 기분에 H를 돌아봤다. 그는 이미 어지러운 듯 주저앉아 있었다. 나는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다 싶어 입을 열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좀 전의 H의 기분이 무엇이었는지 오히려 내가 공감을 느꼈다. 어쩔 줄 몰라 망설이는 사이, H가 나를 올려다보더니 무언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소리의 형체를 알기 위해 고개를 살짝 숙였다. H와 눈이 가까워지자, 나는 내가 또 그의 방향을 잘못 인지했음을 깨달았다. 그는 내가 아닌 나의 바로 뒤를 바라보고 있었다.


뒷목이 따가웠다. 나는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힘없이 무겁게 아래로 떨어지는 육체를 느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옆으로 H의 육체도 힘없이 무너졌다. 귀에 들리는 그 누군가의 목소리는 높낮이 없이 딱딱했고 숨소리 하나 섞여있지 않았다.


‘실험 189037-2, 실험명 ‘오로라’, 실험체 실험 인지, 실험 실패, 실험체 수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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