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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won Dec 30. 2015

구글 인턴 생존 후기 (1)

Do Something Creative

방금 전 두 살 터울의 동생이랑 열띤 토론을 벌였다. 거창한 주제는 아니지만 대한민국의 모든 가족들이 한 번쯤은 거쳤거나 거치게 될, 그런 불편한 자리였다.


동생: "재수할 거야."

나: "편입 생각해봐. 재수는 너무 리스크가 커."

동생: "싫어. (단호박)"

나: "왜 싫어."

동생: "싫다고"


동생은 대한민국 고3이다. 현재 우리 집은 재수를 한다고 우기는 동생과 내전을 치르고 있다.


*


고3보다는 덜하지만 2015년은 내게 정말 치열한 해였다. 1월부터 4월까지 블룸버그에서 인턴을 했는데 억대, 조대 단위의 숫자와 초단위로 써야 하는 건설, 철강, 금융 등의 BFW (Bloomberg First Word- 블룸버그가 클라이언트들한테 제공하는 짧은 포맷의 정보 위주 뉴스) 들은 수포자 (수학포기자)인 내게 너무나 큰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


 

나 이거 어떻게 썼지...




서울에서 뉴스 인턴쉽을 마치고 홍콩에서 바로 시작한 구글 인턴쉽은 매일 다른 의미에서 긴장의 연속이었다.


대충 나의 하루 일과를 정리해보자면


출근 시간: 아침 9:30 (하지만 다들  9:45분쯤 식당에서 생과일 주스와 baozi 중국 만두 아니면 죽을 들고 슬슬 온다)

11시: 일 하다가 팬트리로 나가면 쉐프 아주머니가 커피 내려주심. 라테 아트는 아주머니 기분에 따라서 유/무

12~2시: 밥. 심리학자까지 동원되어서 짜인 뷔페 스타일의 메뉴. 건강을 고려해서 제일 문에 가까운 쪽에 풀 더미 (샐러드 바). 제일 구석에 디저트 (보통 치즈케이크이랑 크리미 한 롤 등등). 운이 좋은 날은 랍스터도 나옴. 평소에는 연어, 닭강정, 중국식 생선, 홍콩 차슈 (광동식 돼지고기 요리) 등등.

2시~6시: 일. 하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 마사지도 받는다 (회사에 전문 마사지사가 일주일에 세 번 오심. 마사지는 처음 몇 번은 무료고 나중에는 포인트를 사서 받을 수 있다)

6시: 퇴근


Credit: me
매번 기다리게되는 TGIF


처음에는 2시간이나 되는 점심시간에 어쩔 줄 몰랐다. 블룸버그는 칼같이 점심시간을 1시간으로 잘랐고 다른 외신에서 인턴 했을 때도 취재하지 않는 이상 두 시간 동안 밖에서 점심을 먹는 기자는 본 적이 없다.


아무튼, 이런 안락한(?) 생활을 즐긴지 한 달이 되었을 때, 나는 서서히 불안해졌다. 항상 오버타임 (자의 & 타의)에 익숙했던 미생으로서 내가 bean bag에 누운 채 땅바닥에서 뒹굴거려도 개의치않는 매니저와 늦게 퇴근하면 제발 집에 가라고 사정하는 동료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지 너무 혼란스러웠다.


*


여느 때와 같이 팬트리에 있는 소파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호주에서 오신 왕보스님이 지나가셨다.


보스: 요즘 뭐하니~?

나: 아, x, y and z 프로젝트 진행 중입니다!

보스: 내가 생각해봤는데, 너, 저널리스트잖아. 비디오도 다루고 그러니?

나: 편집도 할 수는 있어요 (불안 불안)

보스: 아, 그럼 우리 사내 구글 플러스 페이지 있잖아!

나: 아.... 넵!  (가물가물)

보스: 거기서 Do something creative!


*


내게 주어진 임무: "Do something creative"


결과물, 그것도 '창의적인' 결과물을 2달 사이에 시작하고 끝내는 일. 어쩌면 가장 쉬워 보이지만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회사가 편하다고 일에 대한 평가까지 편하게 해주지 않기 때문에 가슴이 누가 돌을 얹은 듯이 답답했다. 지하철로 30분이 걸리는 기숙사를 매일 2시간씩 일부러 걸어서 퇴근했다.  입사 한 달 차 인턴은 매일 두 시간씩 중얼거렸다. "Do something creative"

 

도저히 감이 오지 않았다.

일주일째 혼잣말을 하면서 집으로 걸어가는 도중, 유레카. 신호등은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


그다음 날, 나는 한 통의 이메일을 보냈다.

"매니저님. 이번에 Humans of Google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해보고 싶습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Humans of New  York과 같은 컨셉인데 구글러들을 인터뷰하고 내용을 사진과 함께 공유하는 프로젝트입니다."


Humans of New York (HONY)에 대해서 잠깐 설명하자면 Brandon Stanton이라는 전직 은행원이 직장에서 해고된 후 뉴욕을 돌아다니면서 랜덤 하게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사진을 찍으면서 시작된 프로젝트이다. 브랜든은 페이스북에 사진과 인터뷰를 공유하면서 유명세를 얻었고 현재 약 1600만명이 HONY 페이스북 페이지를   팔로우하고 있다 (https://www.facebook.com/humansofnewyork/). 뉴욕보다는 한정된 공간이지만 별별 경험과 사연이 많은 구글러들을 독점  인터뷰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결론만 말하자면 나는 직접 서울, 도쿄, 하이데라바드 (인도), 싱가포르, 홍콩 등 아시아에 퍼져있는 구글러들을 인터뷰하고 사내 구글 플러스 페이지에 그들의 개성을 보여주는 사진과 함께 공유했다. 다행히도 사내에서 좋은 호응을 받았고 내 인턴쉽이 끝나도 다른 구글러가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하기로 약속했다 (2018년 쯤 들은바에 의하면 마운틴 뷰 구글 본사에서 계속 진행되고 있다고 들었다).


이렇게 내 멋대로(?) 진행이 가능했었던 이유는 신의 직장이라는 소문에 걸맞은 구글의 문화 때문이었다.


구글에는 간섭하는 사람들도, 상명하복의 명령체계도 없다.

물론 분위기는 지역이나 상사마다 조금씩 편차가 있겠지만 쿨함의 끝을 달리시는 호주 출신 대 보스, 중국 출신 매니저, 그리고 홍콩에 위치한 오피스 덕분에 너무나도 좋은 분위기에서 삼 개월을 보냈다.


하지만 이렇게 벽난로 같은 곳에서 나는 항상 허허벌판에 서 있는 것처럼 떨었다.

 

100명이 넘는, 작지만 작지 않은 홍콩 오피스, 그 안에서 유일한 한국인이었던 나는 본의 아니게 항상 관심을 다른 인턴에 비해 조금 더 받았고 중국어가 서툰 내게 영어보다 중국어로 진행되는 미팅들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하루하루 나를 증명하고 싶었다, 아니 그렇게 해야 했다. 아무리 간섭하는 분위기가 아니라고 하지만 "명령"이 적다 ≠ 기대치가 낮다 이기 때문에.


회사에 있는 수많은 장난감과 유혹(?)을 물리치고 최대한 효율적으로 Creative 하게 일하는 방법, 그 어떤 곳에서도 따로 가르쳐주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에 3개월은 매일 배움, 그리고 좌절의 연속이었다.

 

이런 시스템에 처음은 무척 당황을 했지만 인턴에게 일탈과 자기주도 프로젝트가 허락되고 당연시되는 분위기에서 나는 곧 내 장점을 찾고 극대화시키는 방법을 배워나갔다. 어떤 교과서나 자기개발서도 알려줄 수 없는 나만의 무기를 찾게 된 것이다.


*


동생은 서울대학교를 목표로 재수를 한다고 한다. 며칠 전 다큐프라임에서 본 "서울대 A+ 조건"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생각났다.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인 서울대에서 학점 4.0에 가까운 학생일수록 비판적이기보다 수용적이고 질문하는 대신 교수님의 수업 내용을 통째로 외운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일반화를 할 수 없지만 연속 2학기 동안 학점 4.0을 넘은 학생 46명을 조사한 내용이라니 상당수가 학점을 위한 공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와중에 내가 쓴 관련 기사 슬쩍 홍보: http://news.joins.com/article/14162080).


연구진은 우리나라의 줄 세우기 문화와 폐쇄적인 교육 시스템을 질문 없이 고요한 수업시간의 이유로 삼았다. 내 동생이 다니는 외국어 고등학교만 해도 1등부터 50등까지만 '특별한' 자습실에서 공부를 한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고 울분이 터졌다. 출발점도 다르고 재능도 다른 아이들을 줄 세우기에 모자라서 차별까지 하다니! 그리고 내 동생도 그 차별을 받고 있다니.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화가 나는 일이다.


이런 주입식 교육과 사회가 정해놓은 커트라인에 도달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패배자로 여기고 자책까지 하게 만드는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창조경제가 발을 붙이고 노벨상 수상자가 탄생할 수 있을까?


물론 수능 공부를 하면서 배우는 지식도 중요하다. 하지만 Do something creative 하기 위해서 필요한 지식은 책 보다 오히려 책 밖에 있다. 사실 나는 썩 공부를 잘하지 않는다. 중학교 때는 항상 끝에서부터 등수를 셋고 구글에서도 비즈니스 인턴이라는 타이틀과 거리가 먼 언론학도이다. 하지만 AP통신에서 비디오 뉴스 인턴을 하면서 8개월 동안 죽어라 한 비디오 편집이나 첫 월급을 통째로 부어서 (ㅠㅠ) 구매한 DSLR으로 배운 사진. 싱가포르 방송국의 다큐멘터리 팀에서 카메라맨들과 인터뷰이, 그리고 피디들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면서 배운 팀워크 등등. 생각지도 못하게 구글에서 너무나 유용하게 써먹은 스킬 아닌 스킬들이다.  



동생한테 말해주고 싶다.

네가 어떤 학교를 가던지, 어디서 일하던지, 어느 곳에 서 있던지 , 책 너머를 향해 열심히 소리지르라고.

"왜?"



우리가 "왜?"라고 한 번만 더 우리 자신, 그리고 이 숨 막히는 교육 시스템에 질문을 던져본다면, 그리고 우리 자신을 믿고 꾸준히 책 바깥으로도 달려본다면 언젠가는 Do something creative 하는 게 조금 더 쉬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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