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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won Dec 31. 2015

외신 인턴 이야기- (1) 이종석이 떴다

홍콩으로 온 그대 

때는 바야흐로 2014 년, 나는 홍콩 Associated Press (AP)에서 뉴스 인턴을 하고 있었다. 


AP는 세계적인 통신사 (Wire  Service)인데 (핸드폰 통신사 아닙니다) 우리나라 연합뉴스 같은 곳이라고 보면 된다. 통신사는 가장 세계에 특파원이 많고 제일 빠르게 소식을 전한다. 세계 모든 나라에 언론사들이 사람을 보내는 것은 인력낭비고 재정적으로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AP나 우리가 익숙한 로이터 통신 (Reuters), 블룸버그 (Bloomberg) 등 통신사들이 제일 먼저 취재를 하고 구독료를 받으면서 뉴스를 다른 언론사들에게 제공한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2013년 말부터 인턴을 시작했는데 무급에다가 '상'급의 노동강도, 거기다가 호랭이 기자님을 상사로 맞이한 결과, 나의 다크서클은 하루가 다르게 짙어졌다. 일주일에 3~4번은 홍콩 Wanchai에 있는 회사로 1시에 학교 수업을 끝내자마자 곧장 향했는데 안 바쁠 때는 7시나 8시, 바쁠 때는 새벽 2시, 심지어 새벽 5시에도 퇴근한 적이 있었다. 


AP통신에 처음 인턴으로 들어왔을 때는 Shotlist만 주구장창 썼다. Shotlist란 찍어온 영상을 샷, 즉 화면별로 설명하는 리스트다. 상당히 노가다인게 카메라 앵글이나 사람이 바뀔 때마다 일일이 손으로 적고 내용을 설명해야 한다. 그다음에는 기사에 도전했다. 아, 참고로 나는 연예부 뉴스 인턴이었는데 첫 기사는 트랜스포머 4에 관해서 쓴 걸로 기억난다. 그때 마이클 베이 감독이 홍콩에 방문했는데 칼을 맞을 뻔했다는 내용으로 기억한다. 


요즘 다 외신들은 최대한 프리랜서로 아웃소싱 하려고 한다. 한국도 비슷하다고 들었다. 나랑 취재 때마다 동행한 아방 (abon)이라는 홍콩 아저씨도 취재당 홍콩달러 1000불 (15만 원)을 받고 일하는 프리랜서다. 


보스님은 가끔씩 아방이 찍어온 비디오에 대해서 툴툴 거리셨다. "이건 나도 찍겠다" "이렇게 찍으면 안 되지" "아, 너무 이거 찍고 돈을 너무 많이 받는 거 아니야?!"


첫 인턴쉽인 만큼 열정이 냄비에 달궈진 카레처럼 펄펄 끓던 나는 보스님에게 당돌하게 제안했다.

"제가 한번 찍어오겠습니다!" 


몇 번의 실패와 카메라 메모리 낭비 끝에 나는 소녀시대 콘서트부터 홍콩 스타 주윤발, 곽부성 (Aaron Kwok)등 이 참여하는 이벤트들을 혼자 촬영했다. 내 키만 한 삼각대와 목숨보다 비싸 보이는 촬영용 비디오카메라, 라이트, 그리고 내 책가방까지 질질 끌면서 촬영장에 가면 온 몸은 이미 땀으로 젖었다.


하지만 촬영보다 더 어려운 것은 유일한 한국인인 나를 향한 텃세였다.

내 앞에서 광동어로 내 이야기를 하기는 부지기수, 내가 인사를 해도 싸늘하게 쳐다보는 홍콩 연예부 기자들과 영어로 소통이 안 되는 카메라 맨들 사이에서 나는 항상 혼자였다. 촬영을 할려고 하면 아저씨들과 눈치싸움에 자리싸움까지 해야 하니 항상 나는 본의 아니게  움츠러들었지만 그래도 철판을 깔고 자리를 잡았다. 




그 날은 이종석이 H*go Boss  (휴*보스)의 새로운 매장 오프닝 행사에 참석하러 홍콩에 온다고 했다. 

보스님:  "사람들 정말 많을 거야. 정신 빠짝 차리고. 너 진짜 이거 할 수 있어? 

Are you sure you can do this?

나:  "Of course." "당연하죠~" 



휴*보스 매장에서 잠깐 연예인들이 매장을 둘러본 다음에 홍콩 금융의 중심지인 Central에 위치한 항구에서 레드카펫 행사와 연예인들과 VIP 들을 위한 파티까지 열린다고 했다.


참고로 한국 연예인들은 홍콩에서 초초초초초 A급, VIP 대우를 받는다. 빅뱅 콘서트는 몇 분만에 매진되고 레드카펫에서도 한국 연예인들은 항상 마지막에 들어온다 (그리고 자주 늦는다ㅎㅎ). 


이종석도 매장 인터뷰는 스케줄 때문에 건너뛰고 항구에서 레드카펫 행사와 파티만 참석하다고 했다. 그래서 매장에서 촬영 후 곧바로 항구로 갔다. 항구는 (이종석) 팬들로 꽉 차 있어서 정신이 없었다. 미국 할리우드 배우도 몇 왔는데 (기억은 잘 안남) 사람들의 시선은 이종석이 언제 오나 문에만 향해 있었다. 


AP는 외신이기 때문에 이벤트나 기자회견장에서도 항상 제일 먼저 질문할 기회를 받는다. 보통 기자회견을 하면 한 명이 여러 언론사의 마이크를 들고 서 있고 (비디오 참고) 다른 기자들이 서서 질문을 물어보는데 보통 그 한 명은 나였다. 




이층에 서있던 기자들이 갑자기 계단 쪽으로 우르르 향했다. 자리를 뺏길까 봐 나는 그냥 최대한 레드카펫 주위에서 서 있었다. 이종석이 나타나자 갑자기 연예부 기자들이 팬들보다 더 흥분해서 레드카펫 근처로 다 돌진했다. 카메라 맨, 기자들, 그리고 홍보 담당들까지 엉켜서 현장은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아수라장이었다.


서로 본의 아니게 밀치기가 반복되던  그때, 내 앞에 있던 한 홍콩 기자가 팔꿈치를 흔들면서 휙 돌아섰다.

홍콩 연예부 기자: DON'T TOUCH ME. (건들지 마)

나: Sorry  (미안)............ [안 밀었는데 내가 ㅠㅠ]


누가 자기를 다시 밀쳤는지 홍콩 연예부 기자는 눈을 치켜뜨고 다시 돌아서서 소리 질렀다.

기자: I SAID, DON'T. PUSH. ME. (내가 말했지. 건들지 말라고.)


하아, 슬슬 김이 올라왔다.

나:  "I said I didn't push you." (안 밀었다고요)


말대답(?)을한 내가 기가 막혔는지 그 기자는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 이 "hankwok yan (광둥어로 한국인)"은 뭐냐고 소리 질렀다. 최소 20명 정도 되는 카메라맨들과 현장에 있는 수 많은 눈들이 내게 쏠렸고 아방 (카메라 맨)은 내 시선을 피했다. 나도 뒤지지 않으려고 입술을 꼭 깨물고 그 기자를 쳐다봤다. 기자는 기가 막힌 듯 홍보팀과 경호원들에게 가서 나를 쫓아내라는 손짓을 했다. 하지만 기자 자격으로 온 나한테 나가라고 할 사람은 없었다. 



갑자기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내가 평소처럼 마이크를 잡으려고 했더니 아방의 어린 파트너가 휙 뺏어서 다른 동료에게 줬다. 질문을 하려고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고의인지 나는 어느새 인파 끝까지 밀리게 되었다. 순간 멘붕이 왔다. 아, 보스가 질문 꼭 물어보라고 했는데....


인터뷰는 계속 진행이 되었고 멀찍이 추방당한 내게 이종석의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이종석의 답변을 통역자가 한국어에서 광둥어로 해석하고 있을 때, 나는 가만히 있는 이종석을 향해 냅다 소리를 질렀다.


"이종석 씨 향후 계획이 어떻게 되세요!"


"오, 한국분이세요?"


(끄덕끄덕)


그때 내 말을 무시하고 (못 알아들은 건지) 통역사가 "마지막 질문입니다" 하고 이종석한테 말했다.



이종석은 쫌 멈칫하더니

"아, 저 쪽분이 먼저 질문하셨는데" 하고 나를 가리켰다. 

그리고 향후 계획을 말하고 그것을 마지막 질문으로 (ㅎㅎ) 퇴장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이종석이 내 질문을 답해준지도 몰랐다. 하도 멀찌감치 떨어져서 얼굴도 잘 안보였기 때문이다.  

인터뷰가 끝난 뒤, 나는 홍콩 기자의 노여움과 주변의 웅성거림을 뒤로하고 항구를 침착하게 걸어나왔다. 그리고 바다가 보이는 한적한 벤치 앞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사무실에 밤 12시쯤 들어와서 비디오를 편집하려고 되돌려보니 이종석은 친절하게 내 질문에 대한 답을 해줬고 퇴장할 때는 나를 향해서 찡긋(!)까지 해줬다! (비디오 밑에 참고) 그것도 모르고 나는 나를 쳐다보고 나가는 이종석을 보면서 "아, 내 질문 대답도 안해준 나쁜 X ㅠㅠ" 하고 엄청 원망을 했다. 

비디오 출처 (Associated Press Hong Kong) 



비하인드 스토리: 알고 보니 그 홍콩 기자는 내 보스의 전직 동료였고 나는 "나댔다는" 이유로 한 달 간 취재를 금지당했다. "세상에는 취재보다 중요한 게 있어, 예를 들면 상황 파악?" 보스님은 나를 대신해서 그 기자에게 사과를 하셨다. "너무 열정만 앞서서는 안 돼." 


"그리고..." 보스가 난처한듯이 말하셨다.

"너도 느꼈겠지만... 촬영장에 혐한 감정이 존재하고 사람들이 그걸 너한테 푼거야. 한국 연예인들 맨날 늦고 너무 과잉 경호해서 홍콩 연예계 사람들은 다 취재하기 싫어해. 인기 많으니까 어쩔 수 없이 하는거지."



하지만 나는 내 질문에 대해서 아직도 후회를 하지 않는다. That was my duty, as a journalist. 


그리고, 결론은. 이종석님 감사합니다. 하트 뿅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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