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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won Jun 05. 2016

요즘, 나는 약하다

완전체를 향하여 

다리가 후들거렸다. 옆 방을 슬쩍 보니 인터뷰는 현재 진행형이었다. 의자에 앉고 싶었지만 13cm 굽을 신고 곧게 서있는 홍보 팀의 그녀가 신경이 쓰였다. 그녀의 정돈된 화장과 다르게 나의 얼굴은 비처럼 쏟아지는 땀 때문에 이미 젖어 있었다. 


첫 출근하는 날 


싱가포르 방송국의 피디가 된 지 둘째 날, 나의 첫 촬영은 한 호텔에서 진행되었다. 촬영이라는 단어는 거창하고 그냥 감을 익힐 겸 선배 피디를 따라나섰다. 싱가포르의 관광사업이 작년에 주춤했는데 올해 좀 더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옆 방에서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옅은 미소 (like i know what I am doing)를 지으면서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날은 뭔가 이상한 하루였다. 오는 버스마다 놓친 채 2호선 같은 콩나물 전철에서 녹초가 되어 시작된 하루였다. 익숙하지 않은 출근을 앞두고 뒤척이느라 한숨도 못 자서 아침밥도 평소와 달리 걸렀다. 


옆 방에서 인터뷰가 계속되자 다리가 후들거렸다. 정장을 입고 구두를 신었지만 삼 주 전에 대학을 졸업한 나는 그곳에서 제일 앳되보였다. 애써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Fake till you make it" 


하지만 더운 싱가포르 날씨에 이미 몸은 지칠 때로 지쳐 있었고 부담감과 긴장감, 걔다가 습관적으로 먹는 아침까지 건너뛴 탓에 몸은 내 편이 아니었다. 하늘이 갑자기 개나리색이 되더니 서서히 천둥이 치는 회색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내 몸은 옆 침대로 꼬꾸라졌다. 




짧은 기절로 경험한 내 몸의 한계는 나를 꽤 놀라게 했다. 


요즘, 나는 약하다


몸뿐만이 아니다. 오랜만에 아빠한테 전화해서 한국 가고 싶다고 징징거렸더니 왜 이렇게 마음이 약하냐고 다그치셨다. 쇼미더머니 전부터 한석봉의 어머니를 좋아하신 아빠한테 위로는 사치일 뿐이다. 


퇴근하는 길의 하늘, 6월의 싱가폴


해외생활 10년째가 되니까 몸도 마음도 슬슬 지쳐간다. 샌드위치를 좋아하던 나는 요즘 김치볶음밥이 유난히 그립다. 삼삼오오 저녁을 먹는 가족들을 식당에서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울적해진다. 대학생 시절 패기 있던 나의 모습은 아득하다. 직장에서 제일 어리고 한국인 피디이기 때문에 받는 호기심 어린 시선 때문에 항상 긴장을 하고 있게 된다. 또래들을 비슷한 관심사 (전공, 클럽활동 등)와 가까운 주거지 (기숙사)로 욱여넣었던 대학교는 친구를 만들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친구를 '만든다'라는 단어보다는 '생긴다'라는 단어가 더 적합할 듯하다. 


하지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연고도 없는 새로운 나라에 뚝 떨어지다 보니 관계를 만드는, 어쩌면 유치원 때부터 해왔을 그 익숙한 과정이, 낯설다. 




내가 자주 들여다보는 글이 있다.



"나는 행복이라는 개념에 동의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행복한 것은 문제없지만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이 행복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은 현대 사회에서 '슬픔에 대한 두려움'이란 위험한 병으로 이어졌다. 요즘 사람들은 "잠자기 전에 너를 행복하게 하는 세 가지를 써라" 아니면 "힘 내" 아니면 "행복은 우리의 타고난 권리이다" 등의 말을 하곤 한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행복을 좇는 것은 당연한 자세라고 가르치지만 그런 생각은 쓰레기일 뿐이다. 우리는 완전함 (Wholeness)을 쫓아야 하고 그 안에는 슬픔, 실망, 답답함, 실패--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 감정들이 있다. 행복과 승리도 우리에게 생기는 좋은 일이지만 우리에게 주는 큰 가르침은 없다. 사람들은 우리가 고통을 느낄 때 배운다고 한다. 하지만 고통을 경험하자마자 사람들은 "무시해! 더 행복해져!" 하고는 한다. 나는 모두에게 제안하고 싶다. 일 년 동안 행복함 (happiness)이라는 단어의 뜻을 완전함 (wholeness)으로 바꿔보라고. 너 자신에게 물어보라 "내가 느끼는 감정이 나의 완전함 (wholeness)에 이바지하고 있나?" 그러고 있다, 만약 너의 하루가 별로라면." 




아마 오늘은 완전함에 더 가까워지는 날이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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