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적인 의견이지만 내가 사는 싱가폴은 여러 인종들이 모여사는 melting pot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름'에 대해 꽤 너그럽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브라를 안 하고 출근을 하기 시작했다.
순 99% 여초 회사 덕분에 감히(!) 이런 도발이 가능하기도 하고 이제 어떤 재질을 입어야 티가 안 나는지도 파악을 했다. [여담이지만 한국 방송국의 피디들은 대부분 남자라던데 싱가폴 방송국은 우먼파워가 거세다]
사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브라를 입지 않고 학교와 학원을 오갔다는 남사스러운 사실을 감히 고백한다 (그때는 겨울에만). 대학교에서는 점심을 먹고 가스가 찬다고 배를 두드리는 동기들을 보면서 속으로 씩 미소를 지었다. 브라만 안 해도 소화가 더 잘되고 피가 잘 통한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나의 비밀(?)을 알고 있는 몇 친구들은 가슴 쳐진다고 난리인데 그 또한 과학적 근거가 없다.
"전문가들은 브라를 해도 가슴이 처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한다. [...] 브라는 가슴을 받쳐주어 원하는 모양을 주겠지만 나이와 중력에 의한 처짐을 막을 수는 없다" (링크: 영어)
사실 브라의 역사는 꽤 짧다.
"현대적인 브래지어의 역사는 100여 년에 불과하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 여성들은 천이나 가죽 밴드로 가슴을 고정하는 ‘아포대즘’을 착용했다. 중세시대 사라졌던 관습은 르네상스 시대 ‘코르셋’으로 부활했다. 1913년 뉴욕 사교계의 메리 펠프스 제이콥스가 실크 드레스 속에 입을 속옷을 개발한 것이 ‘브래지어’의 시초로 알려졌다. 속옷, 갑옷 등의 의미를 지닌 프랑스어에서 유래된 ‘브래지어’는 코르셋을 밀어냈다. 우리나라엔 개화기에 처음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경향신문 2014년 8월 27일)
솔직히 조선시대 사진만 봐도 여성들의 젖가슴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브라의 원천지는 우리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노브라에 대한 불쾌한 시선 또한 우리의 고유한 역사나 문화에서 파생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얼마 전 설리가 한 사진을 SNS에 올렸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노브라인 사진을 올린 20대 초반의 그녀는 풍기문란을 유발한 죄(?)로 비난을 감수해야 했고 결국 사진을 삭제했다.
나는 설리를 옹호한다, 굉장히.
칼럼니스트들이 써 내려간 '여성의 욕망에 대한 존중'이니 '성을 강조하는 소비문화' 따위의 복잡한 아이디어를 떠나서
노브라는 ㅈㄴ 편하다. 그리고 내 건강에 좋다.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아니고 내 오장육부에 도움이 되서 입지 않겠다는 내게 브라를 공개적으로나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다. 노브라= 개인의 자유, 이렇게 간단한 공식을 성적인 의미로 소비하는 우리 사회는 집단 관음증에 빠져있다. 이 금기를 깨는 이에게는 잔혹하리 만큼 손가락질을 한다.
나도 한국에서 노브라로 다닐 자신은 솔직히 없다. 가슴의 자유와 세트로 올 정신적 스트레스 (지하철 안에서 빤히 쳐다보는 시선, 속닥거림, 주위 사람들의 편견 등)를 나는 감당할 자신이 없다.
그래도 이렇게 소리 없는 고함이라도 열심히 질러본다. 따뜻한 시선은 바라지도 않는다. 무관심은 땡큐다.
아, 그리고.
솔직히, 별로 티도 안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