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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won Apr 12. 2018

말이 칼이 될 때

훈계라도 아파요

얼마 전에 회사를 그만뒀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내 상사가 던진 말이었다.

"우리는 너보다 능력 좋고 더 값싼 기자 고용할 수 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누가 내 머리를 프라이팬으로 가격한 듯 멍해졌다.



직장은 내게 아프리카의 드넓은 초원 같은 곳이다.

Source: BBC


조금만 방심하거나 발을 헛디디면 매서운 사자에게 금방 물리는 그런 곳.....


홍콩에서의 첫 인턴쉽에서 사자 같은 내 보스는 비디오 편집을 처음 해보는 내게 "이런 SHIT은 뭐야?! 이거 5분 안에 편집 못하면 GET THE FUCK OUT OF THIS OFFICE"라고 소리를 지르시면서 문을 쿵 닫고 나가셨다.


세 번째 인턴쉽에서는 주식시장에 관해서 매일 짧은 영어 기사를 썼는데 매일매일이 공포의 시간이었다. "왜 이렇게 영어를 못해? 자기 미국에서 살다 온 거 맞아? 개나 소나 다 기자 하니? 미국에서 살다온 얘들 차고 넘쳐. 자기는 아무나 다 기자 하는 줄 알아?" 조용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속사포로 내뱉어내시는 훈계에 나는 입술을 깨물며 죄송합니다를 거의 매일 연달아했다.


솔직히 인정한다. 나는 A+ 인턴은 아니었다.

매일 12~14시간을 의자에 붙어 앉아서 토 나오게 지루한 증권사 리포트를 붙잡고 씨름했다.


하지만 내 전공은 정치학 -- 학교에서 매일 시진핑과 덩샤오핑, 그리고 왜 푸틴이 북한 문제에 계속 참견하는지 따위의 먼 나라 이웃나라 이야기만 배우고 토론한 내가 -- 갑자기 왜 현대 중공업 주가가 올랐는지 애널리스트를 인터뷰하고 재무제표를 해리포터 읽듯이 술술 읽어 내려가기에 필요한 지식도, 그 지식을 쌓을 시간도 부족했다. 옆에서 나와 일을 해야 했던 선배도 충분히 답답하셨을 것 같다.


네 번의 인턴쉽 후, 나는 드디어 원하던 언론인이 되었다. 나는 욕심이 참 많았다. 첫 번째 직장에서 방송 피디를 했는데 프로그램 내레이션도 도전해보고 싶었다.


테스트를 위해서 목소리를 녹음을 했는데 상사가 지나가는 말로 툭 던졌다. "너 티브이에 나오는 게 쉬운 줄 알아? 너 그 시험 통과하려면 몇 년이 걸릴걸? 해 보려면 해봐. 아마 떨어질 거야."


결론적으로 난 일차 통과를 했고 마지막에서 떨어졌다. 하지만 일차를 통과한 피디 중 20대는 나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첫 회사를 떠나고 정확히 반년 뒤 PRI와 라디오, 그리고 BBC와 티브이 인터뷰를 하였다. 하지만 성과를 통해 극복을 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면 나도 모르게 상사들이 던진 폭력적인 말들을 내재화 (internalize) 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글을 쓸 때 나는 즐겁기보다 두렵고 인터뷰를 할 때 어디선가 "역시 너는 안돼!"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




얼마 전에 교보문고 베스트셀러인 "말이 칼이 될 때"라는 책을 서점에서 집었다.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대충 훑어보니 혐오 표현에 관한 책 같았다.


그 책과 내 글의 내용은 다르지만 이 글의 제목을 책과 똑같이 지은 이유는 내가 회사에서 들은 훈계나 심지어 내게 툭 던져진 말들이 "칼"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를 생각해주시고 하신 말씀도 있겠지만 결론적으로 그 말들은 칼이 되어 나의 자신감과 자존감을 베었다.


어떤 말은 너무나 날카로워서 베인 곳에 아직도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고 어떤 말에 베인 곳은 상처가 아물어서 새 살이 돋았지만 그 자국이 참 울퉁불퉁하다. 어떤 곳은 아물었다고 생각했지만 비슷한 말을 들으면 또 베인 듯 아려온다.


혹자는 내가 얼마나 부족했으면 저런 말을 듣냐고 생각할 수 있다. 뭐, 맞는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부족함"이란 상대적이다. 나는 A한테는 부족하지만 B한테는 괜찮게 보일 수 있다. 사람들은 자기가 타인에게 하는 비판이 본인의 기준에 맞춰 생긴 것이고 그 기준이 정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무리 타인의 일부분이 부족하다고 느껴도 나의 의견을 뾰족하게 갈아서 그를 고의적으로 찌를 필요가 있을까?




페이스북 그룹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을 시작한 여정훈 님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기사가 kill 돼서 안 나왔습니다 ㅠㅠ 죄송합니다 여정훈 님....)


환경 시민단체에서 일을 하셨는데 본인이 일을 잘 못한다는 이유로 무척 스트레스를 받으시고 고민을 하시다가 퇴사를 하셨다고 한다. "나 너무 일을 못한다"라며 페이스북에 썼던 개인적인 넋두리에 주변 사람들이 많은 공감을 했고 2014년 중반쯤 그 사람들을 모아서 그룹을 만드셨다고 한다. 처음에 가족들이 "그런 게 자랑이냐!"라고 핀잔을 주셨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그룹에 가입된 멤버는 13,500명이 넘는다 (Disclaimer: 나도 멤버다).


"일못유를 운영하면서 느낀 건데 (직장에서 일하면서) 관계에서 힘든 게 상당히 다수인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일못유를 찾는 것 같아요. 온라인 상에서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찾고 싶고, 지지를 받고 싶어 하는 욕심이죠. 돌봄이 부족한 사회를 보여주는 현상 같아요"라고 여정훈 님은 말씀하셨다.


실제로 일못유 게시판의 글들을 쭉 읽다 보면 상사의 말에 베인 사람들 투성이다.




몇 주전, 퇴사를 결정하게 한 말을 들은 후 나는 요즘 진지하게 계속 진로 변경을 고민하고 있었다. 가끔씩 잠을 자기 전에도 그 말이 생각나고 전 직장에서 들은 말들도 눈덩이같이 붙어서 같이 생각이 난다.


아이러니하게 이번 주에 모르는 분들께 이메일과 메시지를 여러 개 받았다. 우연히 글을 읽게 되었는데 재밌어서 브런치에 있는 내 다른 글들도 재미있게 읽었다는 내용이었다. 그 말에 힘을 얻어서 이렇게 몇 자 끄적인다.


하지만 말이 칼이 되어 내게 남긴 생채기가 아직도 너무 쓰라리다. 아직 무뎌지지 못하는 것을 보니 나는 어른이 아닌가 보다.


#일못유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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