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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won Apr 15. 2018

그리워한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홍콩을 너무 사랑하니까

예전에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패널들이 가수 헨리의 이상형을 물어본 적이 있다. 헨리가 한 정확한 말이 기억은 안 나지만 "Frequency (주파수)"가 비슷한 사람이란 답변을 해서 패널들을 당황하게 했다. 미국인들이 흔히 쓰는 표현인데 서로 잘 통한다는 말이다.


전기와 달리 인간 대 인간의 감정은 쌍방향으로 흐른다. 나는 도시와 인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거대한 공간에서 존재하는 작은 인간이기 전에 본인이 거주하고 숨 쉬고 살아가는 곳을 인지하고 충분히 느끼고 내가 왜 이곳에 사는지 정확히 알 때 그 도시와의 교감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홍콩에서 사 년 정도를 살았다. 미국에서 살다가 홍콩으로 대학을 갔는데 복잡한 홍콩의 첫인상은 썩 좋지 않았다. 전 영국 식민지인 줄만 알고 아무런 사전 조사 없이 짐가방을 들고 도착한 철없는 19살에게 홍콩 챕랍콕 공항 식당에서 본 거꾸로 매달린 거위나 꽤나 무례했던 택시 아저씨의 곡예 같은 운전 솜씨는 앞으로 펼쳐질 대학생활에 대해 살짝 걱정을 하게 만들었다.


그 후로 사 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스쳐 지나갔고 나는 졸업을 했다. 첫 직장은 싱가포르, 두 번째 직장은 한국. 현재 남양주에서 거주 중이다.



나와 어느 정도 친한 사람들은 알 것이다. 내가 밥 먹듯 하는 소리...


"나, 홍콩으로 돌아가고 싶어."

돌아간다는 말은 여행자로서가 아니다. 다시 홍콩 Kennedy Town의 거주민이 되고 싶다. 비탈진 언덕을 터벅터벅 걸어 내려와서 익숙한 차-찬탱 (cha-chan-teng: 홍콩 로컬 음식점)에서 삭힌 계란과 샹차이를 넣어서 만든 죽에 간장을 뿌려 아침을 먹고 싶다. 조금 더 길을 걷다가 뚜-뚜-뚜-두 파란불을 급하게 깜박이는 신호등을 지나서 내가 자주 들리는 한 평 사이즈의 카페에서 아이스 라테를 주문하고 싶다. 홍콩대에서 도시계획을 공부하는 오빠가 바리스타였는데 아직도 계시려나?


이층 버스 위에서 찍은 사진. Kennedy Town (2017)

그 카페에서 약 이분만 더 걸어가면 일본 가정식 음식점이 나온다.


아니다. 나왔다.


친구들과 공강 때 가끔씩 가서 먹었던 맛있는 스끼야끼와 고등어 구이를 팔던 음식점은 작년에 방문했을 때 피자 레스토랑으로 변해 있었다. 땅값이 매일 치솟고 몇 달 단위로 가게가 바뀌는 홍콩에서 놀랄 일도 아닌데 왠지 섭섭했다. 피자 집을 지나고 뚜-뚜-뚜 신호등을 한 번만 더 건너면 - - - 부둣가가 나온다.



거의 매일 밤 나는 기숙사에서 십분 거리인 이 부둣가를 찾았다. 별 이유는 없었다. 그냥 멍하니 난간에 걸터앉아 멀리 뱃고동을 울리며 지나가는 페리를 멍하게 쳐다보거나 날씨가 좋으면 희미하게 보이는 건너편의 마천루와 산의 곡선을 눈으로 흩었다.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인디 음악을 들었다. 주로 "우효, " "요조, " "9와 숫자들" 등을 들었는데 가끔씩 "오아시스-- Wonderwall"을 무한 반복해서 듣기도 했다. 석양을 앞두고 나는 수많은 호가든 병을 비웠으며 별 것도 아닌 기말고사를 핑계로 당 충전을 한다며 일주일 내내 맥플러리를 사 먹었다. 잔잔한 바다를 앞에 두고 나는 여럿과 싸웠고 울었으며 서로에게 신세를 한탄하고 서로의 자잘한 성공들을 축하했다.




요즘 너무 홍콩이 그리워서 매일 학창 시절 사진들을 보고 또 봤다.


인간은 공감과 이해를 받고 싶어 한다. 하지만 같은 배 속에서 태어난 쌍둥이도 서로 다른데 나만의 경험과 그 경험에서 나온 추억과 그리움을 완전히 이해해 줄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괜히 인스타그램에 부둣가 사진을 올렸다 지웠다 몇 번을 반복했다. 소통하고 이해받고 싶어 목말라하는 내가 안쓰럽다가도 내 나라도 아닌(?) 타지의 한 도시에 대한 짝사랑이 왠지 생뚱맞고 찌질한 것 같아서 괜스레 애꿎은 사진만 지우길 반복했다.  


재밌는 사실은, 홍콩은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도시다. 입학식 때 홍콩을 방문한 아빠와 엄마에게 홍콩은 "좁아터졌고 음식도 냄새나는" 도시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대학교를 다니는 한 친구에게 홍콩은 "꿈의 도시"이다. 그 친구는 결국 홍콩으로 교환학생을 왔고 그 후에도 홍콩을 많이 그리워하는 것 같다. 기자인 한 오빠는 연고도 없는 홍콩이 너무 좋아서 자주 방문을 하고 자비를 들여 취재도 갔다. 광둥어도 배울 생각이라고 한다.


남자들은 이 년 동안 겪은 군대의 추억을 평생 얘기한다. 그렇게 보면 사 년이란 시간을 홍콩에 쏟은 내가 도시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을 토로하는 것이 그렇게 이상한 것 같지는 않다.



이쯤 되면 "그렇게 좋으면 가던지!"라고 내게 한마디 던지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단지 추억에 젖어 삶의 터전을 옮길 수는 없다.


비-본질적인 요소, 예를 들어 빠르고 편리한 교통 시스템, 맛있는 음식/카페/바, 국제적인 도시 등을 떠나 진지하게 본질적으로 내가 왜 홍콩을 좋아하고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은지 고민하고 또 고민해봤다.


홍콩은 내게 욕망의 도시다.

나의 욕망을 대변해 주는 곳이다. 24시간 반짝이는 불빛과 화려한 야경, 그리고 반사된 불빛과 출렁대며 춤을 추는 파도, 그리고 숨 가쁘게 움직이는 도시와 그 안의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에너지는 홍콩에서의 나를 새로 창조한다. 아름답고 세련된 그곳에서, 전 세계의 다양한 인종이 모인 그곳에서, 내가 노력을 하면 적절한 보상이 주어질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은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었고 많은 기회를 주었다.


홍콩의 특수한 환경은 나의 생활 습관까지 세세한 영향을 미쳤다. 작지만 안전한 도시 덕분에 저녁형 인간인 나는 매일 밤 12시에 파도소리를 따라 부둣가에서 조깅을 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 유년기를 보낸 탓에 샌드위치를 밥보다 좋아하는 내게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샌드위치 가게가 즐비했다. 홍콩 섬에 위치한 기숙사 덕분에 밤늦게까지 란콰이 펑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술을 마실수 있었고 지하철이 끊기면 걸어서 귀가를 할 수 있었다. 생활에 자리 잡은 나만의 의식들은 사소하게 보이지만 결국은 의식주로 귀결되는 만큼 본질적인 고민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 재미교포가 한국으로 교환학생을 와서 느낀 점을 읽었는데 이 부분이 인상이 깊었다.


“Seoul is a city filled with expats who do not necessarily love the city, but rather, love what it can do for them. They love who they can become. “


해석하자면


"서울은— 이 도시를 딱히 사랑하지는 않지만 이 도시가 자신에게 제공해 줄 수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엑스팻들로 가득 차있다.

(서울에서) 무언가 될 수 있는 자신들을 사랑한다."


나는 과거의 내가 그리운 걸까, 아니면 홍콩이 외국인인 내게 제공해준 삶이 그리운 걸까? 오로지 그 도시를 사랑하는 걸까? 아니면 나는 과거의 기억들을 부둥켜안고 뒷걸음질을 하는 것일까?


서울에서 행복하지 않는데 다시 홍콩을 간다고 해서 행복할까? 하지만 홍콩과 나의 ‘주파수’가 맞다면 괜찮지 않을까? 질문만 많고 답은 없다.




오늘 교보문고에서 예전부터 사고 싶었던 한 책을 내려놓고 우연히 본 홍콩 수필집을 샀다. 얼른 읽고 싶은 마음에 카페에서 서둘러 비닐봉지를 뜯었는데 툭! 하고 동봉된 사진들이 내 허벅지 위로 떨어졌다.


사진을 찬찬히 넘기다가 나도 모르게 숨을 헉 들이켰다. 작가에게도 저곳은 무척 특별한 곳이었나 보다.



그리워한다고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오늘도 나는 열렬히 홍콩을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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