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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won Jan 20. 2020

(1) 오늘 병원에 가세요

기자의 첫 정신과 방문기  



똑. 똑.


비싼 월세 때문인지, 광화문 중심에 위치한 사각형 진료실은 고시원 방 두 개를 합쳐놓은 크기였다. 책상 위에는 모니터와 펜만 덩그러니 있었다.


"어떻게 오셨나요?" 의사가 내게 물었다.

"안녕하세요, 저... ... 며칠  구하라  기사 코멘트 부탁한 기자예요."

그의 눈이 커졌다.


얼마 전, 내가 쓰고 있던 고 구하라 씨 사망 기사에 정신과 전문의의 코멘트가 필요해서 랜덤 하게 의사 몇 명에게 전화를 돌렸다. 내 앞에 앉은 의사가 유일하게 전화를 받아준 사람이었다.


"어떻게 오셨죠? 기사 때문에 오신 건가요?"

"아니요, 이번에는 환자로 왔습니다."


"아니요, 이번에는 환자로 왔습니다."

몇 초동안 침묵이 공기를 뒤덮었다.

"이렇게도 뵙는군요. 자, 앉으세요."




엔터 뉴스 기자인 내게 죽음은 멀면서도 가까운 주제다. 생전 부지의 연예인이 사망하면, 나는 즉각 그들의 삶을 몇 문단으로 압축해서 사망 기사를 써야 한다.


작년 말, 고 설리 씨의 사망은 엔터 뉴스 기자로서 내가 다룬 첫 죽음이다.


동갑인 그녀를 사실 나는 꽤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다. 몇 년 동안 지속된 자극적인 뉴스 헤드라인을 보면서 때때로 나도 의문을 가지기도 했지만, 꾸준히 여성 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그녀의 소신에 반해 글을 쓰기도 했다.


설리 씨가 세상을 떠나기 전, 나는 꾸준히 그녀의 소속사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지만 거절당했다. 한국 사회의 금기어를 콕콕 건드리는 그녀의 당찬 발언과 해리성 자아를 다룬 파격적인 신곡 등에 대해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많았다. 그래서 그녀를 아는 사람이 있는지까지 주변에 물어보고 다녔다.


결국 나는 그녀에 대한 기사를 쓰게 됐다. 사망 기사.



지난 몇 달 동안 나는 지속된 무기력함과 불안함에 시달렸고 죽음에 대해 자주 고민하고 생각했다.


언제 내 안의 견고한 댐이 무너졌는지 모르겠다.


출장에서 처음 만난 기자가 조심스럽게 친구의 우울증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 인가. 내 또래 고 설리와 구하라 씨의 죽음에 감정 이입이 됐던 건지, 한꺼번에 사망 기사가 몰려서 그런가, 일 년에 거주지를 몇 번 옮겨서 지쳤었나. 졸업하고 너무 빡세게 살았나?


침대에 멍하니 누워, 고 장국영이 자살 전 썼다는 유서를 여러 번 읽었다. 그는 “마음이 고단해서 세상을 사랑할 수 없다”라고 적은 뒤 삶을 마감했다. 사실 안-우울한 적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나의 마음은 매우 오랫동안 고단했다.


12월 어느 날, 퇴근 후, 나는 광화문 근처 한 정신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내게 신분 확인 차 주민등록증을 받은 뒤, 간호사는 열 장 정도의 종이를 건냈다. 곰 인형과 클래식 음악으로 채워진 접수대 앞에서 나는 백개의 질문을 찬찬히 읽었다.


주어진 질문을 읽고 <극히 드물다>에서 <매우 그렇다> 사이 다섯 개 항목 중 가장 나와 가까운 항목을 체크하면 된다  


- 무슨 일을 하던 정신을 집중하기가 힘들다.

"<매우 그렇다 >  난 영화관도 잘 안 가는데. 상영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져서. 인터뷰를 할 때도 계속 딴생각이 떠오르고.”


-먹고 싶지 않고 식욕이 많지 않다.

"<약간 그렇다> 흠, 광화문에 맛있는 곳이 별로 없어서 그러나. 거의 매일 같은 샌드위치만 먹긴 하지. 근데 왜 살은 안 빠지냐.”


-세상에 홀로 있는 듯한 외로움을 느꼈다.

"<매우 그렇다>“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는 것 같다.

"<약간 그렇다> 나는 사람이 정말 무서워.”


백개 가까운 질문을 초 스피드로 끝냈다. 내 친구는 본인을 잘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받으면 참 어렵다고 한 말이 생각났다. 나는 꽤 확신을 가지고 답했다. 아마 무언가를 항상 분석해야 하는 기자라는 직업 때문에, 나 자신에 대한 분석(주로 단점)을 수도 없이 머릿속에서 실행해서 그럴 수도 (그래서 더 마음이 고단했나).


몇 분후, 나는 접수대 옆에 있는 진료실로 들어갔다. 나의 어색한 인사 후, 살짝 귀를 덮는 회색 곱슬머리를 가진 40대 의사는, 새벽 라디오에서나 들을 수 있는 잔잔한 목소리로 내 하루 일과에 대해 물었다.  




무표정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는 의사 앞에서, 들뜬 아이같이, 내 인생의 조각들을 주섬주섬 꺼내놓았다. 그리고 마치 발표를 하듯 인생의 변곡점들을 속사포로 전했다. 중간중간 눈물을 쏟는 내게 티슈를 건네줄 때를 빼고 그는 아무 말 없이 타이핑을 이어나갔다.


이야기를 마친 후 나는 눈물로 젖은 휴지를 만지작 거리며 바닥을 쳐다봤다. 왠지 이야기가 끝나니 부끄러웠다. 열심히 쓴 비밀 일기장을 선생님에게 제출한 초등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아시다시피 지금 중증 우울증이에요, " 의사가 침묵을 깼다.


"회사 지금 다니시죠? 이렇게 일상생활을 지속해 온 것도 거의 기적이에요."




- 길으면 읽기 귀찮으니 다음 글에 이어서 쓰겠습니다

- 배경 사진의 출처는 여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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