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 죽을 가능성
쭈뻣쭈뻣 경비실을 향해 다가갔다.
분리수거를 할 때마다 주차장 건너편에서만 보던 공간을 처음 가까이서 봤다. 창문 너머 대학교 교과서 만한 사이즈의 티브이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선생님, 정말 죄송한데요,” 나는 말문을 열었다. 인기척이 들리자마자 경비 아저씨, 아니 경비원 할아버지가 뉴스를 보시다가 바로 나오셨다. “택배 왔나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
경비원 할아버지는 소리가 안 들리신다면서 마스크를 살짝 내리셨다.
“정말 죄송한데요... 혹시 요즘 새벽 두 세시에 주차장에서 소리 지르는 분들 보셨나요...? “
할아버지의 듬성듬성한 흰머리 밑 이마의 주름이 짙어졌다.
이 K-방역 시대에도 회식은 절대 멈추지 않나 보다. 아파트 뒤편에 있는 고깃집과 횟집은 회사원으로 항상 채워져 있고, 가끔 이차, 삼차로 이어지는 술자리는 고성방가로 끝난다.
“민원을 넣고 싶어서요. 잠 자기가 너무 힘드네요 요즘...” 나는 어색한 시선을 땅에 둔 채 말했다.
경비원 할아버지가 곤란한 표정을 지으시며 말하셨다. “우리 단지 밖이라서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그는 삼 미터밖에 있는 골목을 쳐다봤다.
눈치가 없는 나는 또 물어봤다. “아저씨들인가요? 어느 쪽에서 보통 술주정을 하나요?” 취잿거리도 아닌데 쓸 때 없이 집요해졌다. 지난 일주일 간 고성 때문에 하루에 네다섯 시간을 자고 나는 기필코 잠 도둑을 잡겠다는 의지로 불타올랐다.
“학생들이에요... 거의 다.”
“혹시 보시면 사-알짝만 목소리를 낮춰달라고 해주시면 안 될까요?” 나는 쉿 하는 손동작을 하며 부탁했다.
“요즘 그러다가 맞아 죽어요.”
경비원 할아버지는 내 눈길을 피하며 말했다.
“맞아 죽는다,” “맞아 죽는다,”
저녁 내내 경비원의 체념 섞인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 와 동시에, 얼마 전 실제로 맞아 죽은 한 경비원이 생각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자비한 주민의 구타로 인해 삶을 스스로 마감하셨다.
“외신이 주목하는” 이 K-팝, K-방역, K-교육 시대에 맞아 죽은 사람들의 존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맞아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우리 동 경비원 할아버지에게 맞아 죽을 가능성은 현실에 버젓이 존재한다.
한평생 공무원으로 사신 아빠는 은퇴 후, 한 초등학교 구석에 위치한 컨테이너 박스로 매일 출근을 하신다.
이른 아침, 아빠는 세미-정장을 입고 집을 나선다. 그리고 학교에서 황토색 “학교 보안관”이라고 등에 크게 적힌 유니폼으로 갈아입는다.
아빠의 세미-정장 출근의 이유를 나는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가끔씩, 깐깐하기로 지역에서 소문이 났다는 교장은 컨테이너를 기습 방문해서 책상 서랍부터 냉장고까지 다 뒤져보고 간다고 한다. 아빠 보안관 동료 아저씨께 “밖에 서있을 힘이 없으면 그만두던지 하라”라고 교장이 쏘아붙인 날, 아빠는 마치 본인이 그 말을 들은 것처럼 저녁 내내 멍하니 허공을 쳐다봤다.
나는 가끔씩 아빠가 염려스럽다.
경비직 일을 하면서 아빠가 1) 재수가 없어 맞아 죽거나 2) 맞아 죽기 전/후 분해서 삶을 스스로 마감할까 봐.
내가 기사를 통해서도 읽기 거북한 내용들을 생각할 때, 묵직한 돌덩이가 가슴을 누르는 기분이다. 괜한 걱정을 사서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솔직히 성격 상 항상 최악의 상황을 염두해놓는다.
하지만 얼마 전 돌아가신 경비원의 딸도 삼십만 원만 남기고 아빠가 세상을 등질 줄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그만큼 대한민국 노동자에게 죽음은 멀리 있지 않다.
마음속으로 혼자 자주 빈다.
제발 까다로운 학부모가 없기를,죄송할 일이 아닌데 죄송하다고 말해야 할 상황이 생기지 않기를, 교장이 냉장고를 뒤지지 않기를. 삼십 분 남짓 점심시간에 급하게 밥을 먹다가 체하지 않기를. 여름이 되면 너무 덥지 않기를.
혹여, 아빠가 맞지 않기를.
그리고 K-방역도 좋지만, 무엇보다 경비원들이 맞아 죽지 않기를. 노동자들이 안전하기를.
참담한 기분으로 새벽에 이 글을 쓰는 내가 내일은 괜찮아지기를.
무사히, 무사히 일 년이 지나가고, 또 다른 일 년이 무사히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