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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won Aug 05. 2020

(2) 우울증에 걸린 기자

일과 나 사이의 거리 

"주원 씨 어디 다녀왔어요?"


괜히 내 책상에 있는 흰 약 봉투가 신경 쓰였다. 


"아... 저 병원 근처에 다니는 데가 있어서요..."

말하면서 아차 했다. 하지만 한 시간 전 선배와 커피를 마셔서 카페를 다녀왔다고 둘러댈 수는 없었다. 


"무슨 병원?" 

"아... 제가 ADHD가 있어서요...! 집중을 잘 못해요."





딱히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작년 12월부터 나는 정신과를 다니고 있다. 

우울증, 불안 장애, 수면 장애, ADHD 등으로 약을 매일 먹고 있다 (정신과를 가게 된 이야기는 1화 참고).


자살 충동이 자주 있었던 올해 초와 달리 현재 나는 꽤 안정된 상태이다. 머릿속에서 "넌 쓰레기야!"라고 속삭이던 목소리로 거의 들리지 않고, 이유 없는 불안으로 밤을 새우지도 않는다. 


A plan that never fails: 'no plan' 


십 년이 넘게 깊은 우울과 불안에 시달려 왔지만, 거의 단 한 번도 나는 나의 정신건강이 위태롭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돌이켜보니 위험 신호는 항상 있었다. 


중학생 때부터 나는 매우 감정 기복이 심했고, 홀로 유학생활을 하며 더 악화됐다. 학창 시절에는 체육시간에 주저앉아 미친 듯이 운 적도 있고 충동적으로 학교 Fire alarm을 울린 적도 있다. 


매우 위태위태 했지만 나는 항상 내가 "약해서, " "참을성이 없어서, " "취업을 못해서" 등의 이유로 신호를 무시했다. 과녁을 앞에 두고 화살을 돌려 나 자신에게 꽃아 버렸다. 항상 하늘을 위에 두고 천당을 찾는 환경에서 자라서 그런가. 비유가 적절한지 모르겠다. 




꿈에 그리던 기자가 되면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 우울이 사라질 줄 알았다. 


다들 그런 식으로 어렸을 때부터 주입받지 않나? 꿈을 이루면 행복해질 거야. 꿈을 이루면 다 괜찮아질 거야. 


하지만 하루 12-14시간씩 일에 몰두하고 나면 남는 것은 하루 종일 앉아있어서 침침한 눈과 근육이 빠진 다리, 그리고 약해진 몸과 단절된 인간관계였다. 항상 부족함을 느껴 내게 주어진 일 이상을 해야 안도가 되었고 나는 강박적으로 매일 일에 몰두하였다 (현재 진행형). 


나는 내 직업에 만족감이 아주 높다. 하지만 어느 정도 내 직업은 우울증에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뉴스는 행복한 사건을 다루지 않는다. 나는 엔터 기자지만 정치, 사회 뉴스를 매일 눈팅해야 한다. 문화계에 미치는 영향을 모니터 해야 하는 기자로서, 사회 곳곳의 어두운 면모들을 다루는 뉴스에 매일 강제적으로 일정 시간 노출이 되다 보니 우울 안에서 도저히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너무 밖에 나가기 싫어서 5일 동안 샤워를 안 하고 집에만 있던 적도 많다. 


사람을 만나는 인터뷰도 너무 힘들었고, 짧은 대화도 너무 버거웠다.




그리고 코로나가 찾아왔다.


모든 인터뷰는 화상으로 진행됐고 (현재 진행형), 밖에 나갈 이유가 사라졌다. 화상으로 진행되는 인터뷰는 부담이 덜했고 내 마음은 조금 더 안정되었다. 


나는 조금씩 친구들에게 내가 정신과를 다니고 있다는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평소에 크게 개의치 않고 내 이야기를 하는 스타일이지만 이 얘기만은 왠지 조심스러웠다. 잘못된 일을 저지르고 고백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캐주얼하게 "나 병원 다녀왔는데 의사 선생님이 내가 ADHD래, 역시"하며 가볍게 이야기를 했더니 몇 달 후에 친구들이 정신과를 추천해달라고 연락을 해왔다.


기자는 좀 더 사회를 투명하게 바꾸려고 노력하는 직업이다. 미국에 있는 동료들은 그룹 챗을 만들어 인종차별에 대해 공개적으로 토론도 하고, 어떤 기자들은 트위터에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올리며 좀 더 오픈한 커뮤니티에 기여를 하려고 한다. 나도 온라인에 내 이야기를 꽤 편하게 하는 편이다. 


몇 주전, 한 트윗을 보고 하트를 찍었다가 취소했다. 


정신건강이 너무 힘든 날이면 나 자신에게 하루 휴가를 주는 문화를 정착시키자는 글이었는데 그날따라 너무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공감이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들었던 생각은


"온라인에서 나를 팔로우하는 동료들이 내가 이런 글을 지지하는 것을 보면 나의 정신 건강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을까? 나중에 어떤 누군가가 내가 정신과를
다닌다는 이유로 나의 업무능력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
눈에 띈 만큼 내 실수가 좀 더 잘 보이지 않을까."
 


2020년은 여러 이유로 매우 비정상적인 해다. 


과거에는 허용되지 않았거나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일들이 현재 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다.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연대를 하며 세계 곳곳에서 거리로 나섰고, 마스크 하나를 가지고 온갖 토론과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바이러스 앞에서 무릎을 꿇은 인간들은 좀 더 겸손해졌고, 서로 더 안부를 묻게 되었다. 


하지만 당당하게 사람들에게 "저는 우울증이 있습니다" 라고 할 수있는 시대는 아직 오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마음의 짐을 여기에 덜고 나는 다시 책상으로 돌아간다. 





https://www.youtube.com/watch?v=Qom8zOcaJMI


Dance sister 

Smile sister 

Laugh sister 

Cry sister 

You're a prize sister 

Don't hide sister 

Show them why sister 

...

I know you wanna be someone (Be someone, be someone) 

You need something more (Something more, something more) 

'Cause you're trying to see yourself (See yourself, see yourself) 

Live the life you want  


Young love, don't every waste your life 

I see that you're searching for peace of mind (Peace of mind)
Young love, I want you to value your light 

I see that you're searching for peace of mind (Peace of 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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