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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won Sep 15. 2020

(3) 나인지, 정신병 약인지

계속 눈이 감기는 날들  

정신병약의 가장 흔한 부작용은 졸음과 무기력함이라고 한다.



거의 한 달째, 나는 둘과의 싸움을 하고 있다. 


아니, 사실, 언제부터 싸움이 시작되었는지 모르겠다. 몇 주째 멍한 상태로 일을 겨우겨우 이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나는 3-4가지의 약을 먹는 중인데 그중에는 우울증, ADHD, 수면 유도제, 수면 유도제 2, 그리고 얼마 전 부작용 (과잉 식욕증진)이 생겨서 중단한 조울증 (bi-polar disorder) 약이 있다.


*참고로 이 글은 나의 증상과 경험에만 초점을 둔 글이다. 우울증과 부작용은 모든 사람에게 다르게 나타난다.


나는 우울감을 느끼며 동시에 극심한 무기력감을 느끼고,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굳이 몸을 일으켜 소위 '생산적인 일'을 하려고 노력하고, 보통 무기력감 때문에 실패하면서, 오히려 우울이 더 심해지는 괴로운 경험을 몇 년째, 아니 거의 평생 해온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계획을 세우면 지켜야 한다는 압박이 심했고, 계획을 실행해야 하는 과정을 머릿속으로 찬찬히 그리며, 그에 들어가는 시간과 어려운 점 등을 생각하다 보면,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하거나 미루는 패턴은 내 학창 시절과 현재를 좌우하고 있다. 


그래도 '무기력감'이라는 놈과 참 평생 열심히 싸웠다. 


갑작스럽게 기분이 바닥을 쳐서, 기숙사에서 베개에 머리를 박고 입을 틀어막으며 울면서도, 대학 페이퍼는 항상 내긴 냈다, 겨우겨우, 마감 3초 전에. 친구와 약속을 잡아놓자마자 취소하고 싶은 마음은 구름 같았고 다음에 만나자는 문자를 쓰다 지우다 하다가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오일만에 샤워를 하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정신과를 다니기 전에 '무기력감'을 단순히 나의 '게으름'과 동일시했기 때문에 자기 비하를 매일 했고, 그렇게 비하를 하다가 떨어진 자신감과 낭비된 시간은 또 다른 무기력감과 포기로 이어져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그렇지만 그 '무기력감'에 완벽히 굴복한 적은 없기 때문에, 어떻게든 겨우겨우 살았기 때문에, 두려워한 적은 없다. 


하지만 요즘, 나는 너무 무섭다. 왜냐면, 무기력함과 동시에 '졸음'이라는 놈이 나를 덮쳤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잠이 온다. 그리고 아주 많이 잠을 잔다. 


졸음이 나를 빨아들이는 것 같다. 


낮에 잔 시간을 메우느라 새벽까지 일하고, 그 패턴이 반복되다 보니 동생이 영국 시차로 일하냐고 농담을 던졌다. 


무기력해서 잠이 오고, 잠이 와서 무기력하다. 


무기력해서 잠이 오고, 잠이 와서 무기력하다. 


플래너에는 내가 계획해놓은 기사들이 가득하다. 계속 다음 장, 다음 장으로 미뤄지고 있다. 몇백 개의 이메일이 쌓인 나의 이메일함을 바라보고 있자면, 멀리서 서서히 덮치듯 밀려오는 파도 앞에서 서있는 기분이다. 


이번 주에 의사 선생님께 말했다. 살아가는 것이 마치 바다 한가운데서 서서히 잠기는 과정 같다고. 


항상 촉각을 세우고 귀를 기울여야 하는 기자라서, 그래서 나는 졸음이 나를 삼킬까 봐 너무 두렵다. 무언가를 놓칠까 봐.


졸음이 우울증 약의 부작용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왜냐면 똑같은 약을 쓴 지 몇 달이 됐고, 이 정도의 무기력함과 졸음을 경험한지는 한참 되었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잘 모르겠다.


무엇이 문제인 걸까. 나의 '게으름'일까 아니면 우울증 약의 부작용일까? 부작용 핑계를 대면서 책임을 회피하는 나의 평소 모습인 걸까. 


현재 이 순간에도 나는 졸음과 싸우고 있다. 어서 잠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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