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제주도에서 첫 서핑을 했을 때, 서핑보드에 엎드려 등 뒤에서 겹겹이 밀려오는 파도를 지켜본 기억이 있다.
뒤를 보며, 중심을 잡고 적당한 파도를 기다리며 서서히 앞으로 나아가면서 일어서기 직전, 그 짧은 몇 초 안에 공포와 떨림, 설렘과 스릴까지, 여러 가지 감정의 덮침과, 그 후 파도와의 리듬으로 잠깐 동안 보드 위에서 서 있는 나는 듯한 기분이 드는 순간까지 - 이렇게 여러 감정을 동시에 겪을 수 있는 스포츠도 드물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험은 휴가 중 바다 위에서 몇 초로 충분하다. 왜냐면 일상생활에서 여러 감정과 생각이 나를 파도처럼 덮칠 때는, 파도와 하나가 되는 자유보다는 물에 빠져 가라앉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를 힘들게 하는 이런 감정들과 생각은 주로 내가 읽는 글, 뉴스에서 나온다.
나는 매일 타 언론사의 보도를 확인하면서 아침을 시작한다. 그 와중에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돌아다니면서 흥미로운 기사나 글을 읽기도 한다. 오늘은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쓴, 치매 노인의 다리를 절단 수술을 한 그의 경험을 읽었다. 스포일러 때문에 내용은 생략하지만 읽고 나서 나는 한 편의 gory 한 영화를 본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이메일을 확인하다 보니 회사 기자가 미얀마에서 취재를 하다가 감옥에 들어가 있다는 뉴스를 읽었다. 내가 직접 같이 일을 해본 적도, 만나 본 적도 없지만 속 한 구석이 쓰라린 기분이 들었다. 얼굴도 모르는 그의 가족과 내가 아는 미얀마 사람들까지 떠올렸다.
이렇게 타인의 상황에 감정을 깊게 느낄 때는 나의 과도한 (?) 상상력이 문제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분명히 내 삶 테두리 밖의 일인데, 뉴스에 나오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는 미안할 때도 많고, 죄책감이 들 때도 많다.
고 이한빛 피디가 목숨을 끊었을 때 나는 만나본 적도 없는 그를 추모하며 슬퍼했다. 그가 계약직 직원들을 정리 해고하는 의무를 맡고 과도한 업무에 시달렸다는 뉴스를 읽은 뒤, 열심히 살았던 또래 조연출이 언론계에서 느꼈을 배신감과 허탈함까지 상상하며, 얼굴도 모르는 그를 오랫동안 생각하고 애도했다.
내 정신과 의사 선생님은 처음에 내 직업에 대해서 많이 물어보셨다.
"기자라는 직업이 본인과 정말로 맞다고 생각하시나요?"
의사 선생님은 나처럼 뉴스에 감정적으로 영향을 쉽게 받는 사람에게 기자는 적합한 직업이 아닌 것 같다는 소견을 덧붙였다.
"매일 뉴스를 봐야 하나요? 뉴스를 매일 읽는 게 우울증을 악화시키는 것 같은데..."
"그렇죠... 제 직업인데..."
가끔은 본인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자신에게 가장 해로운 것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