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사과드립니다
모순, 영어로는 Contradiction.
명사 1. 어떤 사실의 앞뒤, 또는 두 사실이 이치상 어긋나서 서로 맞지 않음을 이르는 말.
이번주에 오랜만에 정신과를 갔다.
수면유도제가 다 떨어져 갈 때면 나는 며칠 전부터 마음이 불안해진다. 이제 3년 넘게 의존해 온 약이 없으면 새벽 4시가 돼도 잠이 안 오고, 설령 잠이 든다고 해도 얕은 수면상태로 겨우 몇 시간 버티다가 하루를 망친다. 잠을 잘 못 자서 쓰러진 적도 있는 만큼 내게 질 좋은 잠은 중요하다.
삼월에 이사를 와서, 원래 다니던 정신과가 왕복 세 시간 거리로 멀어졌다. 구토하고 몸이 안 좋아서 수액을 맞고, 병가를 낸 김에 근처에 있는 정신과를 들려서 간단한 테스트를 치고 약을 받았다.
항상 벼랑 끝에 내몰리는 느낌이 들 때 병원을 가서 그런가, 의사는 검사지 세 개를 본 뒤 내게 상태가 꽤 안 좋다고, 쉬라는 뻔한 말을 했다. 웃으면서 아마 못 쉴 것 같다며 병원을 나섰다.
그 후, 나는 인스타그램에 맑은 하늘 사진을 찍고, 우울증이 도져서(?) 밀린 메시지에 답을 바로 못 한다고 양해를 구했다.
카카오톡에는 현재 498개의 메시지에 아직 빨간색이 떠 있다. 안타깝게도 모두에게 왜 내가 바로바로 답장을 못 하는지 구구절절 설명할 수가 없다. 그래서 오해를 산 경우도 있다. 결국, 내 잘못이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답을 도저히 못 하겠다. 어떻게 사회생활을 하냐고 묻는데, 거기서 이제 오해가 생기고 모순이 보인다.
보통 사람들은 내 행동들에서
모순을 보고 오해나 (빠른) 단정을 해버린다.
하늘 사진과 우울증에 관한 공손한 사과문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나는 갑자기 삘(?) 받아서 속눈썹 펌을 예약했다. 거의 일 년 만에 내가 나 자신에게 주는 셀프케어다. 갑자기 왜 그런 충동이 들었는지는 모른다. 메세지 할 마음의 여유도 없다는 사람이 할 행동은 아니라고 충분히 여길 수 있다.
일에 대한 문자는 바로 답장을 하면서 개인적인 메시지는 바로바로 확인을 못 한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날에 몰아서 답장을 한다.
촬영을 다니면서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는데, 대인 기피증이 있어서 아는 얼굴 중 새로운 사람들이 오는 저녁에 초대되면 거의 가지 않는다. 사람을 조금 무서워한다.
칵테일을 좋아해서 밤에 골목을 누비면서 바 탐방을 다니면서, 지하주차장은 왠지 공포스러워서 음식물 쓰레기를 몇 주째 버리지 못하고 있다. 누구와 마주치기가 싫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우울증 환자는 어떨까. 아마 사회생활을 어려워하고, 밖에 잘 안 나오며, 무기력하게 컴퓨터를 하는 사람을 떠올릴 법하다.
맞고 틀리다.
나는 대인 기피증이 있지만 일을 할 때는 제2의 자아가 생기면서 잠깐 극복이 가능하다. 일이 끝나면 고개를 푹 숙이고 얼른 집으로 복귀한다. 주말에는 너무 무기력해서 약속을 잡기는커녕 하루종일 누워있는다. 햇반 돌릴 에너지와 의지와 힘도 없어서 매번 배달의 민족으로 주문을 하다 보니 플라스틱이 집안 곳곳을 점령했다. 이사한 지 한 달이 다되어가지만 아직도 분리수거를 하는 지하 2층은 가보지 못했다.
하지만 필요할 때는, 온몸의 힘을 끌어모아서 인터뷰를 간다. 카메라와 삼각대, 조명, 사다리 등을 이고 지고 인터뷰 장으로 향해서 그곳에서 MBTI로 치면 E가 가득한 텐션을 내뿜으면서 인터뷰를 한다. 인터뷰가 끝나면 나는 터덜터덜 집으로 복귀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많은 사람들은 내가 우울증이 있다고 하면 "네가?"라는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우울증 안에는 설명할 수 없는 여러 모순들이 있고, 그 모순들이 만들어낸 오해로 위축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왜 이 글을 갑자기 썼냐면, 오늘 또 구토를 해서 동네 내과에 갔는데, 연세가 지긋하신 의사 선생님이 (여성이시다) "이렇게 젊고 이쁜데 왜 우울증 약을 먹냐"면서 다 끊으라고 계속 푸시하시면서 제대로 된 진료도 해주시지 않았다. "그냥 주는 대로 받고 살아라, " "내가 보니 당신은 강박관념이 있을 것 같다" 등 불필요한 조언과 코멘트도 하셨다. 약도 처방을 안 해주시려고 해서 겨우 필요한 위장약을 받았다.
내가 그 의사가 보기에는 너무 '멀쩡'했나 보다. 뭐,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질병코드를 이마에 표시하고 그에 맞춰서 행동하지 않는다.
특히 정신병은 복잡한 뇌 안에서 이뤄지는 수많은 충돌의 결과이고, 때로는 그 결과가 수학 공식의 답만큼 딱 떨어지지 않고 그 사이사이에 수많은 모순이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부끄럽지만 나의 모순됨을 널리 알리고, 다시 한번 사과하고, 오늘도 이해하기 어려운 나의 모순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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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커버 사진은, 내가 반년을 고대해서 갔던 콘서트에서 찍은 사진인데, 일 때문에 이메일 체크만 하다 왔다. 집에 와서 사진을 확인해 보니 저렇게 뿌연 사진들만 사진첩에 가득했다. 왠지 내 마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