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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won Jun 26. 2023

돈을 주고 강아지 산책을 시킨다고요?

어쩌다 정신병원 (13)

정신병원에 입원을 했을 때, 레지던트 쌤은 조심스럽게 내게 가족에게 전화를 해도 되냐고 물었다.


한 명이 아니라 엄마, 아빠, 동생 모두에게 각각 전화를 하시겠다고 하셔서 부담스러웠지만 알았다고 했다.


나중에 넌지시 동생한테 쌤과 나눈 대화에 대해 물어봤다.


“누나가 나한테 돈 주고 강아지 산책 시킨다니까 놀라시던데?”




엄마가 모르는 동생과 나만의 계약이 있다.


나는 동생에게 돈을 주고 강아지 산책과 분리수거 그리고 가끔씩 설거지를 시킨다.


비 오는 날 산책은 꽤 귀찮다


삼년전부터 우울증이 심해졌고 주말에는 하루에 16시간씩 잤다. 평소에도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전부 잠을 잤다. 무기력증은 어느 순간 나를 삼켰다.


집안일 배분을 가지고 자취를 같이 하는 동생과 싸우느니 동생에게 노동의 대가로 돈을 지불하고 나는 침대생활을 계속하는 방법으로 타협을 했다.


분리수거로 시작된 동생의 용돈 벌이는 점차 설거지, 강아지 산책등으로 다양해졌다.


하지만 퇴원 후, 동생은 이제 강아지 산책은 아무리 돈을 줘도 안 하겠다고 한다. 의사쌤의 권고라고 했다.


내가 가격을 두세 배까지 올리면서 흥정을 했지만 통하지 않는다.




아마 우울증과 무기력함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나는 그냥 엄청나게 게을러터진 사람일 것이다.


내 엄마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의지를 탓한다.


나는 평생 성취하고 또 성취하며 살아온 의지의 한국인이었다. 과거형이다.


어느 순간부터, 밖에 나가기 싫어지더니 이제는 침대를 벗어나는 것조차 몇 시간의 고민과 나를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만약 주변에 나 같은 사람이 있다면, 그들을 이해하기 어렵더라도 노력이나 의지가 없다는 말은 안 했으면 좋겠다.


노력과 의지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촬영을 가야 하는데 너무 마음이 힘들어서 도저히 갈 수가 없다고 하자 동생은 내 카메라와 삼각대를 들고 촬영장까지 데려다줬다.


정신병원 외래 진료와 입원하는 곳까지 따라와 줬다.


언젠가 내가 다시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는 순간이 온다면 아마 동생 덕분일 것이다.


to be continued.


부지런히 돌아다니던 예전 사진을 보면 사진 속 내가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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