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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오따따 Oct 29. 2020

운명의 존재에 대하여


 당신은 운명을 믿으시나요? 저는 운명을 믿어요. 무슨 오글거리는 광고 문구 같네요. 말투도 그렇구요.  오글거려라. 일단 무얼 말하기 전에 말투부터 고쳐 먹어야겠다.


 나는 운명을 믿는다. 한정적인 운명을 믿는다. 어떤 한정적인 운명이냐면, 유일하게 만남이라는 부분의 한정적인 운명이다. 팔랑귀에 넘어가 내심 아까운 돈을 내고 듣는 사주나 언제 돈방석에 앉을  있냐는 물음에  굶어 죽으면 다행이라 대답하는 무당들이 말해주는 운명이 아니라 사람과의 마주침에 대한 운명이다.  명징한 증거도 나는 알고 있다. 운명이라는 단어가 있다는   증거다. 운명이라는 단어는 아주 오래전 교류가 없던 여러 인류에서부터 존재해  단어다.


 운명에 대한 존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고대 그리스엔 운명을 관장하는  여신이 있었고,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에서도 종교적이며 도덕적 요소들이 가미된 사상들, 이를케면 인과응보와 같이 운명이 있다고 믿었다. 또한, 한자를 사용한 것을 보면   있듯이 중국에서도 운명은 있었다. 미래의 짝지는 붉은 실로 이어져있다는 이야기처럼 한국의 옛이야기를 통해 운명은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는 사실을 확인   있다.



 ‘그래서 지금 존재하는 단어라고 정말 있다는 논리는 무슨 개똥 같은 논리야? 그럼 산타도 도깨비도 있고 아주 그냥 신도 있다고 하지?’라고 생각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맞다. 정말 있다. 누군가의 상상 속에는 분명 존재하지 않는가. 심지어 그들에 관한 책이며 영화며 이야기도 넘쳐난다. 이미  자체로 존재하는 거다.  세상에 그렇게 많은 이들이 존재한다고 믿는다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거다. 반대로 나는 어려운 원소 부호였던가 화학 부호 따위를 믿지 않는다. 이과적인 재능이  없는 내게는 그저 O2 H2O같은 존재는 없고 산소와 물만 존재한다. 그냥 다들 있다니까 있겠거니 하는 거지.

 

 조금은 부담스러운 이야기지만, 신에 대한 이야기도 나에겐 마찬가지다. 어려서부터 독실한 교인이셨던 할머니의 영향으로 교회를 다니고 코카콜라를 준다는 말에 혹해 카톨릭 세례를 받은 끝에 코카콜라와 크림빵  개를 품었으며 여행 중에는 이슬람 사원과 힌두교 사원을 들락거리며 지금은 불교에 관심이 있는 나는 개인적으로는 신의 존재도 인정할  있고 누군가는 인정하지 않을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인정하지 않는다면 신에 대해 상상을 하지 않을 뿐이다. 그렇기에 세상에 수많은 종교와 신이 존재할  있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의 마주침에 대한 한정적인 운명도 그렇다. 이런 운명을 인정하는 이들은 분명 마주침에 대한 상상을 펼칠  있는 이들이다. 나와 같은 이들이 천지에 있다는 사실은 나를  외롭게 만들어준다. 지금 당장 티브이만 틀어도 운명적인 만남을 그리지 않는 영화며 드라마가 있긴 할까. 이러한 이유로 나는 마주침에 대한 운명을 믿는다. 다른 부분에서의 운명, 그러니까 사랑이라던지 직업 같은 부분의 운명은 누군가에게는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나는 단호히 거부하겠다. 인정하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러거나 말거나 거부하겠다. 조금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그런  관심 없다.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써 자유롭게 상상하고 펼쳐나갈 생각하기도 바쁘다.



 그러나 마주침이라는 운명은 예외다.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가 마주치고  마주하는 일은 도저히 설명 불가능이다. 운명이라고 믿을  밖에. 특히나 운명 같은 존재는 우리를 조금은  설레게 만들어 주잖아.  이유만으로도 충분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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