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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오따따 Oct 06. 2020

모순적이야

과카몰리를 잔뜩 해 먹어 버린 밤이었다. 배가 부르니 스르르 잠이 들어버렸다. 올겨울은 유난히 따뜻했었고, 배부른 오늘은 유난히 나른한 겨울밤이었다. 보일러를 켜고 자는 것도, 방 안의 조명들을 끄고 자는 것도 잊을 만큼 말이다.

 해가 잘 들지 않는 내 공간이 모처럼 환했다. 눈이라도 온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어 확인하고 싶었지만, 습관이 되어버린 아이폰부터 집어 들었다. 카톡방엔 눈이 내렸고, 눈이 온다는 친구들의 메시지가 와있었다. 그리고 목이 아팠다. 목감기에 걸려버린 것이다.

 요가를 하기 전, 약이라도 먹을 심산으로 약들이 놓인 곳으로 시선을 옮기다가 쌍화탕이 눈에 띄었다. 지난해(라고 해봤자 두 달 전 즈음), 동환이 형이 갑자기 아파 샀다가 혹시 몰라 하나 챙겨둔 대추 쌍화탕이었다. 전자렌지에 뜨끈하게 데우고, 타이레놀이며 오메가5 같은 각종 알갱이 따위들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땀이 흠씬 날 정도로 요가를 하고, 샤워를 했다. 전날 먹다 남은 과카몰리와 샐러드로 건강한 아침을 보낼 계획이었지만, 손을 대지 않은 지 이주는 된 것 같은 라면이 당겼다. 감기에 걸려서.

 라면을 사러 나간 길은 눈이 펑펑 내렸다. 집에 돌아와 가장 먼저 한 것은 포트 와인을 여는 것이었다. 눈이 오니까. 담배도 한 대 피우려다 두 개가 되었지. 연기를 마실 때마다 목이 저렸다. 참 포근하고, 외롭고, 따뜻한 눈 오는 날.

 참 웃긴다. 추워서 눈이 오는 것인데 따뜻하다니 말이다. 난 참 모순적인 삶을 살고 있다. 건강해지고 싶어 하지만 건강하지 않은 것들을 좋아하고, 해야 할 것이 많지만 하지 않고, 겨울에 서핑을 그리워하더니 이제는 눈이 오는 겨울마저 따뜻하다고 느끼는 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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