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셋의 엄마입니다.
아이를 낳기 전엔, 아이가 싫었다.
아무리 아장거리는 아기를 보아도 행여 넘어질까 쳐다보는 것도 겁이 났고, 빽빽거리며 우는 소리는 내 귀와 내 뇌를 자극했다. 먼저 결혼한 친구가 아이를 데리고 오는 날엔 대화에는 집중하지 못했고 그건 아이를 데리고 나온 친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으악, 왜 아이를 낳는 것인지. 애 키우는 친구들만 봐도 이건 분명히 헬인데.
결혼 안 하겠다는 사람이 제일 먼저 결혼한다더니.
아이가 싫다던 내가 아이 셋을 낳았다.
둘째까지는 모두 둘 정도가 딱 좋지-라고 해주었지만 셋째 때엔....
주위 친구들도 어이없어했으며, 부모님들도 당황하셨고, 남편은 빌었고, 나는 연기처럼 사라지고 싶었다.
정관수술을 누차 권했음에도 ‘수술‘이라는 단어가 무서웠는지 수술하지 않았던 결과가 뱃속에 남게 된 것이다.
난 또 한 번 이 일을 해낼 자신이 없었다. 아이를 싫어했던 나는 막상 내 아이를 낳으니 너무 열심히였다. 아이를 싫어했던 내면에는 아이를 울지 않게 하고 싶고, 아이를 다치지 않게 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던 것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난 내 아기들의 울음소리에 예민했고, 빠르게 대응해 주었으며, 다치지 않게 눈을 뗄 수 없었고, 아기가 심심해 보이는 꼴을 보지 못했으며, 아기에게 건강한 이유식을 먹이고 싶어 했고, 아기 건강을 위해 먼지 한 톨 굴러다니지 않게 해야만 했던 그런 엄마였던 것이다. 아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미친 듯이 에너지가 고갈되었고, 나를 위해 쓸 에너지 한 방울 남지 않는 그런 하루를 보내는 엄마였던 것이다.
그럴수록, 오롯이 나 자신이고 싶다는 갈망은 커져 갔다.
그리고 드디어! 이제 막 두 아이들이 모두 어린이집을 가게 된 시점에서, 나 이제 애들 좀 키웠고, 이제 좀 느슨하게 키워도 되는 시점이니 내 삶을 찾아보겠어- 내 일을 찾아보겠어- 내가 하고 싶으면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지속가능한 그런 일로 나를 성장시켜 보겠어!라고 한껏 부풀어 있을 때. 그때, 셋째 소식을 알게 된 것이다. 나의 그 부푼 마음은 고이 접어 뱃속 깊숙이 도로 집어넣어야 했다.
솔직히, 나는 원치 않았다.
아이를 원치 않았던 것은 아니다. 아이는 둘을 키우며 더없이 사랑스럽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다시 한번, 그 늪 같은 터널에 발을 들일 자신이 없었다. 예민하고 민감한 엄마. 다시 그 엄마로 돌아가는 게 싫었다. 하지만 남편이 울었다. 주양육자인 네 뜻을 존중할게, 근데 뱃속의 아이도 저 애들처럼 예쁠 텐데. 하면서도 184cm의 큰 성인 남자는, 자신의 어깨를 들썩이며 소리 죽여 울었다. 아, 이 아이를 낳고 키울 결정은 오롯이 나 혼자 할 순 없는 거구나. 우린 부부고, 저 사람은 나의 남편이고, 나는 저 사람의 아내니까. 일방적인 결정은, 특히 상대방이 아주 중요시 여기는 가치가 걸린 일에 대한 결정은, 오래 지속되어야 할 관계에서 회복될 수 없는 치명타를 입힐 수 있음을 그때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나는 그렇게 아이 셋의 엄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