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그리고 다시 시작
2025년 8월 31일, 평안하고 은혜로운 주말이다.
신입사원으로 시작하여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시절, 청춘을 함께한 한 직장에서의 29년,
그 여정이 막을 내렸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한없이 멀리 달아나고 있고 그 속에서 자본의 몫을 채워가지 못하는 잉여의 노동은
결국 무능력이라는 합리적인 사유로 그 무리에서 내몰리는 상황과 마주하게 된다.
개인이 아닌 조직이, 불안하고 불확실한 미래의 리스크를 제거하고자 무능력한 개인을 찾아 안전한
새장 밖으로 내쫓는 인색하고 냉정한 일만 29년을 해왔다.
좋든 싫든 떠나는 그들의 마음을 십분 헤아리고 공감을 해야 만 했고 상대에게 그런 줄로 느껴지게
해야만 했었다.
그 동안의 삶은 어떠한 위기도 침체도 없었다.
그저 반복되는 지루함을 감내하며 조직이 요구하는 성과와 평가에 무던하게 순응하며 수용하는 작은 노력만으로도 안정적이고 평범한 직장생활은 신기하게도 유지되었다.
그러한 삶에 종지부를 찍고자 한 결정은 오래 걸리지 않았고 끝장내기전까지는 완벽하기만 했다.
어느 날 갑자기 늘상 해 오던 그 일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유명 시인의 시를 입에 담기조차 부끄럽긴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결심하기 까지 미묘한 솔직한 심정을
표현할 길이 없어 이렇게나마 살포시 내려놓는다.
베르톨트 브레이트[살아남은 자의 슬픔]
당연히 나는 알고 있다.
단지 운이 좋아 다른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 남았다는 걸.
그러나 지난번 꿈속
친구들이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다.
‘강한자는 살아남는다’
나는 내가 미워졌다.
세상은 종종 살아남은 자가 강하다고 말한다.
살아남기 위해 서로 협업하고 각자의 영역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동원하여 공동의 목적을 이루어
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보이지 않는 경쟁의 먹이사슬에서 동료들을 짓밟고 남의 공적을 내것으로
둔갑시키는 마법같은 기술이 암묵적인 인정과 그저 성실하고 열심히 보다는 잘 해야한다는
치열한 전쟁같은 직생활에서 29년을 강하게 살아남았다.
강해서 살아남았을까?
회사의 미래를, 명운을 핑계로 동료들을 보내는 그 입장,
어쩔수 없는 선택이라고 위로할 수 있을까?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할수 있을까?
떠나는, 내 몰리는 상황에서
이성적인 사고와 인내와 수용을 강요받았던 상대의 좌절감에
조금이라도 미안함이 내 속에 남아 있을 때,
이제 그만 하고 떠나야 한다는 양심이 사춘기처럼 찾아왔다.
다시는 월급쟁이를 하지 않겠다고
미리 준비된 계획도, 거창한 명분도, 목적도 없이,
무모한 결심을 한지
고작 15일만에 새장밖으로 나왔다.
드디어 하늘을 날아오르는 백수가 되었다.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한 날개짓은 냉혹한 현실의 벽에 부딪혀
금방이라도 맹수의 부리에 쫒기어 안전한 새장안으로 다시 돌아가고픈 마음이 굴뚝 같지만,
남의 시선에 길들어지고 세상의 질서에 순응하며 그 한계를 벗어나고자 어떠한 시도도 변화도 없이
뒤돌아보지 않고, 옆도 쳐다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고 있던 그길이 가장 안전한 길이라고 믿었던 그 29년이,
결국 독인줄은 이제야 알아간다.
그래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잃어버릴 지라도.
산 자에게 시간은 최종 목적지로 이끄는 길임에
연약하고 고루한 그 날개짓 하나하나에 다가올 시련의 역풍에 몸을 맡기며
날고 싶었던 그 창공으로의 어설픈 비상이
막무가내 백수를 자유롭게 해 줄 것을 믿으며
불안하고 무섭고 드렵지만 후회없이 이 무도한 비행일지를
한자 한자 기록하며 쉼없이 써 내려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