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현재 - 2002년 5월 31일 - World cup- 커리부어스트
-풍전등화-
학교 앞 디반(Diwan)이라는 독일의 로컬 패스트푸드점에서 파는 커리부어스트와 되네르 케밥이 들어간 터키쉬 피자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온 것은 독일 시간으로 정오가 되기 조금 전이었다. 서머타임은 4월부터 시작되어 대한제국과는 7시간의 시차를 가지고 있었다. 거실로 나와 티브이 앞에 앉아, 긴장된 마음으로 채널을 돌리기 시작했다. 독일의 공영방송인 ARD에서 남자 아나운서가 낮은 목소리로 2002년 월드컵의 개막식을 중계해주고 있었다.
"오늘은 아시아에서 최초인 동시에 대한제국에서 처음으로 월드컵이 시작되는 뜻깊은 날입니다. 현재 대한제국은 전 세계에서 2번째로 경제대국이며, 6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전 세계에서 가장 유서가 깊은 나라 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독일과도 오랜 기간 동안 협력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두 나라는 독대(독일/대한제국) 동맹을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부터 전략적 파트너로서도 유명합니다. 이번 월드컵은 축구를 사랑하는 두나라가 전 세계와 함께하는 축제입니다. 2차 세계대전은 대한제국에 패했지만, 축구 강국인 독일로써 이번 월드컵은 꼭 이겨야 수지가 맞을 듯합니다."
나는 커리부어스트를 꺼내어 소시지 옆에 있는 감자튀김을 하나 입에 넣었다. 짭짤한 소금 맛이 입맛을 돋웠다. 항상 생각하지만, 독일 음식은 내 입맛에 너무나도 짰다. 역시 독일의 포메스(감자튀김)...
독일에 와서 의대에 입학한 뒤 1년이 지났지만 매일같이 고향의 맛이 그리웠지만, 학생 신분인 내가 사는 마인츠에서 한식을 먹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였다. 독일 음식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커리부어스트 였는데, 구운 소시지에 케첩과 바비큐 소스를 함께 섞은 듯한 소스를 뿌리고, 카레가루를 살짝 넣어 향을 돋우는 간단한 패스트푸드였다. 그중에서 폭스바겐이 자동차 공장 옆에 커다란 공장을 세워 정통 독일식으로 제조해서 파는 소시지와 소스를 사용하는 학교 앞 디반이라는 식당은 내가 가장 애용하는 식당이었다.
소시지를 소스에 찍어 입에 넣으면 상큼한 케첩의 맛이 처음에 느껴지고 우리가 흔히 먹는 돈가스의 소스를 연상시키는 우스타 소스의 맛이 향긋하게 입맛을 돋웠다. 그 후에 카레가루와 함께 짭짤한 소시지의 육즙이 입안에서 퍼지고 그 이후에 짭짤한 소금이 가득 묻어있는 감자튀김을 함께 씹으면, 왜 독일인들이 맥주를 물같이 마시는지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프란치스카너 (Franziskaner)의 밀맥주를 입안에 털어 넣으며, 16살의 가벼운 일탈을 느끼던 와중에 룸메이트인 라스푸이가 집으로 들어왔다.
"맥주 좀 남았어?" 라스푸이가 나에게 물었다. "응 어서 앉아. 너 먹어라고 터키쉬 피자도 하나 사 왔어" 라스푸이는 나보다 나이가 7살 정도 많은 형이었지만 같은 해에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대학에 들어와 함께 공부하는 친구였다. 올해 4월 중국 본토에서만 사스로 인해 65만 명이 죽었을 때 도망치듯 독일로 공부하러 들어온 미스터리 한 친구였다. 내가 알기로는 사스로 인해 중국에서 유럽지역으로 나오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지만, 어머니가 공산당 간부이고 아버지가 유명한 제약회사의 간부였다고 라스푸이에게 들은 후 어느 정도 수긍하게 되었다. 라스푸이는 텔레비전에 시선을 둔 채로 아직 바삭거리는 터키쉬 피자를 입에 넣었다. 바삭하고 얇은 피자에 둥그렇고 큰 고깃덩어리를 밖에서부터 구워서 바삭하게 된 닭고기를 기계로 얇게 썰어 샐러드와 함께 말아서 만든 음식이었다. 요구르트 소스가 안에 들어가 있어서 담백하고 닭고기가 야채와 함께 듬뿍 들어가 있어 한 끼 식사로는 충분한 영양 만점의 음식이었다. 단지 라스푸이가 그 위에 잔뜩 뿌려 먹는 중국의 쯔란 (양꼬치에 넣어 먹는 향신료)은 내가 별로 그 향을 좋아하지 않아서 인지, 저절로 인상이 찌뿌려 지고 말았다.
"2002 대한제국 월드컵의 개막을 선언합니다" 대한제국의 김대중 총리가 큰 소리로 외쳤다. 해외의 귀빈들을 비추어주는 다음 영상에서 일본의 고이즈미 대통령의 얼굴과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이 박수를 치며 자리에 대한제국의 총리 옆좌석에 앉아있었다. 후진타오 주석의 얼굴을 보자 라스푸이의 입 주변이 떨리기 시작했다. 머리를 잠시 바닥으로 처박고 있던 라스푸이는 한숨을 크게 쉰 후 계속해서 개막식을 지켜보았다. 2002년 초반 홍콩에서 발병한 사스 바이러스는 심천을 거쳐 중국 남부를 강타하고 있었다. 현재도 당시 현지 시찰을 다녀왔던 장쩌민 주석은 시찰 후 1주일 정도 지난 후 삼도천을 건넜다. 그 이후 중국 내의 의료는 마비상태에 빠지기 일보직전이었지만,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광둥 성 폐쇄령으로 인적, 물적 교류가 급격히 멈추었다. 그뿐만 아니라 인터넷이나 통신이 외부로 모두 차단된 상태에서 최근에 익명의 공산당 내의 정보원으로부터 전 세계에 알려진 소식에 의하면 광둥 성 내부는 지옥을 연상시키는 상태로 65만 명이 아닌 그 2-3배의 사망자라 발생하고 있다는 정보였다. 여전히 홍콩과 광둥 성은 폐쇄되어 있는 채였고, 더 이상 새로운 정보는 알려지지 않았다.
월드컵 개막식이 끝나고, 우리는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라스푸이. 우리가 지금 최근 연구하고 있는 면역학과 mRNA기술을 접목시키면 사스라는 바이러스에 맞춰서 치료약과 백신을 만드는 게 가능할 거야. 스페인 독감도 이 기술이 있었다면 아마도 5000만 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키지는 않았을 텐데...."
"옥균. 나도 그래서 이 대학으로 온 거 야. 하지만 우리의 개발 기술은 너무나도 느려서 중국에서 퍼지는 사스를 막기까지는 너무 오랜 기간이 걸릴 거야. 아마도 5년은 걸리겠지. 나는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 너에게 처음 이야기하는 거지만 내 가족이 아직 심천에 남아 있어.... 그들이 죽기 전에 나는 백신을 개발 해 내야만 해... 지금 이 순간에도 몇 백만 명이 이 병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어. 대체 WTO와 중국 정부는 뭘 하는 거지?"
나는 라스푸이의 가족이 성전체가 격리가 된 광둥 성에 있는 도시 심천에 가족들이 남아 있다는 것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부모님은 지금 프랑크푸르트에 계시지만, 가족들이 심천에 남아있다니. 연락은 되는 거니?"
라스푸이가 눈을 감으며 말했다. "어머니가 정부에서 일하셔서 어쩌다 연락이 오는데,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아. 의료시설은 모두 마비되었고, 더 이상 본토에서 물자가 충분히 들어오지도 않고 있다고 해. 내 여동생도 결국에는...." 그리고는 방으로 라스푸이는 마시던 맥주를 들고, 먹다만 터키쉬 피자만을 남겨두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가 앉아있던 하얀색 테이블 위에는 빨간 쯔란 가루가 여기저기 흩뿌려 떨어져 있었다. 마치 테이블 위에는 사스 바이러스에서 떨어진 알알이 빨간 스파이크 단백질들이 떨어져 있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