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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GO Jul 27. 2022

Food and the city

순대국밥과 막걸리 in 김포

무심한 듯이 놓아주는 플라스틱 그릇이 식탁에 부딪힐 때 나는 소리. 뜨거운 뚝배기에서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국물과 함께 튀어 오르는 고소한 향. 뽀얀 국물 위에 양념 다진 양념이 올라가서 국물 안으로 녹아내리는 모습. 차가운 막걸리 병을 흔들어 작은 막걸리잔에 넣고. 일단은 입으로 고기 한 점을 입으로 넣고 깍두기를 씹은 후 막걸리를 한잔 마시면 비로소 내가 어릴 적 아버지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느낀다.



요즘 유튜브로 자주 보는 영상이 성시경 씨가 하는 "먹을 텐데"라는 채널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으면서 간단히 그 식당과 얽힌 이야기나, 최근에 생긴 일 또는 그 음식에 관련된 토막 지식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내용인데, 꽤나 즐겁게 보고 있다. 특히 성시경 씨의 최애 음식은 국밥인데, 여러 국밥집을 다니면서 깨끗하게 비우는 모습을 보면, 이 형도 나와 동년배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사실 나이가 중요한 것보다는, 음식에 관한 방향성이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와 비슷해진다는 것은 꽤나 의미 있는 일인 것 같다.


어렸을 적에 어머니는 햄이나 냉동식품 같은 간편 음식을 자주 해주시지 않았다. 그래서 항상 도시락에 햄이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하고는 했는데, 어머니께 말씀드리면 "햄이 무슨 맛이 있다고" 하시면서 가끔 햄을 구워서 식탁에 올려놓으시고는 했다. 지금 나는 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어머니가 해주시던 말이 무슨 말씀인지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곧 마흔에 들어가면서 나는 나물이나 생선 또는 국물 음식을 좋아하게 되었고, 어렸을 적 어머니가 자주 해주시던 음식을 찾게 되었다.


어렸을 때는 먹어본 적이 없는 것 중에 좋아하는 것이 순대국밥인데, 사실 우리 집에서는 순대국밥을 먹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대학시절에도 일본에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순대국밥을 접해 본 적이 없는데, 군대를 다녀오고 한국에서 잠깐 회사를 다니면서 친구들과 함께 순대국밥 집에 자주 들르면서 좋아하는 음식이 되었다. 다시 일본에 들어가서 일을 하다가 한국 출장이 생기게 되면 보통 숙박하는 곳이 김포공항 근처에 있는 롯데시티 호텔이었다. 거기서 약 15분 정도 걸어가면 공항시장이 있는데, 24시간 운영하는 할머니 순댓국이라는 식당이 있었다. 


24시간 열었기 때문에 손님과 술을 마시고 나서도 꼭 들려서 국밥을 한 그릇 먹고 호텔로 돌아갔는데, 내가 시키는 음식은 항상 보통 순대국밥과 맥주 한 병과 막걸리 한 병이었다. 그것은 하나의 루틴이었는데, 일단은 순대국밥을 시키고, 맥주를 한잔 하면서 양파와 고추를 쌈장에 찍어먹고 티브이를 본다. 그리고는 순대국밥에 나오는 순대를 몇 개 정도 앞접시에 꺼내놓고 아직 뜨거운 순대를 입에 넣은 후 깍두기와 함께 씹으면서 맥주를 모두 마시고 국물을 맛본다. 새우젓을 조금 덜어내서 머리 고기와 함께 먹다 보면 막걸리가 당기게 되는데 막걸리는 한잔 들이켜고는 티브이를 보면서 천천히 양파 - 고기 - 고추 - 순대 - 깍두기 - 막걸리를 무한 반복하며 천천히 먹다 보면 어느새 국물만 남게 된다. 사실 밤에는 밥을 잘 먹지 않기 때문에 국밥이라고 하기 무안하지만 국물과 밥을 몇 숟가락 떠먹으면서 식사를 마무리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시간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혼자만의 시간이어야 하는 것인데, 티브이를 보면서 무심히 앉아 나만의 시간을 즐기는 것이 포인트이다.


한국에 돌아가지 못한 게 벌써 3년 반인데, 공항시장에서 먹던 순댓국이 그리워지는 밤이다. 오늘도 "먹을 텐데"보면서 대리만족을 느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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