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육아 일기

남산 나들이

사랑의 자물쇠

by 박경진

아침부터 모처럼 세 식구가 함께 남산 나들이를 다녀왔다.

소중한 휴일에는 주로 손님을 집으로 초대하여 담소를 나누는 시간(=음주가무를 즐기는 시간=술자리)을 갖거나, 부부의 진정한 휴식을 위해 가급적 한 사람이 아이를 전담 케어하고 다른 한 사람은 온전한 자유시간을 갖는 편이다. 나 혼자 아이를 데리고 친정 부모님이 마련해 두신 주말농장을 방문하는 경우도 많다. 아이는 이런 시간을 '엄마와의 데이트', 혹은 '아빠와의 데이트'라고 부른다. 다소 개인주의 성향이 짙은 우리 가족이 다 함께 움직이는 '우리 가족 데이트'는 그리 흔하지 않다. 흔하지 않아서 더욱 소중하고 즐거운 시간이라고, 우리 가족만의 스타일을 자평해 본다.


호연이는 남산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주차 안내를 해 주시는 기사님께 이쁘게 인사를 하고서 마이쮸 하나를 선물로 받았다. 나들이 시작부터 달달한 마이쮸를 받아든 호연의 기분도 케이블카와 함께 수직 상승했다.

난 서울 촌놈이라 남산 케이블카를 처음 타 봤다. 십수 년 전 친구들과 함께 남산 나들이를 했을 적에는 마을버스를 이용했던 기억이 난다.

호연이는 일전에 먼저 '아빠와의 데이트'를 하며 남산에 놀러 온 적이 있어서, 오늘은 가이드라도 된 것처럼 내게 쫑알쫑알 이것저것 소개를 해 줬다. 마치 나는 모든 것이 처음인 양 다소 과장된 리액션을 취해가며 아이의 설명에 귀를 기울인다. 여기 계단을 올라가면 남산 타워가 나오고, 또 뭐랑 뭐가 있을 것이고, 뭐랑 뭐를 팔 거고... 그래그래, 같이 가보자꾸나.


계단을 오르던 중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자물쇠들이 보였다. 십수 년 전과 똑같이.


사랑의 자물쇠는 정말이지 내 취향은 아니다. 26살에 만나 5년의 연애를 했고 함께 산 지도 이제 10년이 다 되어 가지만, 구 남친이자 현 남편과는 풋풋했던(?) 시절에조차 커플링이나 커플티 같은 것을 맞춰 본 적이 없다. 남편과 성향 비슷하여 참 다행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저런 '사랑의 징표'를 보면서 인상을 팍 찌푸리곤 했는데, 요즘은 조용한 미소로 이러한 풍경을 응시할 수 있을 정도로는 성장한 것 같다. 미소라고 하기엔 내 입꼬리 좌우 대칭이 잘 맞지 않는다는 사실이 즉각적으로 느껴지기는 하지만 말이다. 인격 수양이 더 필요하다.


저렇게 녹이 슬 정도로 오래된 자물쇠의 주인들은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을까.

크게 다투고서 헤어진 연인도 있겠지. 이별한 다음에 문득 자물쇠 생각이 나지는 않았을까.

후회가 남는 슬픈 이별을 하고 나서, 사랑하는 이와 함께 채웠던 이 자물쇠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 어떤 이에게는 미련이나 기대일 수도, 혹은 절절한 로일 수도 있겠지.

복잡한 생각들은 산 아래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날려 보내고, 딸아이의 생각을 한 번 물어보았다.


-호연아, 호연이랑 엄마 아빠도 사랑의 자물쇠를 다는 게 좋을까?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엄마 아빠가 나누던 대화를 슬쩍 들으며 분위기를 읽은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아이의 말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이번엔 좌우 대칭이 꼭 맞는 진짜 미소이다.

엄마도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거든.


-그럼 그럼~. 우리는 저런 걸로 묶어두지 않아도 절대 풀리지 않는 가족이니까.


안심한 것도 같다.

사랑의 자물쇠를 '달고 싶다' 혹은 '달고 싶지 않다'가 아니라 '필요 없다'는 아이의 말에.

팔불출 엄마는 또 이런저런 의미를 부여해 보고 싶어 진다.

아니 아니, 과장된 의미 부여 또한 바이 '필요 없다'.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전망대에도 올라가 보고, 스티커 사진도 찍고, 아이스크림도 하나 먹었다. 내려오는 길에는 남산 원조 돈가스도 먹었다.

화창한 가을을 온몸과 온 마음으로 즐기고 온 하루.

오늘은 꼭 일기 써야겠다. (주어는 호연이)




(*2021년 10월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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