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육아 일기

엄마의 사과

반성 일기

by 박경진

딸아이가 하원하고 난 뒤 가방을 열어 보면 뭐가 참 다양하게도 들어 있다.

유치원에서 그린 그림, 고사리 손으로 접은(대개 정체를 잘 알 수 없는) 종이접기 작품, 색종이 뒷면에 끼적인(9할은 '엄마 사랑해요'라는 동일한 문구가 적힌) 편지 등.

제법 거창하게 각 잡고 만든 작품은 함께 거듭 살펴보며 이야기도 나누고 소중히 보관하지만, 기타 종이 쪼가리(주관적인 가치판단;;)들은 거의 쓰레기통 행이다.

아이에게 물어보고 버리는 게 맞는 건데, 이날은 특히 비도 많이 왔고 집으로 방문 선생님도 오시기로 했고 뭔가 분주하고 정신이 없었던 날이라 아이 가방에 있던 것들을 내 멋대로 우르르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 아이에게 딱 걸렸다.

하필이면 자기 전에.

서러움이 차올라서는 "엄마 미워!"를 연신 외치며 잠들기를 거부하는 딸내미.


-임주영 선생님이랑 같이 그린 건데!

(근데 선생님 성함 왜 하필...? 김주영 쓰앵님이 떠오르며 '위올라이~♪'가 자동 재생;;;)

-엄마가 그 그림이 소중한 건지 몰랐어. 정말 미안해. 엄마 잘못이야.

-엄마 미워! ㅠㅠ

-정말 미안해.

-엄마 잘못이야. ㅠㅠ 엄마가 제일 미워. ㅠㅠ



몇 시간 전에 버려진 그림은 이미 구겨지고 좀 젖어 있었다.

쓰레기통에서 다시 꺼내서 말려 줄까 해도 싫다고 하고...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물어도 대답이 없고...

엄마가 앞으론 뭐든 꼭 물어보고 나서 버릴게 해도 이미 상한 아이 맘이 쉬이 풀리질 않았다.

그럼 마음이 좀 진정되면 엄마랑 들어가서 자게 얘기하렴, 하고 자리를 뜨려고 했더니 아빠 상어가 나섰다.

아이는 아빠한테 안겨서 한참을 더 울다가 결국 아빠랑 같이 잠이 들었다.


호연이가 잠들고 나서 아빠 상어랑 면담.

어린아이한테 너무 논리적으로 질문하고 설득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말라고 한소리 들었다.

물론 아빠라는 기댈 구석이 있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아이한테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해결책을 직접 물어보기보다 그냥 말을 줄이고 안아 달래 주는 게 나았을 거라고.


그렇구나 싶었다.

엄마가 밉다고 외치는 아이의 말에 딱히 상처를 받았던 것은 아니다. 길어지는 칭얼거림에 육체적 정신적으로 피곤하기야 했다만.

나는 과거의 행위를 반성했고, 현재에 미안하다고 분명히 말했고, 미래의 노력까지 자발적으로 밝혔으니 모든 문제는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다. 헝클어진 아이의 마음은 아이 스스로가 진정하면 된다고 여긴 것이다.

지나친 개인주의자이자 논리를 신봉하는 이성주의자 엄마임을 반성한다.

아이를 너무 논리적으로 설득하려 하지 말라는 말은 호연이가 세 살 때에도 들었다.(갓 돌 지난 아이에게도 TMI 양육을 하려 했다...;;)

나의 고질적인 문제다.

감정 조절이 필요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나에게 있어 더 쉽고 간편한 해결 방법인 '말빨'을 뻔지르르하게 내세우며, 네 감정은 너 스스로 진정하고 오너라 했던 경우가 몇 번 있었던 것 같은데,

6살 아이한테 너무 매정했나.

성인을 대상으로는 또 어떠한가.

생각이 많아진다.


모든 공격은 도와달라는 외침이다.
(All attack is a call for help)

누구는 교육학자의 말이라 하고, 누구는 종교적 아포리즘으로 사용하더라만,

지금의 나에게 꼭 필요한 문장이다.

아이들은 울음으로, 고함으로, 반항으로, 혹은 무시로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것은 공격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어린 자식에겐 당연히 더 그래야 하겠지만(난 자식도 독립된 개체이자 타자로 인식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타자의 '공격'에 과연 어디까지 너그러워질 수 있을까.

정말이지 일생의 숙제다.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잘못은 내가 했지만, 해결책은 네가 찾아라.)

'마음이 계속 안 풀려?' (이제는 그만 마음을 풀어야 옳지 않겠니?)

이런 질문들이 강압적이었을 수 있겠다.

아무리 말투가 너그러웠어도. 아무리 소리 지르지 않고 말했어도.

내가 제법 괜찮은 엄마라는 자만은 저만치 멀찍이 치워두자.

정서조절 코칭법도, 각종 상담의 기술도, 어쩌면 나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십수 년 간 계속 관심을 갖고 배워오고 있는데... 아직도 참 멀었다.




다음날 아침 호연이는 평소처럼 일어나서 예쁘게 웃으며 사랑한다고 아침 인사를 나눠 주었다. 그리고 전날은 속상해서 충분히 이야기 나누지 못했던 사건의 전말을 들려주었다. 내가 버렸던 그 그림을 같이 그린 임주영 선생님이 여름방학 동안만 함께하는 선생님이라서 그날 함께 그린 그림이 임주영 선생님과의 마지막 활동이었고, 그림이 망가졌다는 슬픔과 함께 개학이 되면 선생님을 볼 수 없다는 서러움도 함께 올라왔던 것이었다.

정말...

엄마가 많이 많이 미안해.




(*2021년 9월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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