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중반부터 취미 삼아 이 곡 저 곡 써 보고, 운 좋게도 여러 대회에서 크고 작은 상들을 타 보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소회가 좀 남다른, 애착이 많이 가는 곡이다.
가사를 쓰다 보니 어느 정도 서사가 드러나야 해서 곡 길이가 애매하게 길어졌고, 멜로디를 붙일 때도 코드 진행을 잡아가기가 상당히 까다로웠던 기억이 난다. 작곡은 정식으로 배우지 않은 터라 감만 가지고 작업하는 게 매번 참 부담스럽고 겸연쩍다.
곡을 만들고 나면 보통 가창 지도 선생님께 연락을 드리고, 가창 지도 선생님이 선택한 아이들이 노래를 연습해서 대회에 나가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작곡자(특히 작사자)가 가창자들을 직접 만나고 소통할 기회는 그리 흔치가 않다.
그런데 이 곡을 불러준 아이들의 얼굴과 당시 대회 현장의 분위기가 특별히 더 생생하게 기억나는 이유는 무엇일지 고민해 보았다.
희망창작동요대회 당일 대기실에서 가창자 아이들을 만났을 때 한 학부모께서 나를 알아보시고는,
"가사가 너무 좋아서 아이들이 노래하는 내내 행복했어요." 라고 인사를 해 주셨는데 아무래도 이 멘트가 내 마음의 빗장을 일순간에 열어 주었던 듯하다. 90년대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적어 내려간 가사에 2015년을 살아가는 어린이들이 공감을 해 주었다는 대단히 직설적인 피드백.
내가 좀 더 애정을 가지고 동요 작사 작곡이라는 취미 생활을 이어가도 되겠구나 마음먹었던 순간이다.
요즘은 깍두기라는 말을 안 쓴다고 한다.
애당초 놀이터에서 삼삼오오 모여서 놀지도 못할 만큼 학원 다니느라 바쁜 초딩님들이고, 깍두기를 끼워 주고 함께 노는 것보다는 왕따, 은따, 전따 같은 용어를 입에 올리며 끼리끼리 노는 문화가 더 익숙하다고 하니 속상할 따름이다.
아이들이 이 노래는 모르더라도, 옛날 옛적에 깍두기라는 놀이 문화가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꼭 알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