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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진 Apr 24. 2022

지아비를 섬기는 여성

어떤 페미니스트의 일기

블로그에 얼마 전 글을 하나 썼다.

자기 식사를 스스로 못 챙겨 먹는 남성에 대한 글을 보고 울컥해서 남긴 글이다.

블로그를 비롯한 다른 sns에 쓰는 글은 사실 글이라기보다 끄적임이라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다. 브런치에다가 그대로 복붙하기는 부끄럽고, 그렇다고 원문을 글답게 고쳐 쓰는 것도 귀찮고 하여 링크를 한 번 첨부해 본다.


https://m.blog.naver.com/pkjchild/222707888253


"나는 아버님을 존경한다.

아버지도 존경한다.

남편도 존경한다."


내가 쓴 문장이긴 하지만 굳이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나는 어머님과 어머니를 더 존경한다"라고 말해야 할까는 의문이다.

그것이 설령 진실일지언정.

쓸데없는 말을 덧붙여 오해를 낳고 싶지 않은 것이다.

여성이 '더' 존경받아 마땅한 것은 아니니까.

남녀평등이라는 페미니즘의 기본 원칙에도 위배되고 말이다.

간혹 개개인의 특수하고 다양한 상황은 외면하고 언제나 여성이 '더' 힘들고 언제나 여성이 '더' 배려받아야 한다는 식으로 투쟁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지레 움츠러들고는 한다.

그들의 눈치가 보이는 것이다.


어쨌든 나는 남편을 존경한다.

지아비를 섬기는 여성 맞다.

우리 부부는 때때로 서로서로 높여 주고 때때로 서로서로 까내린다. (서로서로 "나니까 너랑 살아주는 거야, 지금의 행복은 다 내 덕인 거 알지?" 하며...)


'존경한다'는 것은 남의 인격, 사상, 행위 따위를 받들어 공경한다는 뜻이다.

존재 자체를 '존중'할 수는 있지만, 아무런 행위도 없는 대상을 '존경'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 인간의 행위란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한가. 행위의 결과인 성취만 가지고서 누군가를 존경한다고 운운하는 것은 하급이다. 행위의  과정에는 당연히 행위의 주체인 당사자의 인격과 사상이 녹아들어간다.

남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연민의 감정이 존경과 대단히 닿아 있다고 다. '연민'라는 이름의 는 언제나 '희생', '고통', '착취', '피해' 같은 어휘들 위에 떠다닌다. 연민과 동정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자신이 가진 소중한 것을 자발적으로 내어주는 행위 시대성별을 불문하고 감탄을 자아낸다. 시궁창 같은 현실의 고통을 묵묵히 견디어 내며 래의 희망을 좇는 행위, 내가 아닌 남을 위해 인내를 넘어서는 용기를 내는 행위, 기꺼이 자발적으로 자신을 희생하는 행위. 행위 안에 담긴 인격과 사상. 나는 그것을 연민하고 또한 지극히 존경한다.


나는 나의 부모님을 존경한다.

나는 자보다 무식자를 존경한다.

나는 자보다 약자를 존경한다.


랜 역사 속에서 비교적 약자의 위치에 있었던 여성들을 연민하는 나는,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거리낌 없이 말하고 다니곤 했다.

그런데 해가 갈수록 내가 하는 말에 어폐가 있거나, 내가 가식을 떨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문득문득 고민스럽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나의 언어가 정작 내가 말을 걸고 싶은 고통받는 이들에게 별로 가 닿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을 한 지가 꽤 오래되었다.


나의 지식과 나의 언어는 과연 누구에게 봉사하고 있을까.


나야 퍽 좋은 환경에서 자랐고, 일찌감치 여성학에도 관심을 두고 공부했고, 소위 낙타의 시간과 사자의 시간을 비교적 빠르 지나 어린이처럼 자유롭게 성별의 굴레를 벗어난 위버멘쉬!의 삶을 살고 있다고.

결혼을 선택하고 출산과 육아를 선택한 지금도 예와 다름 없이 그렇게 생각하지만.

아직도 무거운 짐을 지고 낙타의 시간을 보내는 여성들이 많고, 일단은 알을 깨고 투쟁해야 하는 여성들이 많다면?

나는 그냥 입을 다물어야겠다.

스스로가 페미니스트라는 말도 앞으로 하지 말아야겠다.

복 받은 이가 복에 겨운 소리를 해봤자 울림이 있을 턱이 만무하다.

내가 소싯적 레즈비언 단체에서 활동하고 성소수자 퍼레이드에 참여했다는 말도, 진보 정당 소속의 젊은 친구들과 여성학 스터디를 하기도 했다는 말도, 다 쉬어빠진 라떼 이야기이다.


쓸데없는 말을 줄이고 행동을 하자.

인격과 사상이 드러나는 행위만이 진실이다.

그저 내 눈앞의 이가 지금 장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면, 그 사람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기성세대인지 요즘세대인지를 떠나서 연민을 아끼지 말아야겠다.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선한 본성을 믿고 그들 존경 하는 마음으로 먼저 손을 내밀어야겠다.

알량한 나의 지식과 나의 언어로 남을 가르치고 싶은 이 마음은 멀찍이 좀 치워 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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