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육아 일기

계류유산이 뭔데?

프롤로그 1

by 박경진


때는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편과는 대치동 위치한 독서논술 학원에서 강사 일을 하다가 만나 약 5년간 연애를 하고, 2013년에 결혼을 했다. 그리고 2014년에 첫 임신 소식을 받아 들었다. 여느 여성들처럼 '임테기'라고도 히 불리는 임신 테스트기의 선명한 두 줄을 확인하고 동네 산부인과에서 초음파 검진을 받았다.


사족 같지만, 나도 남편도 스스로를 별난 성격의 소유자라고 여겨서 20대 시절엔 둘 다 '설마 내가~?' 결혼도 하고 아이도 가지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다고, 지금도 안주 삼아 자주 말하곤 한다.

어쩌다 보니 대화가 잘 통하는 서로를 만났고, 이별의 위기를 무난하게 넘겨 오랜 기간 사귀었고, 나이가 서른이 넘으며 자연스레 결혼까지 오게 되었다.

'그래, 이 사람이어야만 해!' 보다는, '이 정도면 결혼해도 괜찮겠구만.' 정도의... 달달함은 한껏 뺀 그런 결혼이었다.


임신 역시도 그러했다.

연애 기간도 길었겠다, 슬슬 아이가 생겨도 좋겠다고 생각하고 피임약을 끊었을 즈음 자연스레 임신이 되었고, 남편과 함께 병원에서 초음파 사진으로 아기집을 확인했을 때에도 어디에선가 많이 본 듯한 감격스러은 한껏 뺀 그런 마음으로 우리 이제 부모가 되나 보다 생각했다. 그리고 곧바로 손주 소식이 퍽 궁금하셨을 양가 부모님께 연락을 드렸다. (초보 부부의 실수가 여기에 있었다...)

바로 다음 주 산부인과 검진에서 부정적인 소견을 들었다. 아기집은 보이는데 아기가 보이지 않는다고. 고사 난자일 확률이 높다면서 다음 주에도 배아가 확인되지 않으면 1~2주 안에 소파 수술을 진행해야 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임신 초기가 위험하다는 말은 익히 들었지만 이게 내 얘기일 줄은 몰랐지.

집에 와서 고사 난자, 계류유산, 자연유산에 대해 폭풍 검색을 해 보았다. 대개 염색체 이상에 의한 결과이며 생존 불가한 배아(embryo, 보통 10주 이상이 된 태아와 구분하여 이르는 말.)가 자연 탈락하는 것뿐이라고, 살아가며 유산을 경험하는 산모의 비율이 1/5 가까이 된다고 하니, 의학적으로 접근하면 별 것 아닌 일이었다. 초음파 검진 시스템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숱한 여성들이 임신인 줄도 모르고 본디 예정일보다 조금 늦은 하혈과 함께 이 같은 자연유산을 겪기도 했겠구나 싶었다.

주변에 다른 좋지 않은 이유로 소파 수술을 경험한 지인들도 몇몇 있었던 터라 수술 자체가 낯설거나 겁났던 것도 아니고, 이처럼 자연적인 이유로 자연적인 수술을 하게 되는 것에(흠... 자꾸 자연 자연 하니까 게슈탈트 붕괴가 일어날 것도 같지만, 그리고 유산 또는 중절 수술이라는 것에 대관절 좋은 이유는 뭐가 있을까도 싶지만, 그래도 정식 명칭이 '자연'유산이니까...a) 가 특별히 침통해하거나 슬퍼하는 것도 참 배부른 팔자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그냥 그렇게 마음 정리가 되었다.

사실 어제와 같은 일상을 보내며 그저 기다리는 것 외에 내가 딱히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예정했던 다음 검진일이 다가오기도 전에 회사 화장실에서 하혈을 확인했다. 그냥 생리 같았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려고 했건만. 묘한 감정이 올라왔다.

'이_흘러내린_핏덩어리_안에서__첫_아이의_시신을_발견할_수_있을지도_'라는 문장이 마치 타이핑을 치듯이 머릿속에서 떠올라서, 문장의 마침표가 온전히 찍히기 전에 부러 고개를 세차게 젓고는 화장실을 나왔다.

남편에게만 우선 연락을 넣었다. 퇴근 후에 만난 남편은 큰 감정 동요 없이 추후 일정을 함께 논의해 주었다. 병원에 전화를 하여 수술이 가능한 검진일을 다시 잡았다. 남편도 동행하기로 했다.


다음날 회사에 연차를 쓰면서도 담담했다.

소파 수술은 별로 큰 수술도 아니고, 당일 하루도 채 쉬지 않고 자의로 타의로 일상에 복귀하는 케이스도 많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던 터라, 주말까지 끼고 금요일에 연차를 쓰려는 입장에서 굳이 이 사실을 팀장님께 알릴 필요가 있을까도 좀 고민되었다.

돌이켜봐도 조금 우습지만, "내가! 지금! 신체적 정신적으로 힘들 수 있는 상황이니까 가능하면 업무적으로 좀 배려도 받고 싶고, 날 당분간 안 건드려 주시면 참 좋겠습니다!"라고 비언어적인 어필을 하고 싶은 마음도 다.

팀장님께 사내 메신저로 면담을 요청하고 사무실에 딸린 작은 회의실에서 계류유산에 대한 소식을 전했다.

솔직히 팀장님의 반응이 의외였다. 내가 이야기를 꺼내자 동공이 격하게 흔들리시더니, 미리 준비했던 연차 이야기를 미처 꺼내기도 전에 어떻게 하냐며 손을 잡고 울음을 터뜨리셨다.

내가 그 순간 무슨 생각을 했었던가. 명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 그런가... 이거, 슬퍼해도 되는 일이구나...' 이런 비슷한 감정이었던 것 같다.

임테기 확인부터 그날 그 시간까지, 부침 없이 부여잡고 있던 마음이 일순 흔들렸다.

그때 처음으로 나도, 조금 울었다.


이성을 바탕으로 무덤덤하게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만이 진실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남의 일에는 눈물도 많고 감동도 잘하는 나는 막상 내 일에는 잘 빠져들지를 못한다. 한 감수성을 자랑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왜 막상 스스로에 대해서는 그렇게 쿨내를 풍기며 살아왔는지...

천성이 낙천적이고 고통 회피 성향이 강한 타입(에니어그램 7번 성향)이라서. 금방 이성으로 감정을 통제하는 성격(주지화 합리화를 주요 방어기제로 삼는 사람)이라서. 원인을 한번 찾아보려 했지만 별 소용은 없더라. 이유를 찾는다고 해서 특별히 달라질 것도 없었다. 쿨한 나도 쿨한 척하는 나도 모두 나의 구성 요소임을 알고 있다. 쿨한 척하는 나를 가끔씩 돌아보고 다독여 주어야겠다고 다짐한다.


남편에게는 참 고마운 마음이다.

수술을 마치고 난 뒤에 "아이의 심장 소리를 듣거나 태아의 형태를 보지도 못했던 것이, 오히려 상상력이 자극되지 않아 다행스러웠다"라고 얕은 소회를 밝혔을 때, 남편은 그저 "회복실로 걸어 들어오던 당신이 잠시 휘청였다가 자세를 바로 했던 모습이 참 속상했다"고만 말해 주었다.

그 말이 대단히 위로가 되었다.

밖으로 잘 드러내지 않는 크고 작은 나의 상처들을 바라봐 주고 애석하게 여겨 주는 반려가 있다. 더 큰 휘청임의 순간에는 이 사람이 기꺼이 나를 붙들어 주겠지. (남편이 했던 말의 진의를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긍정적인 착각도 삶에는 유용한 에너지원이 되지 않겠는가.)


낙천가 박매드.

<캉디드>라는 소설 속 인물을 통해 말한 철학자 볼테르의 명언을 빌려 본다. "그래도 우리는 우리의 정원(밭)을 가꾸어야 한다."

그렇게 또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걸어가야지.

각자의 사연들은 각자의 가슴에 조용히 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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