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임신이었다. 2014년 첫 임신이 계류 유산으로 6주 만에 종결되었기 때문에, 2016년 봄날 처음으로 아이의 심음(心音)을 들어 보았다.
평일에 오전 반차를 내고 남편과 함께 들른 산부인과에서 아이의 심장소리를 듣고 가장 처음 느꼈던 감정은 안도감이었다. 이제는 양가 부모님께 말씀드려도 되겠다!
2년 전 유산을 경험하고서는 임신 생각이 좀 없어졌더랬다. 그래서 다시 피임약을 먹으며 적당히 자녀 계획을 미뤄왔던 것뿐인데, 그동안 양가 부모님 모두 임신 관련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셨다. 혹시라도 유산의 아픔을 건드리게 될까 염려하셨던 것이리라. 배려에 감사하면서도 그 편안함을 충분히 누렸다.
예상했던 대로 성공적인(?) 임신 소식을 전해들으신 부모님은 우리 부부보다도 더 많이 기쁨을 표해 주셨다.
태명을 덕이라고 지었다. 어른들은 덕 덕(德) 자라고 여기실 거라고 생각했고, 우리 부부와 친구들은 자연스레 덕후(오타쿠)의 덕이라고 여겼다.
예정일은 12월 20일경이었다.
(12월생은 또래보다 느려서 학교 생활이 힘들 수도 있고 어쩌고 하는 걱정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진짜로, 아이가 태어날 달까지 계산을 하고 임신 계획들을 세운답니까? 정말로? 레알 참 트루? ㅎㅎㅎ)
12월이면 딱 연말이니. 그래, 올 한 해는 엄마가 되기 전 박매드의 삶이자,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일지 모르는 임산부로서의 삶을 원 없이 즐겨야지 하는 각오를 다졌다.
'평생 학습자'라는 아이덴티티를 살려 매주 적당히 임신과 출산에 대해 공부했다. 요즘은 더 좋아졌겠지만 2016년 당시에도 임신 관련 어플이 이것저것 나와 있었다. 주 단위 일 단위로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태아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어 도움을 많이 받았다.
임신 출산 대백과 같은 어마어마한 이름과 어마어마한 두께의 책들이 다수 나와 있었지만,무엇보다기형아나 유산, 출산과 관련하여 쓸데없는 걱정과 두려움을 미리 갖고 싶지는 않았기에 선행학습은 가급적 자제하였다.
만약 임신과 출산을 앞둔 후배들이 굳이 내게 조언을 청한다면 이렇게 이야기해 주고 싶다.
"그대여, 두려워 말라!"
임신과 출산에 대해 공부하고 노력하는 것은 너무나 훌륭한 자세이지만, 그 공부의 궁극적인 목적이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한 것임을 잊지 말기를.
자연분만도 제왕절개도 모두 괜찮다. 모유수유도 분유수유도 모두 괜찮다. 다 앞서 선배들이, 우리의 어머니와 할머니들이 지나간 길이다. 당면한 상황에서 최선을 택하면 그저 그뿐. 최선이 무엇인지는 그대가 가장 잘 알지어다.(더불어 전문의가. 조언을 자처하는 지인 말고.)
자녀의 두뇌 발달을 위해 수학 문제를 풀고, 평소에 듣지 않던 클래식을 찾아 듣고, 오글거리는 동화책을 사서 읽으며 태담을 해 주는 태교? 본인이 진정 즐겁지 않다면 안 하는 게 낫다.이건 어설픈 위로가 아니라 과학적 근거를 바탕에 둔 조언이다. 산모의 스트레스로 인한 코티솔 수치 증가야말로, 태아의 뇌 발달에 가장 치명적이다.
그대의 불안을 양식 삼아 한 푼이라도 더 털어가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는 하이에나 같은 업체들을 멀리하고, 임신 및 태교 상품을 검색할 시간에 평소처럼, 혹은 이 기회에, 자신의 몸과 마음에 투자하길.
산모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행동은 건강한 몸과 건강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뿐이다.
남편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행동은 아내의 건강한 몸과 건강한 마음을 위한 전폭적인 지원과 지지일 테고.
자연스럽게, 나답게, 그저 매 순간 행복하여라.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 흠흠... 잔소리는 좀 치워 두고, 그래서 나는 나의 행복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를 기록해 보려 한다.
('유난 떨지 말고 자연스럽게'가 모토였지만, 평소에도 텐션이 워낙 높고 빨빨거리며 사는 타입의 인간이다 보니, 막상 정리하려니 참 별별 것들을 다 했구나 싶...)
(이번 글은 좀 긴 기록이 될 듯하니, 관심이 없으신 분들은 스킵하셔도 됩니다...^^)
우선 취미로 합주와 공연을 하던 락밴드 두 팀에 사정을 설명하고 다른 기타리스트를 구해 달라고 했다. 만삭까지 공연에 섰던 사람도 알고 있으니 임신자체가 꼭 밴드를 그만둘 이유는 아니었지만, 10년 이상 즐겼던 밴드 활동보다 기왕이면 다른 경험을 더 해보고 싶었다.
안정기에 접어든 후로는 태교를 가장하여 평소 하고 싶던 체험 활동을 하고 다녔다. 사내 동아리도 5년 가까이 몸담았던 볼링 대신에 여초 집단인 공예 쪽으로 변경하여 루프 공예, 비즈 공예 등 다양한 원데이클래스를 경험했다.
후배가 오픈한 꽃집에서 꽃꽂이도 해 보고, 미국에서 살다가 오랜만에 입국한 친구와 함께 프랑스 자수와 캔들 공예도 해 보았다.
(배넷저고리는 만들지 않았다. 아이에게 잘 입힐 거면 모르겠지만 썩 활용도도 높지 않아 보였고 흥미도 안 생겨서 패스...)
꼼지락거리며 손을 움직이고, 완성된 작품을 감상하는 뿌듯함이 컸다.
심신이 즐거운 활동들이었다.
참 맛있어 보이는 캔들 공예 (내 작품!)
아, 봄에는 첫 차를 샀다. 대중교통 시스템이 참 잘 갖춰져 있는 서울에서 나서 자랐고, 연애하고 결혼하고 살면서도 차를 빨리 사야겠다는 마음이 별로 없었는데, 출산을 앞둔 서른 중반에 첫 마이카를 마련하고 남편과 함께 장롱면허를 꺼내 들었다.
여름엔 지산 록 페스티벌에 갔다. 기왕이면 안정기 동안 운전에 익숙해지고 싶어서 나름은 장거리였던 경기도 지산행 핸들을 자진해서 잡았다. 트렁크에는 편안한 캠핑 의자를 챙겼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였지만, 적당히 맛있고 가격은 많이 비싼 축제 음식들도, 왁자하게 들떠 있는 젊은이들의 열기도,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묵직한 베이스의 음향도 모두 모두 좋았다.
태교 음악은 역시 락이지요.
남편과 밴드 동생 연정이와 함께했던 지산 나들이
비슷한 시기에 좋은 티켓이 생겨서 국카스텐 공연도 다녀왔다. 전좌석 스탠딩 공연이었기에 편안한 신발과 함께 혹시 모를 소음에 귀를 보호할 수 있도록 작은 이어폰을 챙겼다. 남편과 친구들이 내가 펜스 앞쪽 안전한 위치에서 공연을 감상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약간 부른 배를 가볍게 손으로 감싸 안고 하현우 님 노래와 전규호 님 기타를 감상했다.(다른 멤버분들도 좋아해요. 남편이 보컬 파트 제가 기타 파트라서 애정도가 조금 더 높을 뿐입니다.) 물론 얌전히만 있지는 못했다. 국카스텐이잖아!
적당한 운동은 임산부의 건강에 이롭습니다.
국카스텐은 참을 수 없지.
배가 조금씩 불러오기 시작하면서는 여행을 많이 다녔다. 미래의 돈을 끌어 써서라도 임신 중(안정기에 속하는 임신 28주 이전을 권장합니다.)에 꼭 여행을 다니라는 선배들의 조언을 달갑게 받들었다.
남편과 친구들과 함께 일본에 다녀왔다. 덕후 기질이 다분한 우리에게 일본은 문화적으로 참 익숙하고 친근한 곳이라 임신 전에도 일본을 자주 방문하곤 했다. (지금처럼 한일관계가 경직되고 코로나까지 이리 창궐할 줄은 꿈에도 몰랐지...-_ㅜ) 도쿄도에 사는 일본인 요리사 친구 집에 초대받아 지방의 전통 음식과 퓨전 요리를 대접받기도 하고, 도쿄 맛집투어도 했다.
양조장 방문이나 마리오 카트 같은 건 아무리 천하태평인 나 같은 임산부에게도 안 될 말이라서 하루 이틀은 혼자 시내를 돌아다니며 애정하는 아쿠아리움과 플라네타리움을 방문하였다.일본어로만 나레이션이 지원되는 시스템이라 관광객들에게는 비교적 덜 알려진 곳이지만, 이케부쿠로 선샤인시티의 플라네타리움 '만텐(滿天)'은 정말 강력 추천하는 장소이다.
바다와 우주. 진공 상태의 광활한 공간이 주는 안정감과 경이로움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 언제 보아도 참 좋다.
좋은 태교였다.
선샤인시티 '만텐'
9월 한 달은 거의 주말마다 여행이었다.(탕진잼 탕진잼~♪)
중고등학교 동창들과 전주 여행도 다녀오고, 남편과 제주로 식도락 여행도 다녀왔다. 제주에서 월요일 아침 비행기로 출발하여 회사에 오후 출근을 했다.
함께 또 따로, 발걸음을 잘 맞춰 준 남편에게 새삼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지인들과 2년 가까이 함께해 온 독서토론모임은 출산 전까지 쭉 지속했다. 지인이래 봤자 다 고놈이 고놈인 오랜 밴드 친구들이어서, 한 달에 한 번 우리 집에 모여 식사와 함께 책 얘기를 나누며 위장과 머리를 채우는, 가벼운 사교 모임이었다.
밴드 하는 사람 세 명만 모여도 합주를 하고 싶고 공연을 하고픈 것이 당연지사. '독서토론 모임'이라는 밴드명으로 공연도 했다. 공연 고정 멘트는 "저희는 정말 독서 토론도 합니다."였다.
첫 공연은 나도 함께 했었지만, 두 번째 공연은 배가 제법 불러온 시기라 나는 관객으로만 참여했다.
당시 포스터는 다시 봐도 역작이다.
(소개된 곡 제목을 번역 및 해석해야 하는 수준.ㅋㅋㅋ여섯 곡의 정체를 모두 맞추시는 분께는 상품이라도 드려야겠습니다.)
밴드 '독서토론 모임'입니다.
개인적으로 행복 최대치를 추구하며 열심히 살았던 2016년이었지만, 그해 대한민국은 제법 시끄러웠다.
메갈리아와 워마드에서 비롯한 래디컬 페미니즘 논란도 극심했다.
페미니즘 운동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 운동은 내 인생에도 큰 화두라 늘 관심이 지대했는데, 정말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기가 이렇게나 어려웠던 때가 또 있었나 싶다. 과격한 여성운동가(인지 그냥 경험과 학식 부족한 어린 여학생인지)로부터 허수아비 공격을 받았던 불쾌한 경험도 있어서, 온라인에서 알게 된 20대 진보 정치 운동가 남녀 몇 명과 함께 의기투합하여 페미니즘의 역사와 이론에 대한 비대면 스터디를 진행하기도 했다.
겨울로 접어들면서는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외치는 촛불이 거세게 불타올랐다.
11월~12월로 이어진 평화 시위.
의경 아들을 두신 집필 연구원 선생님도, 입사한 지 얼마 안 되는 같은 팀 후임도 이번 만큼은 본인도 광화문으로 나가봐야겠다고 말했다. 이때는 정말 만삭의 몸이라 시위에 참가하지는 못했다. 내 응원을 등에 업은 남편은 '성민식당'의 전신인 '구디미식회'의 깃발을 들고서 광화문 거리로 나섰다.
'시위'라는 말과 '유쾌'라는 말은 서로 참 안 친해 보이지만서도, '유쾌한 시위'라는 표현이 별로 어색하지 않았던 시기였다.
밥맛 없다 국정농단! 살맛 나게 하야하라!
덕이가 태어나기 하루 전에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고, 산후조리를 하며 대한민국 역사가 진보하는 과정을 목도했다. 언젠가 아이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줄 날도 오겠지.
참 바쁘게 보낸 2016년이었다.
회사 선배나 주변 사람들에게 은근히 많이 들었던 말이 있다.
"넌 임신이 체질인 것 같다."
그저 웃으며 수긍했지만,하고픈 말도 적지 않았다.
재직하던 연구소에서 15개월을 꽉 채워 유아휴직을 쓴 사람은 내가 처음이었다. 당시엔 활성화되어 있지 않았던 임산부 조기 출퇴근 제도는 당연히 사용하지 못하였고, 빡빡한 2호선 열차를 출산 열흘 전까지 타고 다녔다. 임신 8개월 이후에도 태아가 역위로 있어서 제왕절개가 불가피했는데 아이의 체중이 조금 적게 나가서 2.5kg을 겨우 넘긴 시점에수술 날짜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