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 KBS 창작동요대회'1차노랫말 공모에서는선정되었으나 최종 본선에는 오르지 못했다. 코로나 때문에 미뤄진 본선 대회가 2021년 봄에 치러졌다.아직 미발표곡이긴 하지만 그래도 공식적으로 공개된 노랫말이니 브런치에도 올려 본다.
우리나라 동요 창작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과거 해방 전후작사가들은 알음알음 소규모단체 안에서서로 교류하며 창작 활동을 진행하였다. 글을 쓴다는 이들 가운데 '작사가'라는 세부 분류도 특별히 없었고,동시 동화 같은 아동 문학에 대한 구분도 명확하지 않았다.아동의 정서를 담은 시를 쓰는문학가(not only 작사가)는 훌륭한작곡가를 만나면자신의 작품에곡이라는 옷을 입힐수 있었다. 작곡가가본인의 곡에 노랫말을 직접 붙이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어찌 보면 조금 덜 전문적이지만, 그 시절 동요 창작자는 지금보다 좀 더 '종합 예술인'에 가깝지 않았나 싶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는전국적인 규모의 창작동요대회가 생겨났다.매년 어린이날에 고정적으로 생방송을 진행하고 <새싹들이다>, <노을>, <아기 염소> 등 무수히 많은 인기 동요를 배출한 MBC 창작동요제를 비롯하여, 작곡가들이 신곡을 공식적으로 발표할 수 있는 자리들이 마련되었다.동요창작의 주체인 작곡가가 메인이기는 해도명색이 대회이다 보니 가창자 어린이의 실력도 대단히 중요했다. 될성부른노래 잘하는 아이들에게 창작곡을 연습시켜서 대회에 나가려면 아무래도 성악을 전공한 가창 지도 선생님과 동요 작곡가 사이의 인맥이 중요했으리라.
내 직속 선배(?)이기도 한 엄마 아빠의 경우는 연줄이라곤 없이 동요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창작 활동을 시작하셨다. 교대에서음악교육을 전공하신 작곡가 엄마, 중등 국어 교사이자 등단 시인이신작사가 아빠, 엄마의 일터인 초등학교에서 지도 가능한 가창자 어린이들. 이러한 삼 박자가 고루 갖춰져 있어서DIY로 창작 활동을 이어가기가 비교적 수월하셨다.당시에는 주변에서 '가내 수공업 동요 제작'이라는 말도 제법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생각해 보면 부모님 세대 동요 작곡가 가운데는 초등학교에 재직하셨던 선생님들의 비율이 꽤 높다.공식적인 통계는없지만 80~90년대에는환경적으로 비교 우위에 있던 '초등학교 음악 선생님들'이 대한민국 3세대 동요 창작자 집단에서 나름 하나의 축을 형성하지 않았나 짐작해 본다.
요즘 동요계는 정말 격세지감이다. 유튜브의 성장이나 핑크퐁 같은 유아 콘텐츠 업체의 거대화까지 동요 시장 자체도 다변화하여 참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지만, 대체적으로는 좋은 느낌이다. 분업화 전문화를 거쳐 상당히 개방적이고 다양한 창작 환경이 마련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며 제법 큼직한 동요 단체들이 발족하였고, 작사가도 작곡가도 가창 지도자도 제각각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활발히 교류하고 있다.
나도 꽤 오래전부터 사단법인 '한국동요문화협회'에 적을 두고 있다. 그렇지만 다른 회원들과의 교류는 거의 하지 않는다.20대 초반부터본격적으로 동요 창작을 시작했는데, 실력이 좀 미흡해도 내 가사에 스스로 곡을 붙여 보고 엄마를 통해 알고 지내는 가창지도 선생님께 거의 일임하는 방식으로 곡을 발표해 왔다.
본인이 은근히 내향적인 인간이라예술가 집단에서의 '활발한 교류'는 왠지부담스럽다.동요계에서 부모님이 제법 유명하시다 보니 괜히 더 거리를 두었던 것도 있다.아직까지도 '종합 예술인'을 지향한다는 말을 변명 삼아부족하고 고립된 나의 창작 활동을 합리화하며 지내고 있다.
KBS 창작동요대회의 특성을 소개하고자 이렇게 서설이 길었다.
이 대회는 여타 동요 대회와 조금 다른 방식으로 곡을 모집한다. 전통적으로 창작 동요 대회라 하면 작사가+작곡가+가창자(+가창지도자)가 풀세트로 작업한 곡을 비중과 권위가 가장 높은 작곡가의 이름으로 출품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KBS는 작사가들에게 노랫말을 우선적으로 공모하고, 1차 선정된 노랫말을 공개하여 인맥과 관계없이 작곡가들 누구라도 그중에 마음에 드는 노랫말을 골라 곡을 붙여서 최종 작품을 내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방식이 썩 마음에 든다.나는 비록 혼자서 지지고 볶고 DIY로 작업을 하는 사람이지만, 특별한 인맥 없이 노랫말을 만드는 작사가에게도 열린 기회가 주어진다는 게 좋다.기존의 카르텔, 소위 소속이나 연줄과는 무관한'순수 창작이 가능한 장'이라는 느낌이다.
이러한 호감을 바탕으로 KBS 창작동요대회에는꾸준히노랫말을 응모하고 있다.
"여러분도 도전해 보세요!"
(I WANT YOU. For children's song writer... 검지를 들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유명한 미국 참전 포스터, 엉클 샘을 떠올리며ㅎㅎ)
<어린 왕자에게>(2007), <비밀로 가득한 세상>(2008), <비 오는 날의 술래잡기>(2008) 같은 노랫말이 KBS라는 매체를 통해 얼굴도 몰랐던 작곡가들에게 전달되었고, 그중 두 곡은 내가 멜로디를 붙인 것보다 다른 작곡가의 곡이 더 좋아서 그분들의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그렇게 해서 내 노래가 더 널리 불리게 되면 저작권료도 솔찬히 들어와 주니, 내가 만든 멜로디가 묻힌다 한들 딱히 손해는 아니다.
이번에 출품한 <맑음 맑음>도 다른 작곡가 분들이 곡을 붙여 주셨다. 내가 붙인 멜로디까지 세 곡이상이 심사에 올랐던 모양이다.많은 작곡가들이 붙어 줄수록 노랫말이 썩 괜찮다는 반증이기도 하므로 작사가로서는 기쁘기 그지없는 일이다.
올봄에 본선 탈락 발표가 난 이후 별도로 연락을 주신 작곡가 두 분이 다른 대회에 이번에 떨어진 곡을 다시 출품해 보고 싶다며 작사가의 동의를 구하셨다. 작사가가 굳이 동의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아마도 이 경우는 작사가의 동의라기보다는 작사가의 파트너인 작곡가의 동의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도 싶다. 쉽지 않은 일일 수도 있겠다. 이래서 참, 인맥은 중요하면서도 부담스럽다.
작곡가 박경진의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확률로 내가 붙인 곡이 묻혀버리고 다른 멜로디가 붙은 곡이 발표될 수 있어 섭섭할 수도 있겠지만, 작사가 박경진의 정체성을앞세워 흔쾌히 그러시라고 답했다.
"저도 곡을 좀 더 손 봐서 다른 곳에 또 내 볼 거니까요. 공정하게 선의의 경쟁을 해 봐요.어느 대회장에서든 좋은 연으로 얼굴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 곡은 처음으로 딸아이와 함께 멜로디를 붙여 본 곡이라 특별히 더 애착이 가기는 한다. 벌써 일 년 이상 원 없이 집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다.
내 마음도
걱정 하나 없이
맑음 맑음
날씨에 따라 '흐림 흐림', '미세 미세(미세먼지)'라고 개사도 한다.
'엄마 작사, 엄마와 나 작곡' 이라며 본인 지분을 주장하며 함께 흥얼거린 멜로디는 누가 뭐래도 딸아이 가슴속에 깊이 박혀 있을 터이니, 공식적인 첫 발표야 누구의 작곡으로 나가든 개의치 않는다.
(내가 붙인 멜로디는 나중에 개인적으로 녹음하거나 해서 작품 등록만 별도로 해도 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