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서 기록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경진 Jul 02. 2021

[서평] 80일간의 세계 일주

계획대로 살지 않았더니, 삶이 더 재미있어졌다!

 하루하루를 규칙적으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새해를 맞아, 방학을 맞아, 계획을 짜고 하루 일과표도 만들어 보지만 작심삼일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지요. 이번에 소개할 필리어스 포그 씨는 정말 놀라운 사람이에요.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시간에 밥을 먹고, 면도용으로 쓰는 물의 수온은 늘 30도여야 하지요.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항상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 외박도 여행도 하지 않는 사람. 좀 숨이 막힌다고요? 이 사람이 바로 ‘80일간의 세계 일주’의 주인공이랍니다.

 영국 신사 포그는 어느 날 사교 모임의 부유한 친구들과 내기를 하게 됩니다. “포그가 과연 80일 동안 세계 일주를 할 수 있을까?” 내기에 걸린 돈은 포그가 가진 전 재산의 절반에 해당하는 2만 파운드였지요. 현재 우리 돈으로는 약 28억 원 가치라고 해요. 앞서 포그는 일상의 규칙이 깨지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고 여행도 하지 않던 사람이라고 소개했죠? 이런 내기와는 거리가 멀 것 같은 그가 80일 동안 세계 일주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어요.

 


대영 제국의 위엄

 이 책의 시대 배경은 1872년이에요. 지중해에서 홍해와 인도양으로 바로 연결되는 수에즈 운하가 1869년 개통되었고, 당시 세계 곳곳에는 철도가 놓이고 있었어요. 포그는 인도에 전 구간 철도가 개통되어 기차와 배를 이용하면 80일 만에 세계 일주가 가능하다는 내용을 신문에서 보고, 친구들에게 80일이라는 기간이 기상 문제나 교통수단의 고장까지도 모두 계산한 정확한 숫자라고 장담했답니다. 그래서 평소와 다름없는 차분한 태도로 내기를 하게 된 것이고요. 그의 태도에서 근대 과학 기술의 발전에 대한 엄청난 신뢰를 엿볼 수 있지요.

 갑작스럽게 포그의 세계 여행에 따라나서게 된 하인 파스파르투는 불평을 하기도 합니다. 이 장소에서 다음 장소로 정확하게 이동하는 것이 전부인 여행이었으니 그럴 수밖에요. 그러나 얼핏 지루할 법했던 포그의 여행 이야기는 다양한 사건들이 끼어들어 오면서 흥미진진하게 펼쳐집니다. 인도에 도착했더니 횡단 철도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코끼리를 타고 정글을 지나가게 되고, 죽은 남편과 함께 산 채로 화장당할 위기에 처한 아우다를 구출하기도 하지요.

 홍콩에서 출발하는 배를 놓쳐 큰일 날 뻔하거나, 기차 안에서 인디언들과의 전투에 휘말리기도 하고요. 포그 일행이 위기를 만날 때마다 과연 80일 안에 이들이 런던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 커집니다. 게다가 포그를 은행털이범으로 착각하고 뒤를 쫓는 픽스 형사까지 가세하여 작품의 긴장감을 끌어올리지요.



주인공의 눈에 비친 흥미진진한 세계 풍습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 안에는 또 다른 재미 요소가 숨어 있어요. 포그 일행의 시선을 통해 세계 각지의 자연환경과 풍습이 소개되거든요. 인도의 사원과 정글, 일본 요코하마의 아름다운 거리, 미국 대륙을 횡단하며 만난 들소 떼…. 이 책에 등장하는 당시 세계 각국의 모습은 읽는 사람들의 흥미와 호기심을 자극해요.

 하지만 비판적으로 살펴볼 만한 것들도 있어요. 포그 일행이 찾은 홍콩에서 마약 아편이 유통되고 있었는데, 제국주의 열강이던 영국이 이 시기 아편 무역에 깊숙이 개입했거든요. 또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기차를 습격한 사건에는, 미국 정부가 건설하던 대륙횡단철도가 원주민들의 삶을 위협했던 시대상이 내재해 있어요.


 “기차가 인디언들에게 습격당한 것이었다. (중략) 인디언들은 기관차를 먼저 공격해 기관사와 화부를 곤봉으로 때려눕혔다. 그런 다음 인디언 추장이 기차를 세우려 했으나 기계를 만질 줄 몰라, 증기 구멍을 막아야 하는데 반대로 활짝 열어 버리고 말았다.”


 이와 같이 작품 속에서 인디언들은 폭력적이고 야만적으로 그려집니다. 땅을 빼앗긴 그들의 설움이나 고통은 드러나지 않지요.


“인도에 아직 그런 야만적인 풍습이 남아 있습니까? 영국 정부가 그런 걸 금지시키지 않았나요?”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에서는 ‘영국이 미개한 국가들을 다스리며 신식 문물과 합리적인 제도를 전파한다’는 우월의식도 엿보이지요. 작품 속에서 다양한 위기를 극복하는 인물들의 재치와 용기 외에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는 것도 읽는 즐거움을 더해준답니다.



계획대로 살다가 놓친 따뜻함 되찾아

 낯선 환경에 놓이면 평소의 습관이나 가치관이 흔들릴 수 있답니다. 이것이 꼭 나쁜 일은 아니에요. 포그가 인도에서 불에 타 죽을 위기에 처한 아우다를 구한 것은 계획 밖의 일이었어요. 비록 포그는 ‘12시간이나 여유가 있어서’ 그녀를 구하게 되었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평소 계획에 없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던 포그가 여행을 하면서 조금씩 변해간 거지요. 예전보다 주변에 관심을 기울이고, 다른 사람들의 일에 관여하면서요. 그 결과 포그는 점점 더 인정 많은 사람이 되어 가요.

 세계 여행에 성공해 내기에서 이긴 포그는 2만 파운드라는 큰돈을 벌지요. 그러나 이 내기의 가장 큰 수확은 포그 자신의 변화가 아니었을까요? 항상 계획적으로 사는 사람도 대단하지만, 주변 사람을 챙길 줄 아는 따뜻한 사람은 더욱 매력적이니까요.     




<작가 소개>

19세기 프랑스의 소설가 쥘 베른(1828~1905)은 근대 공상과학소설의 선구자입니다. 어릴 적부터 호기심이 많았던 그는 많은 여행가와 지리학자의 경험담을 전해 듣고, 과학적 이론을 기반으로 해 ‘지구 속 여행’, ‘해저 2만 리’, ‘80일간의 세계 일주’ 등의 작품을 발표했어요.




* 2016.2.4 조선일보 <신문은 선생님> 코너에 게재했던 서평입니다.

앞으로 브런치에 올릴 서평을 경어체로 쓸 생각은 없지만, 당시 글은(귀찮아서;) 그대로 올립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서평] 이방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