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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진 Sep 05. 2021

해님 별님

사랑스러운 아기

<해님 별님>

1

방긋 웃는 아기는 우리 집 해님이

아기가 까르르 웃으면 온 집안이 환해져요


아장아장아장 걷는 모습 너무너무 귀여워

엄마 아빠 부르는 소리 너무너무 예뻐요


우리 가족 모두 모두 아기 곁에 모여 앉으니

아기는 아기는 우리 집 밝은 해님이에요


2

생긋 웃는 아기는 우리 집 별님이에요

아기를 가만히 안으면 내 마음이 환해져요


꼬물꼬물꼬물 조그만 손 너무너무 귀여워

새근새근 잠자는 모습 너무너무 포근해


반짝반짝 까만 눈 어둠을 몰아 버리니

아기는 아기는 우리 집 맑은 별님이에요






2018 제3회 용인  창작동요제 출품하여 금상과 최우수 작곡상을 받은 곡이다.

평소 작사 작곡을 함께 하고는 있만, 근본 정체성이 쟁이가까운 터라 여전히 '곡상'나 '작곡가'라는 은 많이 겸연쩍 느껴진다. 시간이 흐르면 조금은 달라질까. (겸연쩍음을 느끼는 근본적인 원인은 사실 공부와 훈련의 부족에 있습죠...)

어쨌든 결과도 참 감사한 대회였다.


일전에도 한번 언급한 적이 있는 '용인 태교 창작동요제' 이듬해인 2019년부터 '용인 가족사랑 동요 부르기 대회'로 변경되었다. 바뀐 대회는 창작곡을 발표하는 자리 아니라 기존 발표 곡들 가운데 가족사랑 주제의 노래를 부르는 경연의 자리가 되긴 했지만, 동요를 부르고 듣는 주체가 어린이인 점을 감안 때 대회명에서 '태교'라는 말이 빠진 것은 참 좋은 변화라고 생각하고 있다.


사랑스러운 아기의 모습을 해님과 별님비유하여 1절에는 낮의 이미지를, 2절에는 밤의 이미지를 담아 보았다. 너무도 분명한 대상, 첫돌을 막 지난 딸내미가 곁에 있었기 때문에 곡 작업도 여느 때보다 참 즐겁고 보람다.

노래는 시 초등학교 1학년이던 이와 수빈이가 불러 주었다.

사빈이는 가까운 동네에 살고 있고 우리 부모님과도 잘 알고 지내는 사이인 곡가 선생님의 외동딸이다. 딸아이가 태어났을 때에 사빈이가 직접 만든 봉제 인형을 선물로 받았던 인연도 있다. 그런 사빈이와 동갑내기 친구인 수빈이이 노래를 직접 불러주게 되어 더 반갑고 좋았다.

아장아장 걷는 19개월 딸아이도 회장에 함께했.

기실에서 아기를 보며 수줍고 예쁜 미소를 지어주고, 무대를 예쁘게 꾸며 준 사빈이 수빈이 두 언니에게 다시 한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부모님은 본격 출산 장려 동요라며 이 노래를 특히나 좋아라 하셨다.

(그러나 저는 아직 둘째 생각이 없고, 남동생은 아직 2세 생각이 없고, 여동생은 아직 결혼 생각이 없지요.ㅎㅎㅎ

엄마 아빠 모두 7남매 왁자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나 슬하에 우리 삼 남매를 두셨는데, 손주는 하나뿐...

딸내미야 그저 예쁨 많이 받고 참 좋습니다.)

 차원의 출산 장려 정책은 당연히 "아이쁘고 사랑스럽습니다"를 홍보하는 수준에 그쳐서는 안 된다. 과거보다 피임 기술이 발달하기도 했지만 출산 자체에 대해 사람들의 심리적 허들이 높아진 데에는 복합적인 원인이 존재하니, 좀 더 개개인의 정서를 고려한 세심하고 전방위적인 지원 정책이 필요할 터다. (2016년도에 논란이 되었던 가임기 여성 지도 같은 삽질은 아주 논외로 하고.)

요즘은 내 동생들을 비롯하여 비혼주의자나 딩크족(굳이 이런 레이블링을 하는 것은 선호하지 않지만.)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고, 결혼 생활을 포함하여 출산과 육아의 고충이나 어두운 면을 다루는 다양한 에세이나 설 등 창작물이 사람들에게 큰 인기와 공감을 얻고 있다. 나 역시 구매 또는 댓글로 그런 창작자들에게 응원을 보내기도 한다.

그렇지만 뭐랄까. 민 차원에서야말로 낙천가들의 목소리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관 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ㅎㅎㅎ 사회적 필요에 의해 창작 활동을 한다는 것도 본말이 전도된 느낌이긴 하다만.)

이렇게 말하니 너무 거창한 느낌도 들고 자칫  글의 스타일이나 한계를 합리화하는 말이 될 듯하여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인간의 '낙천'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혼도, 출산과 육아도 행복할 수 있다.

아니 진정으로 행복한 일이다. 그런 신념.


 "아이가 얼마나 예쁜데! 엄마 아빠가 되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데!" 같은 꼰대스런 훈계를 하고픈 것은 절대 아니다.

 "애 낳고 키우는 거, 그거 남들 다 하는 것이니 당신도 할 수 있." 같은 가벼운 낙관이나 위로도 아니다.

당연히 결혼도 출산도 개인의 자유이며, 본인의 의지에 의한 선택이든 본인이 원치 않은 상황이든 혼인 여부나 자녀의 유무는 타인이 평가의 잣대를 들이밀 일이 아니다.

그저 누구든, 자신의 현재 에서 행복과 삶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찾는 것중요하다는 말하고 싶은 것이다. (어쨌든 나는 결혼과 출산을 선택한 사람이니까.)

낙천은 현재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이다. 이러한 신념을 바탕으로 순간 거듭하는 노력과 실천, 나 자신과 에 가져다 줄 긍정적인 변화를 믿고 소망하는 것이다.

인간의 낙천성은 교육학적으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며, 한 인간이 느끼는 삶의 행복감과 만족감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세상 어찌 빛과 그림자 중 한 가지만 존재하랴.

현실이 비록 시궁창이라고 느껴질지언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기에 명백히 존재하고 있는 빛을 인지하고 직시하는 것.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주변에도 그 온기를 나누어 주는 것. 그것이 개개인과 공동체 지탱하는 낙천일 것이다.

삶에서 작고 소중한 빛의 조각들을 찾아내어 아이들의 두 손에 건네주는 일 동요를 사랑하고 동요를 만는 이의 책무가 아닐까. 그런 소명 의식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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