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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진 Jul 14. 2021

[서평] 고도를 기다리며

인간의 삶은 끊임없는 기다림과도 같아

 여러분은 ‘기다림’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기다림은 지루하고 따분하다는 느낌이 들거나, 어쩌면 지난여름 가족들과 함께 떠나는 여행을 기다리며 설렜던 순간이 떠올랐을 수도 있겠네요.

 기다림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을 한 권 소개할까 해요. 바로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 사뮈엘 베케트가 쓴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작품이에요.



끊임없는 기다림     

 <고도를 기다리며>는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어요. 나무 한 그루가 덩그러니 서 있는 황량한 시골길에서 만난 두 주인공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아무런 맥락 없이 ‘고도(Godot)’라는 인물을 기다리며 수다를 떨어요. 고도를 기다리며 이어지는 둘의 대화 사이에는 이따금씩 긴 침묵이 흐르지요. 연극 작품을 직접 보는 관객들이라면 이 침묵이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거예요.

 그렇게 하루가 끝나갈 무렵 한 소년이 두 사람에게 다가가 ‘오늘 고도는 오지 않는다. 하지만 내일은 반드시 올 것’이라고 알려 주지요. 떠나야 하는 시간이 되었지만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두 주인공을 무대 위에 내버려 둔 채로 1부의 막이 내립니다.

 2부에서도 두 주인공은 같은 장소에서 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고도를 기다려요. 다만 두 사람의 대화를 들어보면 1부와 2부 사이에 상당히 긴 시간이 흘렀음을 알 수 있지요.     


 “이 모든 혼돈 속에서도 단 하나 확실한 게 있지. 그건 우리가 고도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거야.”  

   

 “확실한 건 이런 상황에선 시간이 길다는 거야. 그리고 그 긴 시간 동안 우린 온갖 짓거리를 해가며 시간을 메울 수밖에 없다는 것도 확실해. (중략) 하지만 난 가끔 이런 생각을 해. 이미 우리의 이성은 한없이 깊고 영원한 어둠 속을 방황하고 있는 게 아닐까. 너 내 말 알아듣겠냐?”     


 해가 저물고 2부가 끝날 무렵, 다시 예의 소년이 등장해 ‘오늘 고도는 오지 않는다. 하지만 내일은 반드시 올 것’이라는 전갈을 남기고 사라져요. 정말 답답할 노릇이지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여전히 자리를 뜨지 못하고, 무심하게 내려오는 막과 함께 연극은 끝이 납니다.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는가

 두 주인공이 간절히 기다리는 고도는 대체 누구일까요? ‘Godot’라는 이름 때문에 많은 사람이 고도가 신(God) 아니냐고 추측하기도 했지만, 사뮈엘 베케트는 “이 작품에서 신을 찾지 말라”고 단호히 말했어요. “고도가 누구이며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라며 말이에요. 베케트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것일 수도 있어요

 당신의 고도는 무엇인가. 당신은 기다림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무언가를 막연히 기다리며 시간을 보낼 때 느끼는 막막함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감정이에요. 이 작품은 1953년에 처음 연극 무대에 올려진 이래 현대연극의 대명사로 꼽히며 뉴욕과 런던을 비롯한 유명 극장에서 현재까지도 꾸준히 무대에 올려지고 있어요. 여러분이 기다리는 고도는 무엇인가요? 자유? 사랑? 어떤 것이든 좋아요. 여러분만의 고도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무엇을 하려고 하나요?

 언젠가 친구와 함께 자신의 고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세요. 마치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된 것처럼 말이죠.          





<작가 소개>

사뮈엘 베케트는 아일랜드 출신의 프랑스 작가로 영어와 프랑스어로 집필한 희곡을 다수 남겼다. 그 중에서도 ‘인간의 삶은 끊임없는 기다림과도 같다’는 메시지를 담은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작품으로 1969년도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 2016.7.14 조선일보 <신문은 선생님> 코너에 게재했던 서평입니다. 앞으로 브런치에 올릴 서평을 경어체로 쓸 생각은 없지만, 당시 글은(귀찮아서;) 그대로 올립니다. :)


저는 2007년 루마니아 극단이 내한하여 아르코 예술극장에서 올렸던 공연으로 실제 연극을 처음 접했는데 (자막을 읽으랴 작품을 감상하랴 다소 분주하기도 했지만요.) 연극이 끝나고도 극중 인물들처럼 관객들 역시 자리를 한참이나 뜨지 못하며 여운에 젖어 있었던 기억이 강렬합니다. 언제부턴가 이 연극의 배경이 되는 고목에 목을 멜 수 있는 밧줄을 걸어두는 무대장치를 하는 경우가 많이 보이는데, 아주 강렬하면서도 섬찟하더라고요... 아무리 기약 없는 끝없는 기다림 속에서도 우리는 절망이 아닌 희망을 보아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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